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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대응 24시’ 헬기 정비사·조종사는 숨은 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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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대전) 정일웅 기자] 격납고 안 헬기 하부에서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리프트를 타고 올라선 정비사가 허리를 굽힌 채 고개만 치켜세워 기체 이곳저곳의 상태를 훑고 있다. 정비사의 시선을 따라 갖가지 공구가 기체를 향한다. 그 뒤로는 두 명의 엔지니어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기체에서 미세하게나마 연료가 새어나는 것을 확인하고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격납고 안에는 정비사의 손을 이미 거쳐 온 듯한 헬기 한 대도 보인다. 건장한 성인 남성도 그 옆에 서면 작은 아이처럼 보일만큼 거대한 몸집의 기체. 날개 짓을 하고 있지 않아도 기체의 덩치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이제 막 세차를 마친 차량처럼 외관이 말끔한 상태지만 실상 눈앞에 헬기는 거친 불길과 그을음이 가득한 산불현장 곳곳을 누벼온 산불진화헬기다.


‘산불대응 24시’ 헬기 정비사·조종사는 숨은 역군 산림청 산불진화헬기가 산불현장에서 연무를 가르며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산림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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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강원도 원주시 소재 산림항공본부를 찾았다. 산림청은 현재 원주 산림항공본부를 축으로 익산·양산·영암·안동·강릉·진천·함양·청양·서울·울진·제주 관리소 등 전국 11개소의 산림항공관리소를 운영한다.


원주 본부와 11개 관리소에선 총 48대(초대형 7대·대형 29대·중형 1대·소형 11대)의 산림헬기가 운용 중이다. 산림헬기의 주된 활용 목적은 산불진화와 항공방제, 산악 인명구조, 재난·재해복구 지원 등이다. 이중에서도 산불진화는 연중·대형화 된 산불현장에서 헬기의 역할 비중을 키우는 요소다.


국토의 63%가량이 산지인 우리나라의 경우 산불이 발생했을 때 인력보다는 헬기를 통한 산불진화가 효과적이다. 불길이 거셀수록 헬기의 진화역량도 중요해진다. 치솟는 불길에 인력 투입이 어려운 상황에서 헬기를 통해 흩뿌리는 방화수가 국가 중요 자산인 산림과 인명·재산피해를 최소화하는 생명수와 같은 역할을 하는 까닭이다.


산불현장에선 정비사와 조종사가 숨은 역군으로 통한다. 헬기가 산불현장을 누비며 활약하기 위해선 이들의 보이지 않는 손길과 헌신이 필수적이라는 맥락에서다.


정비 분야는 기체가 정상적으로 운용되기 위해 필요한 첫 관문이다. 통상 헬기 정비는 이륙 전과 착륙 후에 각 1회를 기본으로 운용시간 등에 따라 추가적 정비가 요구된다. 가령 초대형 헬기의 경우 15시간, 대형 헬기의 경우 25시간 운용됐을 때 이·착륙 정비와 별개의 정비과정을 거치게 된다. 산불규모와 관계없이 현장 출동횟수가 많을수록 정비사의 손길은 그만큼 더 분주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비사는 헬기 1대당 1명의 전담인력이 배치되며 정비현황을 총괄하는 팀장이 편제에 포함된다. 원주 항공본부의 경우 초대형 헬기 2대와 대형 헬기 3대를 보유·운용하는 중으로 정비사 5명과 팀장 1명이 현장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정비사에게도 하루 일과시간(1일 8시간, 오전 9시~오후 6시)은 정해져 있다. 그러나 촌각을 다투는 산불상황에서도 일과시간이 지켜질리 만무하다. 더욱이 최근 잦아진 산불발생 빈도는 정비사의 하루에, 일상에 여백을 빼앗기 일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본연의 임무에 매진할 수 있는 것은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갖는 사명감 내지 보람 덕분”이라고 원주 본부 정비사들은 입을 모은다.


‘산불대응 24시’ 헬기 정비사·조종사는 숨은 역군 최성준 정비사가 원주 산림항공본부 격납고에서 헬기 정비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원주 산림항공본부 제공

원주 본부 소속의 최성준(39·사진) 정비사는 “헬기 기체의 건강상태가 곧 정비사의 건강상태가 된다”며 “정비사는 산불현장에 투입된 헬기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만약에’라는 비상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사소한 실수 하나가 산불진화 현장에 혼선을 주고 자칫 인명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비사 스스로 무게감을 갖고 정비 업무에 임하게 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정비 업무 자체가 후방에서 이뤄지다보니 대형 산불이 발생하더라도 정비사들이 주목받는 일은 극히 드물다. 반면 최근 산불발생 빈도가 늘고 규모가 커지면서 정비사의 업무 강도도 함께 높아지는 실정이다.


최 정비사는 “산불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대형화되는 추세에서 정비사의 일상도 빡빡해지는 요즘”이라며 “지난해 울진 산불발생 당시에는 꼬박 열흘 넘는 기간 동안 현장에 상주하면서 추위와 싸웠던 기억이 있다. 대형 산불이 발생하면 보통 정비사는 소속기관 관할지와 관계없이 현장에 투입돼 헬기가 뜨고 내리는 것에 맞춰 정비에 속도를 내게 된다”고 말했다.


또 “당시에 하루 근무시간(대기시간 포함)은 16시간 안팎으로 잠든 시간 외에 대부분을 현장에서 머물러야 했다”는 그는 “울진에서의 근로여건이 ‘항상’이라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최근 산불발생 빈도에 따라 근무강도가 세진 것은 사실”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손으로 정비한 헬기가 산불현장으로 한달음에 달려가 임무를 수행하고 무사히 복귀한 때는 남들이 모르는 뿌듯함과 보람을 느끼게 된다”고 어깨를 으쓱했다.


산불현장에서의 고충은 헬기를 직접 운용해야 하는 조종사에게도 있다. 사선(死線)을 넘나들며 산불진화에 나서야 하는 탓에 매순간 긴장을 놓기 힘든 것도 마찬가지다.


‘산불대응 24시’ 헬기 정비사·조종사는 숨은 역군 안성철 조종사가 정비를 마친 헬기에 올라 기체의 정상 작동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원주 산림항공본부 제공

원주 본부 소속 안성철(44·사진) 조종사는 20년 경력(군에서의 헬기 조종 경력 포함)의 베테랑 조종사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산불현장은 매순간 생(生)과 사(死)를 외줄타기 해야 하는 사선과도 같다.


안 조종사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위험요인을 회피하려는 본능이 잠재돼 있다”면서도 “그런데 사나운 불길(위험요인)을 바라보면서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 중심을 뚫고 지나면서 물을 쏟아 부어야한다면’이라는 물음에 산불진화헬기 조종사들은 ‘기꺼이’라는 답을 내놓게 된다”고 말했다.


또 “산불현장에는 거센 불길 외에도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곳곳에 있다”는 그는 “불길을 진화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연무(煙霧)가 그렇고 거미줄처럼 퍼져 있는 고압전선이 그렇다”며 “헬기를 조종하다보면 아찔한 순간이 언제든 돌발적으로 생길 수 있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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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그럼에도 조종사를 포함한 산불진화 인력이 현장에서 불길을 마다하지 않고 진화작업을 벌일 수 있는 건 ‘내가 아니면 누군가의 생명과 재산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신념”이라며 “굳이 다른 누군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현장에선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이웃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헌신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아주면 함께 좋겠다”고 웃어보였다.




정일웅 기자 jiw3061@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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