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풀 창업 후 라인플러스에 매각...레몬트리로 새 도전
창업과 동시에 50억 투자 유치...용돈관리앱 '퍼핀' 출시
"가족 금융서비스로 아이들에게 더 나은 세상 만들 것"
[아시아경제 최유리 기자] "엄마, 왜 돈은 살 수 없어?"
이민희 레몬트리 대표는 5살 아들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아이가 TV에서 장난감 광고를 보고 사달라고 조르자 돈이 없다고 둘러댔고 "그럼 돈을 사오면 되지"라는 말이 돌아왔다. 이 대표는 "돈은 일을 해서 버는 거지 사는 게 아니다"라고 했지만 제대로 대답해 준 게 맞나 의아했다. 아이를 돈에 밝은 사람으로 키우고 싶었던 그가 두 번째 창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다. 지난해 레몬트리를 창업한 이 대표는 자녀 용돈 관리부터 투자 교육까지 가능한 애플리케이션(앱) '퍼핀'을 이달 말 출시할 예정이다.
수포자 위한 '바풀' 출시...수익화 실패로 창업에 미련
이 대표는 첫 번째 사업부터 유명세를 탄 스타 창업자다. 대학 졸업 후 지방에 살던 동생에게 수학을 가르쳐주기 위해 문제 푸는 과정을 개인 사이트에 올린 것이 계기가 됐다. 모르는 문제는 대학 친구에게 답변을 받아 올리다 누구나 질의응답을 할 수 있는 학습앱 '바풀'을 떠올렸다. 복잡한 수식이나 그래프가 들어난 수학문제를 사진으로 올리면 답을 달 수 있는 서비스였다. 스마트폰으로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들의 공부를 돕고 사교육비도 줄여보자는 취지였다.
이 대표는 바풀로 여성창업경진대회 최우수상, 정주영 창업경진대회 최우수상 등을 받았다. 24세에 이룬 성과였다. 창업 6년 차인 2017년에는 네이버 관계사 라인플러스에 전격 매각을 결정했다. 엑시트(자금회수)와 함께 라인플러스에 스카웃돼 인공지능(AI) '클로바', 인터넷 방송 플랫폼 'V앱' 일본판 서비스 등을 맡았다.
타이틀만큼 모든 과정이 화려했던 것은 아니다. 자본금 1000만원으로 프로그래밍을 하는 친구와 단둘이 시작한 바풀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자금이 떨어져 김성오 메가스터디 부회장을 무작정 찾아간 적도 있었다. 강연장에서 만난 김 부회장에게 사업계획서를 내밀었고 얼마가 필요하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당장 몇 백 만원이라도 있으면 살 것 같다는 생각에 500만원을 받아 급한 불을 껐다.
이후 후속 투자를 유치하고 트래픽도 모았지만 수익화는 신통치 않았다. 사업 모델은 계속 바뀌었다. 처음에는 학원과 학교에 공급하는 기업간 거래(B2B) 모델로 제공하다 무료 서비스로 전환했고 다시 부분 유료 서비스를 추가했다. 검증된 선생님과 학생을 일대일로 연결하는 유료 서비스 '바풀 공부방' 등을 내놨지만 기존 사교육 시장을 대체하지는 못했다. 이 대표는 "바풀은 수익화에 성공하지 못했고 라인에서 맡은 서비스도 대부분 무료였다"며 "모바일 비즈니스를 하면서 돈을 많이 벌어보고 싶다는 욕망이 항상 있었다"고 털어놨다.
美유니콘 '그린라이트'처럼 용돈 관리…전금업 라이센스 취득
달성하지 못한 목표를 이루고자 두 번째 도전에 나섰다. 바풀 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아이의 질문에서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엄마의 마음으로 서비스를 구체화시켰다. 그는 "경제·금융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교육이지만 학원도, 학습지도 없다"며 "용돈기입장을 써보라 한 뒤 끝나버리는 경제 교육 시장이 블루오션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밀레니얼(25~44세) 세대인 자신을 '돈에 대해 혼란을 겪는 세대'라 표현했다. 부모에게는 밥상머리 교육으로 무조건 아껴쓰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하지만 경제력을 얻고 나서는 '욜로(YOLO·한 번뿐인 인생을 즐기자)' 소비에 물들었다. 현실에 눈을 뜨니 남은 것은 대출 빚. 부모 세대처럼 자신의 아이들에게 '무조건 저축'을 외치고 싶지 않지만 달리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방법을 알지 못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서비스는 크게 두 축으로 구성했다. 용돈 관리와 경제 교육이 그것이다. 미국의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스타트업) '그린라이트' 모델을 참고했다. 그린라이트는 어린이용 모바일 직불카드를 만들어 3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기업이다.
구체적으로 부모가 용돈을 충전시켜 주면 아이가 계획에 맞게 소비하도록 돕는다. 남은 용돈은 저축하거나 소액으로 주식 투자를 경험해 볼 수도 있다. 이와 함께 퀴즈를 풀며 배우는 경제 커리큘럼을 제공한다. 품절된 포켓몬빵이 중고거래앱에서 비싸게 팔리는 것으로 희소성의 개념을 알려주는 식이다. 퀴즈를 풀면 용돈 리워드를 제공해 게임처럼 학습하는 효과를 노린다.
서비스가 구체화되자 투자자부터 모았다. 자금이나 사람이 부족해 성공하지 못한 경험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파워포인트(PPT) 단 4장으로 추린 사업계획서로 창업과 동시에 50억원의 자금을 모았다. 이달 말에는 두 번째 투자 유치를 앞두고 있다.
드림팀도 꾸렸다. 네이버, 카카오모빌리티, 쿠팡, 쏘카 등 내로라하는 IT기업 출신들로 C레벨을 꾸렸다. 단지 경력이 화려한 게 아니라 같이 일하거나 오랫동안 지켜보며 검증한 사람들이었다. 업계에서 10년 이상 잔뼈가 굵은 이들을 움직인 말은 "망해도 크게 망하겠다"는 것. 이 대표는 "알파세대를 잡고 싶은 국내 금융사, 신흥 부자들은 많지만 경제 교육이 부족한 동남아 등에 반드시 매각할 수 있다. 빨리 은퇴할 수 있는 일이라고 설득했다"며 웃었다.
라이선스가 필요한 금융의 높은 문턱은 뚝심으로 넘어섰다. 선불충전금을 용돈으로 쓰게 하려면 전자금융업자 라이선스를 취득해야 했다. 이를 위해 주요 전산 장비 이중화를 갖추고 직접 금융당국 공무원들을 한명 한명 만났다. '머지 포인트' 사태로 민감한 시기였지만 준비 1년 만에 라이선스를 취득했다. 처음에는 보수적이고 남성중심적인 분위기가 낯설었지만 직접 대관을 뛰며 필요한 사람을 어떻게든 만났던 결과였다.
"'퍼핀'으로 아이들에게 더 나은 세상 만들 것"
지난 10여년을 뒤돌아 볼 때 여성 창업자라 겪는 어려움은 없었다고 이 대표는 잘라 말했다. 그러나 워킹맘은 달랐다. 육아로 가용할 수 있는 업무 시간이 줄고 체력 분배도 필요했다. 매 순간이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이었다. 다만 이 대표는 "아이를 길러보니 서비스 대상에 대한 이해가 남다르고 조직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도 포용력이 생겼다"고 평가했다.
그의 진짜 도전은 지금부터다. 3년 후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아이 친구들이 모두 퍼핀을 쓰게 만드는 게 목표다. 이 대표가 자기 사업을 하는 것처럼 아이도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게 길잡이가 되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보험, 대출, 증여 등 가족 생애주기에 따라 종합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한다. 이 대표는 "워킹맘이야 말고 고객을 가장 잘 알고 이를 사업화할 수 있는 훌륭한 서비스 메이커"라며 "사회에 진짜 필요한 금융앱으로 아이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민희 대표는
1986년 울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소비자아동학과를 졸업하고 2011년 바풀을 창업했다. 2017년 바풀을 네이버 관계사 라인플러스에 매각하면서 라인플러스에 스카웃됐다. 그곳에서 5년간 네이버 AI 서비스 클로바를 비롯해 라인 신규 서비스 기획을 맡았다. 지난해 라인플러스를 그만두고 레몬트리로 두 번째 창업에 나섰다.
최유리 기자 yrchoi@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