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예산안 10조9000억원 증액은 '팩트'
과거 예산 추이와 비교해 복지 예산 증가세 현저히 둔화
새 정부 첫 예산인 점 감안하면 복지 의지 의문
세부사업 분석으로 보면 복지분야에서 최대 삭감
늘어난 예산은 공적연금, 기초연금 자동 증가분이 대부분 차지
내세우는 기본 중위소득 인상 역시 2020년 산식 적용에 불과
[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윤석열 정부의 내년도 복지 예산의 둘러싸고 진위 공방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야당에서는 ‘비정한 예산’이라고 지적하는 반면 여당에서는 ‘다정한 예산’이라는 주장을 펴며 맞섰다. 향후 5년간 현 정부의 복지정책의 방향타 역할을 할 이번 예산의 방향성을 짚어봤다.
지난 8일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예산안 심사방향 관련 기자회견’을 통해 "윤석열 정부의 민생·약자를 위한 사회복지분야 전체 예산은 올해보다 10조9000억원 증가했지만, 민주당은 특정 사업 예산이 줄어들었다는 거짓 선동을 지속한다"고 비판했다. 다음날인 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정의당 의원들은 참여연대와 함께 국회 소통관에서 ‘윤석열 정부 복지예산 축소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이보다 한참 앞서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된 직후인 9월2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내년도 복지예산에 대해 ‘비정한 예산’이라는 지적에 맞서 "다정한 예산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달 25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경제가 어려울수록 더 큰 어려움을 겪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 책무"라면서 "정부는 재정 건전화를 추진하면서도 서민과 사회적 약자들을 더욱 두텁게 지원하는 ‘약자 복지’를 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내년도 복지 예산의 성격은 무엇일까.
복지예산 논란의 쟁점을 규명하기 위해서 실제 예산의 규모와 과거 예산 규모 등과의 비교, 예산안의 성격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사회복지 예산 규모의 변화
총액을 기준으로 했을 때 여당의 설명처럼 복지예산이 늘어난 것은 명백하다. 부처별로 분산된 복지 관련 예산은 ‘보건복지고용 예산’으로 통합돼 집계된다. 전체 15개 항목으로 분류된 이 예산 가운데 보건의료, 건강보험, 식품의약품안전 등 ‘보건 예산’을 제외한 기초생활보장, 취약계층지원(장애인), 공적연금, 보훈, 주택, 사회복지일반, 아동보육, 노인, 여성가족청소년, 고용, 노동, 고용노동일반, 보건의료, 건강보험, 식품의약품안전 등 12개 항목이 ‘사회복지 예산’으로 분류된다.
나라살림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내년 예산안과 지난해 본예산을 비교했을 때 전체 복지 분야 사업 869개 사업 가운데 322개 사업에서 13조2000억원의 삭감됐다. 증액된 사업은 414개 사업 모두 24조1000억원이다. 감액과 증액 사업을 모두 감안했을 때 복지 관련 예산이 10조9000억원 늘어난 것은 분명하다.
세부 분류를 살펴보면 고용부문과 주택부문에서 2조3000억원, 2조4000억원이 각각 순삭감됐다. 반면 공적연금에서 8조3000억원, 노인 부문 2조7000억원, 기초생활보장 부문 2조4000억원, 노동 부문 7000억원이 각각 늘었다.
사회복지 분야 예산은 전체적으로 예산이 늘었지만, 지난해 본예산과 비교했을 때 가장 많은 분야에서 삭감이 이뤄졌다. 사업별로 봤을 때 예산변동이 큰 폭으로 조정된 것이다. 사회복지 예산에 이어 산업·중소기업·에너지가 8조원, 국방이 6조원 등이다.
내년 예산안과 올해 예산안을 비교한 결과 사회복지 분야에서 가장 많이 삭감된 예산은 임대주택 예산이다. 임대주택 관련 사업(다가구매입임대(융자), 전세임대(융자), 행복주택(융자), 다가구매입임대출자 사업들은 등)의 경우 대부분 삭감됐지만, 통합공공임대 출자 사업과 통합공공임대 융자사업만 각각 2000억원이 늘었다. 결과적으로 전체 임대주택 관련 예산은 5조6000억원 줄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예산안이 정부에 제출된 직후 "참으로 비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주거난을 겪는 안타까운 서민들에 대해서 예산을 늘려가진 못할망정 정말 상상하기 어려울 규모로 삭감한 게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여당은 복지 분야 전체예산이 10조9000억원 늘어난 점을 강조해 ‘다정하다’ 말하고 야당은 감액된 13조2000원의 예산을 문제 삼아 ‘비정하다’ 말하는데, 중요한 점은 어디가 어떻게 늘었는지를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수석연구위원은 "예산이 어디서 줄어들고 늘었는지는 명확하다"며 "임대주택과 고용에서 예산을 줄였고, 공적연금에서 예산이 늘었는데, 이는 65세 이상 어르신 증가와 물가 상승의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2) 전체 예산 흐름에서 차지하는 비율
내년도 전체 예산은 639조원 가운데 사회복지분야 예산은 205조8000억원이다. 올해 본예산에서 사회복지 분야가 차지한 비율이 32.1%인데 반해 내년 예산은 32.2%로 늘어났다. 전체 예산에서 사회복지 분야 예산이 차지한 비율이 늘어난 것이다. 예산 증가율도 전체 예산이 31조4000억원(5.2%) 증가했을 때 사회복지 분야 예산은 10조9000억원(5.6%) 늘었다. 전체 예산 증가 폭과 비교해 복지예산 증가폭이 0.4%포인트 더 높은 것이다.
다만 과거 추세와 비교했을 때 사회복지 예산에 힘을 실어줬는지가 이번 정부 예산에서 사회복지 분야 예산의 흐름을 볼 수 있다.
2012년부터 2022년까지 본예산 증가율과 사회복지 분야 예산을 비교·분석한 결과 사회복지 예산 증가율이 본예산 증가율보다 낮은 해는 2013년과 2022년 두 해에 불과하다. 이 기간 평균적으로 본예산은 평균 6.4% 늘었지만, 사회복지 분야 예산은 8.6%포인트 늘었다. 사회복지 부문 예산이 2.2%포인트 더 빠르게 오르고 있다. 복지수요에 따른 관련 예산 확충과 고령화 등이 맞물리면서 복지 예산 증가율이 전체 예산 증가율을 웃돈 것이다.
이에 비춰 봤을 때 내년도 예산안은 사회복지 분야에 대한 예산 비중 증가폭이 크게 둔화됐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긴축 재정 방침에 따라 예산 증가율이 예년에 비해 낮아졌지만, 복지 예산 증가세 둔화는 이보다 더 낮아진 것이다.
또한 주목할 점은 내년 예산이 윤석열 정부 첫 예산안이라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나 문재인 정부의 경우 집권 초 공약 이행 등을 위해 임기 초 복지예산이 상승세를 보이다 임기 후반이 될수록 상승세가 둔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가령 박근혜 정부 첫 예산안인 2014년 예산의 경우 4.0% 늘었는데, 사회복지 분야 예산은 9.6% 증가했다. 이후 복지 예산은 마지막 해에는 5.5%로 떨어졌다. 문재인 정부 역시 2018년 첫 예산안 편성 당시 전체 예산은 7.1% 늘었는데, 사회복지 예산은 12.1% 늘었다. 이후 복지예산은 하락세를 보여 5.4%로 낮아져 전체 예산 증가폭 8.9%보다 낮기도 했다. 정권 초기에 공약 이행 등을 위해 복지 강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역대 정부 예산의 특성을 고려하면 윤석열 정부의 첫 예산에는 사회복지 예산안에 힘이 실려 있어 보이지 않는다.
최현수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출범하면 첫 예산을 짤 때 국정과제 관련 부분을 적극적으로 담으려고 하는데 이번 예산에서는 이런 사업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며 "(내년 예산은) 자연적으로 증가된 부분이 많다"고 했다.
3) 예산안의 성격
수많은 사회복지 관련 예산 사업이 늘고 줄어듦에 따라 구체적으로 예산안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주요 증액 사업에 대해 살펴봤다.
이번 사회복지 예산에서는 가장 많이 늘어난 부분은 공적연금과 관련된 부분이다. 공적연금 관련 예산은 올해 63조원에서 내년에 71조2000억원이 늘어난다. 연금이 8조3000억원 늘어난 것이다. 이런 예산 증가는 공적연금(국민연금, 공무원연금, 군인연금)의 수급자 증가에 따라 자연 발생한 것이다.
보건복지부 내 노인관련 예산도 내년에 2조3000억원 늘었는데, 상당 부분이 기초연금 인상에 해당한다. 기초연금은 올해 16조3000억원에서 18조5000억원으로 늘었다. 기초연금 수급자가 631만명에서 665만명으로 늘었고, 기준연금액도 물가 인상 등을 고려해 30만1500원에서 32만1950원으로 인상했기 때문이다. 복지부 노인관련 예산 증액 가운데 94.9%가 기초연금 인상에 따라 늘어난 예산인셈이다.
이번에 기초연금이 4.7% 인상된 것은 물가 상승률을 반영해 매년 지급액을 올리도록 규정한 기초연금법에 따른 것이다. 앞서 대선 기간 윤 대통령은 단계적으로 기초연금을 40만원까지 인상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번 인상은 윤 대통령의 대선공약과 무관하게 기존 법에 따라 결정됐다.
이미 공적연금과 기초연금 인상만으로도 내년도 사회복지 예산 증액분이 다 채워진 셈이다. 이 모두는 정부의 의지와 관계없이 기존 법에 따라 의무적으로 예산이 늘어난 것이다.
이런 의무적 지출을 제외하고 내년 예산에서 ‘약자 복지’라고 강조되는 것은 기준 중위소득이 5.47% 증액된 것이다. 생계급여(기준중위소득 30% 이하)나 의료급여복지(기준중위소득 40% 이하) 대상자 선정과 급여를 결정하는 데 있어 기준인 중위소득이 올라 선정 대상이 확대된 것이다. 기준 중위소득 인상은 내년 예산안에서 정부가 ‘약자 복지’로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 역시 시정연설을 통해 "약자 복지를 추구한다"며 "기준 중위소득을 역대 최대폭으로 조정하여 4인 가구 기준 생계급여 최대 지급액을 인상함으로써 기초생활보장 지원에 18조7000억원을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기준 중위소득 상향은 법적 의무 이행은 아니지만, 정부의 정책의지로만 해석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 역시 기준 중위소득 인상에 따른 기존 합의를 이행한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기초생활보장 제도의 수급 자격을 결정하는 데 있어 핵심인 기준 중위소득은 그동안 정부의 공식 통계인 가계금융복지조사의 중위 소득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때문에 2020년부터 정부는 기준 중위소득을 단계적으로 보정을 밟기로 했다. 이번에 중위소득이 5.47% 오른 것은 2020년에 기초한 산식을 적용한 것이다. 앞서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 산식대로 적용하지 않았기에, 이번 인상이 역대 최대 증가폭을 보이기는 했다. 다만 이번 인상에는 최근 물가 상승세가 강력하게 작용했다. 산식에 따른 기준 중위소득 인상을 하더라도 실질 구매력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최 연구위원은 "기준 중위소득 5.47% 인상한 것은 그렇게 내세울 것이 못 되는 것"이라며 "과거 문재인 정부에서는 기획재정부가 원칙대로 합의하지 않고 끌려갔던 것이라면 지금은 고물가 상황이고 경제도 안 좋다 보니 민간위원들이 원칙을 지키자는 주장을 강하게 했기 때문에 결국 기재부가 원하지 않았는데 받아들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지난 9일 9일 포용재정포럼 주관으로 열린 ‘경제 사회 위기 속 나라 살림,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정책 토론회에서 "기준 중위소득 공식통계인 가계금융복지조사 중위소득보다나 낮아 그 격차를 위해 단계적으로 조정하기 위한 로드맵에 따라 인상률이 결정된 것"이라며 "내년 인상률은 2015년 기준중위제도 도입 이후 최대 수치지만 최근 물가를 감안하면 기존 복지급여의 실질 구매력도 확보되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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