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 손 컬럼비아대 바너드칼리지 심리학과 교수
"나도 아직 가면 있어"
여자·동양계 등 가면 써 온 성장기
집필 활동과 자녀들과의 대화 통해 극복
"타고 났다는 생각 버려라… 안전하게 들켜야"
"모든 가면이 나쁘지 않아… 건강한 가면 쓰자"
[아시아경제 이춘희 기자] "나도 가면을 엄청나게 쓰고 있다."
괜찮은 척, 완벽한 척을 위한 가면을 쓴 '임포스터(impostor·사기꾼)'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해 온 리사 손 컬럼비아대 바너드칼리지 심리학과 교수는 자신 역시 아직 가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손 교수가 쓴 첫 가면은 언어였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인 부모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영어가 서툴렀다. 손 교수는 "초등학교에서 영어로 말하면 실수를 하게 되니 아이들이 웃고 놀렸다"며 "이를 숨기기 위해 과하게 공부를 시작해 테스트에서 늘 100점을 맞기 시작했다. 그러자 친구들과 선생님이 '리사 영어 잘하네, 똑똑하다'고 말하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악순환이 시작됐다.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는 걸 스스로는 잘 알지만 시험에서는 완벽한 성적을 거두니 누구도 실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게다가 '똑똑하다', '천재'라는 평가가 나오는 순간 기울였던 노력은 어디에도 말할 수 없이 등 뒤로 숨겨야 하는 치부가 됐다. 손 교수는 "점수에는 과정이 없다"면서 "많은 이들이 시험 점수를 '진짜'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자신에 대한 메타인지(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가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장하면서 가면은 하나둘 늘어갔다. "운동을 좋아했지만 부모님들은 '뛰어다니지 마라', '예쁘게 하고 다녀야지'라고 말했다"는 손 교수는 "여자, 큰딸, 착한 척, 얌전한 척 등 많은 가면을 써야 했다"고 말했다. 선생님들은 다른 아이들은 시끄럽게 굴어도 당연히 여겼지만 그에게는 "리사, 넌 그러면 안 되지"라고 했다. 교수들은 시험 점수가 잘 나오지 않으면 그에게 유독 더 실망했다. 사회적으로도 미국에서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한국에서는 한국인인 척해야 하는 등 가면은 날로 많아졌다. 손 교수는 "가면의 가장 큰 문제는 익숙해지면서 스스로도 타고 났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라며 "자신을 바꿀 수 없게 되니 '나는 이런 딸', '나는 이런 여자'로 여겨 스스로 멈추게 된다"고 토로했다.
심리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런 배경이었다. 손 교수는 "어릴 때부터 메타인지, 가면 같은 개념을 알지는 않았지만 '척하는 것'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며 "교포로서 문화적인 것에 대한 흥미도 많다 보니 심리학에 흥미가 생겨서 전공으로 택하게 됐다"고 전했다.
오랫동안 써 온 가면을 벗을 수 있게 됐던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손 교수는 책을 쓰고 아이들을 기르면서 가면을 벗을 수 있게 됐다고 돌아봤다. 그는 "첫 책(<메타인지 학습법>)이 나오면서 가면을 들킨 후 두 번째 책(<임포스터>)에서는 모든 걸 고백했다"면서 "나는 가짜다.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니고, 문제가 많고 맨날 울고 숨어있다는 걸 책에 모두 담았다"고 했다. 그 후에 찾아온 건 해방이었다.
손 교수는 "그 후로 너무 편해졌다"며 "가장 행복한 건 우리 딸, 아들이 가면을 쓸 필요가 없어지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딸과 아들을 키우고 있는 그는 매년 방학 때마다 아이들과 한국을 찾아 한국식 교육을 받게 한다. 손 교수는 "우리 아이들은 하고 싶은 걸 하고, 자기 의견을 키워나가고 있다"며 "한국에서는 미국에서 왔다고 자랑하고, 미국에 가서는 한국인임을 자랑한다"고 뿌듯해했다.
그는 아이들이 가면을 벗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은 부모가 실수했다는 걸 보여주면 다 용서하게 된다"며 이를 통해 '안전한 들키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친구들을 보면서는 아직 슬프다고도 했다. 손 교수는 "아이들의 친구들을 보면 내가 어릴 때처럼 숨어 있다"며 "한국은 너무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 가면을 여전히 잘 벗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가면을 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손 교수는 '타고났다'는 생각을 가장 먼저 버려야 한다고 했다. 그가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MBTI) 검사를 경계하는 이유다. 손 교수는 "내향적(I)이라는 결과가 나오면 자신을 내향적이라는 상자에 집어넣게 된다"며 "자신을 평가하는 만큼 이 역시 가면인데도 아이들은 점수화된 지표를 그대로 믿게 된다"고 경고했다.
동시에 "들키는 걸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도 했다. 그는 "부교수에서 정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게 두려워서 4년이나 신청을 미뤘던 적이 있다"면서 "내가 이룬 성과가 평가 과정에서 사실 타고난 덕분이 아니라 노력 덕분이라는 게 들통날까 봐 두려웠다"고 밝혔다.
손 교수는 다만 모든 가면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는 "가면이 일종의 예의일 수도 있는 만큼 모든 가면이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고 알렸다. 예를 들어 화장한 후에 어떤 것으로 어떻게 화장했다고 스스로 그 가면을 자랑할 수 있다면 그건 오히려 '건강한 가면'이라는 것이다. 손 교수는 "가면을 썼다는 사실을 숨기는 게 임포스터의 문제"라며 "중요한 건 긴장하지 않고 들켜도 된다는 생각으로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고 드러낼 수 있는지다"고 덧붙였다.
리사 손 교수 프로필
▲펜실베이니아대 학사 ▲컬럼비아대 박사 ▲프린스턴고등연구소 방문연구원 ▲컬럼비아대 바너드칼리지 심리학과 교수 ▲주요 저서 <메타인지 학습법>, <임포스터>
이춘희 기자 spr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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