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22년 10월 19일(수) 오전9시~오후5시20분
장소 | 소공동 롯데호텔 크리스탈볼룸(2F)
[아시아경제 부애리 기자] "여성들에게 그저 '열심히 하면 된다'고만 말하는 것은 사회변화를 일으키기 어렵습니다."
실리콘밸리 지역을 중심으로 미국, 캐나다 등으로 이주한 한인 여성들의 취업과 커리어 창출을 돕는 비영리 스타트업 심플스텝스(Simple Steps)의 김도연 대표가 한 말이다. 심플스텝스는 구직에 필요한 트레이닝 프로그램, 현지 네트워킹, 일자리 매칭 등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다. 한인 여성들이 원하는 취업을 이뤄낼 수 있도록 하는 게 이들의 최종 목표다. 처음에는 여성들 개개인을 돕는 일에 집중했지만, 최근에는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통해 고용주에게는 원하는 인재를 찾아주고, 여성들에게는 취업 기회를 주는 선순환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김 대표는 아시아경제와 진행한 화상 인터뷰에서 "(창업한 뒤) 처음 2년 동안은 일하고 싶은 여성들을 도와주는 데 전력을 다했는데, 결국 여성들이 지속가능하게 일할 수 있게 하려면 다른 스택홀더(이해관계자)가 이 일에 동참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운을 뗐다.
심플스텝스는 여성들에게 취업에 대한 조언을 해줄 뿐만 아니라, 한인 여성들을 필요로 하는 기업들을 찾아 '파트너십'이라는 이름으로 지원한다. 특히 최근에는 한국의 IT기업 등도 실리콘밸리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수요가 늘었다. 이들이 심플스텝스의 최우선 타깃이다. 김 대표는 "한국계 스타트업들을 연결해주는 것이 첫번째고, 한국 기업인데 미국에 지사가 있는 큰 기업들이 두번째 타깃이다"라며 "기업들을 움직여서 경력 여성들을 채용할 수 있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민자로 직업을 찾는 과정 힘든 시기…아이디어 얻어"
카이스트(KAIST)를 졸업한 김 대표는 한국 IBM에서 전공을 살려 일하던 중 사회적기업 및 비영리 조직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꾸준히 했고 2007년 미국으로 향했다. 한국에서 사회적기업에 대한 개념이 널리 퍼져있지 않았고, 커리어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미국에서는 대학원에 관련 프로그램도 있고, 이 일을 커리어로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며 "학교 네트워크로 일을 시작해보자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녹록치 않은 과정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 하버드 캐네디 스쿨에서 석사 과정을 거친 김 대표는 비자 등의 문제로 취업 과정에서 힘든 시기를 겪었다. 김 대표는 "일했던 곳에서 스폰서를 안해줘서 공백이 생겼다"며 "이민자로, 유학생으로 와서 직업을 찾는 과정이 너무나 힘든 시기가 있었고 인생이 동굴 속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특히 둘째 아이를 낳으면서 네트워크나 커뮤니티가 전혀 없었고 이런 시기를 겪으면서 심플스텝스의 아이디어가 시작됐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2017년 시작한 심플스텝스는 어느덧 5년이 되면서 단순한 중개 플랫폼의 수준을 넘어서 하나의 커뮤니티가 됐다. 2000명이 넘는 인원이 심플스텝스의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있고, '슬랙'을 통해 꾸준히 서로 소통하고 있다. 심플스텝스 소속 직원들 외에도 자율적으로 심플스텝스를 위해 일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도 다수 존재한다. 이명원 파나소닉 북미본부 최고경영자(CEO)도 어드바이저(자문가)로 참여하고 있다.
"美서 취업, 작은 프로젝트부터 스텝을 밟는 것이 중요"
김 대표는 "한인 여성들이 현지 경력 없이 미국에서 처음 시작하는 일은 대부분 본인의 기대에 못미친다"며 "한국에서의 경력을 많이 활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누구에게 말하기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1~2년만 견디면 거기서 열리는 기회들이 엄청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에서 8년 간 쉬었던 경력단절여성(경단녀)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엔지니어링 경력이 있었던 이 여성은 처음에는 심플스텝스의 소개로 한국 IT업계 종사자들의 웹사이트를 업데이트하는 디자인 프로젝트 일을 시작했다. 단순한 파트타임 같은 일이었지만, 이 과정에서 눈에 띄어 실리콘밸리의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 기업 센드버드의 파트타임 직업으로 일할 기회를 얻었고, 이후 정규직 전환으로까지 이어졌다.
김 대표는 "미국 학위나 경력이 없는 상태에서 본인이 혼자 코딩을 공부해서 센드버드에 지원했다면 힘들었을 일"이라며 "첫번째가 있어야 두번째, 그리고 다음, 다음이 이어져 백번째까지 갈 수 있다. 작은 프로젝부터 조금 더 큰 것, 그 다음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여러나라에 오피스 두는 한국계 회사 노리는 것도 팁"
그는 이주 여성 외에도 해외에서 취업하고 싶은 국내 여성들을 위한 조언도 덧붙였다. 김 대표는 "예전에는 한국에 살면 미국에서 일하는게 99.9% 불가능이었다면 코로나19를 계기로 이젠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비대면 환경이 발전했고, 해외에 여러 오피스를 두는 한국 기업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는 "예를 들어 전략적으로 찾아보면 일부 스타트업의 경우 한국의 업무가 절반, 미국의 업무가 절반이어서 한국과 미국에 각각 직원들이 있는데 먼저 한국 오피스에 입사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른 나라에 있는 사람들과 협업하게 되고 회사 내부에서 트랜스퍼(해외 사무실로 옮기는 것) 기회가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것부터 전략적으로 '스텝'을 밟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취업 과정에서 '커뮤니티'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열번을 넣었는데 하나가 되거나, 백번 넣었는데 안되거나 이러면 사람이 자꾸 작아진다"며 "심플스텝스에서는 '당신이 연락을 못 받은 것은 당신이 통제할 수 없는 외부요인 때문이지 당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라는 말을 계속 해준다. 혼자였다면 주저 앉았을 상황을 커뮤니티에서 도움을 받고 멘탈을 관리하면서 함께 간다"고 했다.
"한국 여성의 커리어를 위한 플랫폼으로 지속"
심플스텝스의 사업은 소위 말하는 돈이 되는 일이 아니다. 주로 기부금과 일부 유료 프로그램을 통한 수익으로 사업을 꾸려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김 대표가 이곳에 매달리고 있는 이유는 이런 커뮤니티가 하나 쯤은 있어야 한다는 소명의식 때문이다. 그는 "이 일을 시작한 이유는 여성들의 인생 주기에서 어떤 시점에서는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 때문이었다"며 "니즈가 있지만 아무도 (이런 플랫폼을) 만들지 않았던 이유는 돈도 안되고 임팩트(영향력)를 만들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심플스텝스를 가능한 오래 유지하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다. 김 대표는 "오랫동안 이 커뮤니티가 남아있으면 좋겠다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라며 "또 여성들만 바뀌어서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인데 이런 것에 대해서도 (사회적)목소리를 내는게 심플스텝스의 역할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도연 대표 프로필
▲1976년생 ▲카이스트(KAIST) 생물과학과 학사 ▲카이스트 경영공학과 석사 ▲하버드 케네디 스쿨 공공정책 석사 ▲IBM 컨설턴트 ▲JUMP 공동창업자 ▲심플스텝스 창업자 및 대표
부애리 기자 aeri34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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