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 성공신화, 켈리 최 회장…그가 전하는 선한 영향력
영화보다 더 극적인 인생 스토리…'웰씽킹' 메시지로 진화
일시| 2022년 10월 19일(수) 오전 9시~오후 5시20분
장소| 소공동 롯데호텔 크리스탈볼룸(2F)
[아시아경제 서믿음 기자] "개척하는 것과 앞서간 이(롤모델)를 따라가는 것은 큰 차이다." 영화보다 더 극적인 인생 드라마를 일군 인물이 있다. 그의 이름 뒤에 따라붙는 수식어는 '흙수저'다. 타인이 일궈 놓은 양질의 토양을 물려받기 보다 스스로 개척해 미래 세대에게 전하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영국 부자 상위 0.1%에 이름을 올린 한국 출신 여성. 유럽 12개국 1200개 매장에서 연 매출 6000억원을 올리는 세계적인 기업 켈리델리의 켈리 최 회장(본명 최금례·54)이 주인공이다. 한국에도 부자로 불리는 이는 많지만, 최 회장처럼 드라마틱한 삶을 경험한 이는 드물다.
그의 어린 시절은 '곤궁하다'는 단어 하나로는 표현하기 어렵다. 1968년 전북 정읍에서 6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그는 말 그대로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경험했다.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가 생계를 사실상 도맡았다. 아이들을 굶기지 않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억척스럽게 일했지만, 현실은 나아지지 않았다.
아이들의 꿈과 희망도 그 현실에 맞게 조정됐다.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했다. 학교 친구들과 추억의 시간을 공유해야 할 나이에 일터로 나서야 했다. 최 회장 6남매도 그랬다. 배움의 열망이 컸던 최 회장에게도 학교 대신 공장에서의 삶이 시작됐다. 공장의 배려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면서 흩어진 꿈의 조각들을 모아봤지만 척박한 삶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돈이 없어서 한겨울에도 이불도 없이 쪽잠을 청하기도 했다. 그 시절 소녀 공들의 처지는 대부분 비슷했다. 최 회장은 그런 친구들과 10대 시절을 보냈다. 함께 웃고 울면서 지친 삶을 위로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으려 다들 노력했다.
최 회장의 절친인 영숙이의 안타까웠던 그 사건도 그때의 일이었다. 어느 날 일을 마치고 학교로 가는 버스 안에서 백설기 빵을 먹다가 기도가 막혀 세상을 떠났다. 가장 친했던 친구의 어이없는 죽음. 충격과 고통, 절망의 소용돌이가 10대 소녀의 머릿속을 휘감았다. 최 회장은 공장 생활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최 회장은 절망의 그림자를 떼어내려 애를 썼다. 삶의 빛을 잃어버리지 않고자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공장에 근무하던 시절 와이셔츠 디자이너를 보고 품었던 동경심이 그의 삶에 변화의 씨앗으로 이어졌다. 패션 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향했다. 일본어를 할 줄 아는 것도 아니었다. 유학 생활을 위한 여윳돈도 없었다.
하지만 동생에게 유서를 맡기고 떠나오는 굳은 의지가 그를 지탱했다. 주경야독하면서 패션 공부를 이어갔다. 그런 계기로 패션의 나라, 프랑스와 인연을 맺게 됐다. 프랑스어 역시 낯설기만 했다. 프랑스 생활 역시 쉽지 않았지만, 최 회장에게는 '의지'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그의 곁에 서 있던 바로 그 존재.
최 회장은 프랑스에서 전시사업을 시작해 파리에 본사를 두고 한국에 지사를 둘 정도로 성공을 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다시 불행의 시간이 찾아왔다. 사업의 어려움이 이어졌고, 10억원의 빚만 남겨 놓을 정도로 상황은 악화했다. 파리의 센 강에 몸을 던질 생각을 할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허망하게 죽을 수 없었다. 버텨보자는 생각으로 스승을 찾기 시작했다. 롤모델이 있어야 지름길로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무려 1000명의 사람을 스승으로 삼았다. 그가 선택한 스승의 자격은 단순하다. 특정 영역에서 배울 점이 있으면 모두 스승으로 간주했다. 책과 강연, 언론인터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콘텐츠를 검색해 가르침을 구했고 자기화했다.
최 회장은 이를 “먹어버렸다”고 즐겨 표현한다.
그렇게 만난 이 중 하나가 초밥의 대가 야마모토 선생이다. 당시 프랑스에서 막 형성되기 시작한 초밥 도시락 시장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야마모토 선생에게 매달린 최 회장의 예측은 적중했다. 거절을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일이 잘 풀렸다.
두 번의 요청 만에 협조를 끌어냈고, 고품질 초밥을 유통하면서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다. 맛은 물론 형형색색의 색감은 프랑스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을 자극했다. 이른바 켈리델리의 성공 신화는 그의 삶에서 종착역이 아니다. 그는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삶, 의미 있는 시간을 개척하려 한다.
최 회장은 대가와의 만남을 우연으로 여기지 않는다. 부자 중에 자기 부를 통로로 삼아 타인에게 부의 길을 열어주려는, 선한 영향력을 전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에 주목했다. 그는 이를 ‘웰씽킹’이라 명명했다. 선한 영향력을 목적으로 한 생각과 태도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웰씽킹’에 우선해야 할 태도는 돈에 관한 ‘르상티망’을 없애는 것이다. 약자가 강자에게 품는 증오, 복수, 질투, 분노인 르상티망을 바로잡아 돈에 관한 위악적인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충고한다.
최 회장은 부자를 ‘남을 돕는 사람, 자기 결정권이 있는 사람, 사회 이익을 위해 앞장서는 사람’ 등으로, 돈을 ‘남을 도울 수 있는 수단, 있으면 편리한 것’으로 정의한다. 아울러 친구, 인정, 공헌, 명성, 봉사, 부 등의 핵심 가치를 명확히 하는 것도 중요하게 여긴다.
자기 확신 역시 강조하는 덕목이다. "켈리델리가 성공할 줄 알았냐"는 질문을 받으면 최 회장은 "그렇다"고 대답한다. 물론 100% 성공할 줄 알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최 회장은 그냥 믿어버렸다고 한다. 이건 목표하는 바를 공언할 때 얻는 힘이기도 한데, 그는 공언하고 나면 결단을 실현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아붓게 된다면서 이런 ‘믿음의 힘’을 강조한다.
최 회장의 루틴 중 하나는 시각화다. 인간은 3초마다 새로운 생각을 하고, 그 무의식에 영향을 받기에 이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비우기와 채우기로 구분되는 시각화를 해야 한다는 의미다.
먼저 부정적인 생각을 모두 비워내고 텅 빈 공간을 긍정적 미래상을 심으면 된다. 청사진 시각화로 중장기(5~10년) 꿈을 이뤘을 때 가장 원하는 순간을 사진 한 장으로 남기고, 영화감독 시각화로 성공 과정을 구상하면 무의식을 통제할 수 있다고 그는 설명한다.
왜 누구는 부자로, 누구는 빈자로 사는가. 최 회장은 ‘웰씽킹’에 답이 있다면서 누구나 할 수 있다고 권면한다. “그도 할 수 있고, 그녀도 할 수 있는데, 나라고 왜 못 하겠어?” 강연 때마다 전하는 최 회장의 메시지는 환경의 벽 앞에서 쉽게 좌절하는 우리에게 전하는 깊은 울림이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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