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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고장 '중국산' 에스컬레이터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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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고장은 당일 바로 수리 가능하지만, 큰 고장은 부품 수급 등에 시간 걸려"
국내 에스컬레이터 생산공장 한 곳도 없어…가격경쟁력 잃자 중국으로 공장 옮겨
국민편의 위한 수직교통망, 자국 산업 보호 필요

잦은 고장 '중국산' 에스컬레이터의 교훈 서울교통공사 지하철 8호선 암사역에서 유지보수업체 직원들이 고장난 에스컬레이터를 수리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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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 일주일에 두 번 병원에 가기 위해 상도역에서 지하철을 타야 하는 장순이(78) 씨는 다리가 불편해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힘들다. 집에서 500m 정도만 걸어가면 에스컬레이터가 보인다. 엘리베이터가 더 편하지만 길을 하나 건너야 해서 주로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한다. 장 씨는 "에스컬레이터가 너무 자주 멈춰 불편하고, 아직도 고장 난 곳이 있다"고 불평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최대한 빨리, 당일이라도 수리하려고 노력하지만 중요 부품을 교체해야 하는 경우에는 기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면서 난감해했다. 에스컬레이터 한 대만 멈춰도 민원이 빗발친다. 심지어 일부 어르신들은 작업 중인 용역직원에게 욕설하거나 침을 뱉기도 한다. 오재원 서울교통공사 기술본부 부장은 "디딤판이나 디딤판 체인을 교체해야 할 정도의 큰 고장이면 용역업체에 발주를 넣고, 부품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 수리를 해야 하므로 수리 기한이 얼마나 걸릴지 단정할 수가 없다"고 부연했다.


지난 8월 태풍과 폭우로 침수 피해를 본 서울 시내 지하철 7개 역(중복 포함)의 경우 한 달 넘게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가 가동되지 못하면서 지하철 이용객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이 서울교통공사에서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11일 현재 침수피해가 발생해 에스컬레이터가 고장 난 역사는 62개 역의 89대, 엘리베이터 고장 역사는 36개 역 45대다. 에스컬레이터는 5개 역에서 15대가 미복구 됐고, 엘리베이터는 3개 역 3대가 미복구된 상태다. 서울교통공사는 엘리베이터는 10월까지, 에스컬레이터는 11월까지 교체·수리를 완료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하철 이용객들은 늦으면 11월까지 두어 달은 더 해당 역사에서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수 없다는 말이다.

잦은 고장 '중국산' 에스컬레이터의 교훈 서울교통공사 지하철 8호선 암사역에서 고장난 에스컬레이터를 수리하자 지하철 이용객들이 다른 출구를 찾아 돌아가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중국산 에스컬레이터 부품 수급 늦고, 품질도 문제

에스컬레이터의 수리가 이처럼 늦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중국산 부품 수급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에 에스컬레이터를 생산하는 공장이 없다는 점이 문제의 시발점이다. 정 의원이 한국승강기안전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에스컬레이터의 국산 비율은 32.3%에 불과하다.


에스컬레이터를 수입·유지·보수하는 승강기 업계는 이 비율마저도 지나치게 높다는 주장이다. 한국승강기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에스컬레이터 완제품은 100% 중국산"이라면서 "일부 부품의 경우 1~2개 업체에서 주문에 따라 생산하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국산화 비율은 ‘0(제로)’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승강기안전공단 관계자는 "국내 생산한 부품을 인증한 자료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수치는 이상이 없다"고 반박했다. 타 산업용으로 생산되는 구동기와 제어반, 구동체인 등의 부품을 에스컬레이터 규격에 맞춰 주문 생산하고 있어 완제품 생산은 안 되지만, 국내에서도 부품은 일부 생산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에스컬레이터 완제품은 중국에서 2등분이나 3등분으로 분할해 국내로 들여와서 설치 현장에서 조립한다. 에스컬레이터는 가동시간에 비례해 부품 소요도 많고, 고장도 잦기 때문에 유지·보수를 위한 교체 부품들이 계속 공급돼야 한다. 그러나 중국산 부품은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데다 품질마저 떨어진다.


중국으로 옮겨간 공장, 시간과 비용 낭비 심각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인 2000년대 초반 중국에 공장을 둔 오티스와 티센크루이프 등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산 저가 제품으로 국내 시장을 장악해 나갔다. 이에 국내 공장을 유지하며 버티던 현대엘리베이터마저 2014년 에스컬레이터 부품 생산기지를 중국으로 완전히 옮기면서 국내 생산기지는 단 한 곳도 남지 않게 된다.


이기랑 대륜엘리스 대표는 "사실상 2000년대 초반부터 20년 동안 전량 중국에서 수입해서 쓰고 있다고 봐야 한다"면서 "당시 중국 근로자들의 급여가 우리의 8분의 1 수준이라 가격경쟁력이 상대가 안 됐다. 유일하게 국내 남아있던 현대엘리베이터도 국내 공장을 중국으로 옮겼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국내에서 에스컬레이터 부품을 생산하면서 국산 비율이 32.3%까지 도달한 것도 전량 중국에서 수입하면서 불편함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경렬 삼정엘리베이터 대표는 "한국과 중국의 검사기관끼리 상호협정을 맺지 않아 ‘KS마크’와 ‘CCC마크’를 서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수입 후 다시 인증받아야 한다"면서 "시간과 비용의 낭비가 심각하다 보니 비용이 적게 드는 일부 부품을 국내서 다시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잦은 고장 '중국산' 에스컬레이터의 교훈 고장으로 한쪽 방향만 운행하고 있는 에스컬레이터. /문호남 기자 munonam@


중국 코로나 봉쇄, 국내 건설 현장 납기 두 달 밀리기도

지난 4~5월 코로나로 인한 중국 상하이 봉쇄는 국내 승강기 업계를 각성시키는 계기가 됐다. 당시 중국에서 제품생산이 중단되면서 국내 건설 현장은 아예 아수라장이 됐다. 이기랑 대표는 "근로자가 출근을 못 하고, 공장의 전기를 끊어버려 생산이 중단되니 에스컬레이터 납기가 한 달, 길게는 두 달까지 밀리면서 지체상금을 물어야 했다"면서 "태풍 불면 배 못 뜨고, 명절이나 국경절 때는 장기간 공장 문을 닫기 때문에 국내서 납기를 맞추려면 요구 조건을 모두 들어줄 수밖에 없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경쟁 없는 산업의 폐단도 심각한 수준이다. 이경렬 대표는 "한국이 바보짓을 했다. 기술 유출이 너무 많이 됐고, 이제 제조하지 않으니 기술력도 떨어져 도로 배워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지금도 그렇지만, 날이 갈수록 중국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기랑 대표도 "에스컬레이터 산업 전망은 유망하지만, 부품 수급이 어려움 등으로 인한 피해는 앞으로도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지난 20년간 경쟁자 없이 독주하다 보니 품질은 떨어지고 가격은 치솟고 있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대당 평균 7000만원에 거래됐던 에스컬레이터 가격은 지난달 8000만원에 거래됐고, 이달 들어서는 8200만원을 호가하고 있다. 중국도 건설경기가 불황이라 에스컬레이터 가격을 올리고 있어서다. 미국과 중국의 다툼으로 원자재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올해 들어 자잿값만 30% 인상됐고, 해상운임과 환율상승 등 1년 전보다 원가비용은 60%나 올랐다.


가격경쟁력 떨어져도, 자국 산업 보호해야

에스컬레이터는 엘리베이터와 함께 지하철이나 백화점, 쇼핑몰 등 공공장소나 이용자 복합 다중 장소에 설치·운용되는 수직 교통수단이다. 지난 8월 말 현재 국내에는 모두 3만2978대의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돼 있다. 잠시라도 멈출 경우 국민의 불편을 초래하는 만큼 전문가들은 국가기간 교통망에 포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강인구 한국승강기대학교 승강기공학부 교수는 "에스컬레이터 산업이 가격경쟁력이 떨어지지만,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서는 에스컬레이터 산업이 유지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기업이 장사가 잘되는 품목과 잘 안되는 품목을 함께 운영하면서 구색을 갖추는 것처럼 에스컬레이터 산업은 대기업의 구색에 필요한 산업"이라면서 "정부의 정책적 지원만 뒷받침된다면 국민편의시설을 공급한다는 명분으로 산업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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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와 전문가 모두는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가 포함된 승강기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최저가 입찰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경렬 대표는 "에스컬레이터 산업은 언젠가는 다시 가져와야 할 산업"이라면서 "안전을 강조하면서 최저가격으로 입찰해야 하고, 최고 사양을 원하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했고, 강 교수는 "정부가 관리하는 역이나 지하철 등 국민편의시설을 설치하는데 가격경쟁으로 입찰하도록 하면 국내 기업이 이길 수가 없다"면서 "최저가 입찰제에 대한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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