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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라이트]한마디 대사 없어도 고독과 방랑을 말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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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양조위
'중경삼림' 경찰 663 화려한 홍콩과 대비되는 고독한 영혼
'해피 투게더' 눈빛과 표정연기 절정 치달아 "그만이 가능한 연기"
'화양연화' 극도로 미묘·섬세한 표현…사소한 표정으로 감정 전달

[라임라이트]한마디 대사 없어도 고독과 방랑을 말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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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위 감독은 1958년 상하이에서 태어나 홍콩으로 이주했다. 남다른 성장 경험은 창조적 무의식에 깊게 새겨졌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고립감을 느끼며 문화적 정체성을 탐색한다. 특유의 고독과 방랑은 양조위의 얼굴로 대변된다. 진 부인(장만옥)과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화양연화(2000)’의 주모운. ‘해피 투게더(1998)’의 여요휘도 하보영(장국영)과 함께 아르헨티나에서 표류한다.


시작은 ‘중경삼림(1994)’의 경찰 663이다. 담당구역 순찰을 마치고 카메라를 향해 걸어온다. 모자를 벗고 샐러드를 주문한다. 왕기위 감독은 여종업원 페이(왕페이)의 주관적 시점으로 보여준다. 그녀가 느꼈을 호기심을 관객과 공유하며 엉뚱한 연애를 탐닉하게 한다. 양조위는 독특한 개성으로 화답한다. 우스워지기 쉬운 넋두리에서조차 양가적 성격을 그려낸다. 변기 위에 앉아 닳은 비누를 매만지며 안타까워한다. "너무 야위었어. 전엔 뚱뚱했었는데 야윈 것 좀 봐. 왜 그래? 자신감을 가져."


백미는 여자친구와 이별을 직감한 663이 식당 앞에서 커피를 마시는 장면이다. 663과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페이만 정상적인 속도로 움직인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빨리 지나가 형체가 온통 흐릿하다. 한 쌍의 연인에게 주변의 모든 것은 어떤 의미도 없는 형형색색의 움직임일 뿐이라는 표현이다. 유기적이고 유머가 넘치며 시각적으로도 활력이 넘친다. 양조위는 진열대에 기대어 커피를 마시며 먼 곳을 응시한다. 도시의 시끌벅적한 쾌활함을 뒤로 하고 아쉬움과 갈증을 나타낸다. 순간 홍콩은 밝은 얼굴과 외로운 마음이 연결되지 못하는 고독한 영혼의 도시로 변모한다.


[라임라이트]한마디 대사 없어도 고독과 방랑을 말하는 남자


도시의 색채까지 바꿔놓는 눈빛과 표정은 ‘해피 투게더’에서 절정으로 치닫는다. 홍콩에서 멀리 떨어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방랑의 세계로 표현한다. 애초 주제가 현실로부터의 도피였다. 왕가위 감독은 "홍콩을 떠나 도망가려 할수록 우리는 홍콩으로부터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게 됐다"며 "홍콩은 어느 곳에서나 존재했다"고 말했다.


여요휘는 근심 걱정 없이 되는대로 살아가는 보영보다 훨씬 냉철하고 신중하다. 비밀스러운 표정과 시선으로 세기말의 시간에 저항한다. 그러나 보영과 사랑을 나누고 말다툼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며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해피 투게더’는 평론가 프레드릭 제임슨이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논문에서 언급한 시간의 종말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 스티븐 테오도 저서 ‘왕가위의 시간’에 "시간이 마치 움직이는 열차로 변한 듯 여요휘를 따라붙어 홍콩까지 도달한다"며 "‘해피 투게더’는 종착점이며 삶에서 어떤 특정한 시기의 종결"이라고 평했다.


[라임라이트]한마디 대사 없어도 고독과 방랑을 말하는 남자


개봉 당시에는 외설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성별을 초월한 사랑’이라는 테마 때문이다. 양조위도 같은 이유로 출연을 망설였다. 아르헨티나에 당도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탱고를 배우며 체력 훈련까지 병행했으나 촬영 첫날 정사 신을 앞두고 주저했다. 결국 수건은 벗었으나 팬티를 입은 상태에서 뜨거운 사랑을 연기했다. 훗날 그는 왕가위 감독에게 "지금 가장 후회되는 게 그날 팬티를 벗을 용기를 왜 못 냈을까 하는 겁니다"라며 아쉬워했다. 왕가위 감독은 개의치 않았다.


"양조위는 어떤 배역이든 누구 못지않게 잘 해내는 배우였다. ‘해피 투게더’에선 그걸 넘어 온전히 그만이 가능한 연기를 보여준다. 영화는 그를 위해 맞춤 제작된 것이었고, 장국영은 사실상 유가령(양조위의 아내)을 자처한 연기를 펼쳐 그를 확실하게 밀어줬다."


여요휘의 소우주도 왕가위 감독이 이전까지 닿지 못했던 공간이다. 양조위는 비밀스러운 표정과 시선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세찬 동력은 그가 ‘화양연화’에 새긴 극도로 미묘하고 섬세한 표현의 원형이 된다. 왕가위 감독은 은밀한 정을 전형적인 중국식 소심함과 억압된 욕망으로 다룬다. 셋집 아파트에 같은 날 이사 온 주모운과 진 부인. 자신의 배우자들이 불륜을 저지르는 게 아닐까 의심하면서 묘한 분위기에 휩싸인다. 이내 사랑에 빠져드는 관계는 육체적으로 순결하다. 자기 부정을 벗어나지 못하고, 앞으로 뭘 해야 할지도 모른다.


[라임라이트]한마디 대사 없어도 고독과 방랑을 말하는 남자


양조위는 사소하고 사적인 표정으로 갈구를 표현한다. 신경과민으로 사실감을 부여해 가슴 저미는 감정을 전달한다. 부드러운 각성의 배경에는 애초 복수심도 숨어 있었다. 진 부인은 "난 달라. 당신 부인 같지 않아. 난 불륜 같은 거 안 해"라고 한다. 주모운은 무엇 때문에 그녀가 자기 아내보다 낫다고 확신하는지 알 길이 없다. 그녀의 남편이나 자기 아내가 아닌 스스로 우월하다고 믿는 진 부인에게 상실감을 안기려고 한다.


여러 가지 정체성이 뒤섞인 연정은 그 자체로 형이상학적이다. 양조위는 담담한 얼굴로 폐허가 된 앙코르와트 벽에 뚫린 구멍을 향해 중얼거린다. 이 모든 것들의 시너지 효과를 자아내며 은밀한 수수께끼와 진실처럼 보이는 비밀을 만든다. 그렇게 봉인된 기억은 왕가위 감독의 의도대로 작동한다. 사랑과 행복이 방정식 등호 뒤에서 왔다 갔다 하며 끊임없이 맴돈다. 주모운의 무심한 얼굴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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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위는 좋은 위스키처럼 세월이 흐르면서 정제된 버전으로 거듭났다. 이제는 모든 동료 배우에게 존경받는다. 진정한 클래식이 됐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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