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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의 한국유사] 조선총독부가 아니라 고려총독부를 설립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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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지배’ 야욕 일제, 서울 아닌 평양에 총독부 두고 싶었다
시라토리·이나바, 만주 중요성 인식…조선 지배 강화 위해 요동반도 필요

[이상훈의 한국유사] 조선총독부가 아니라 고려총독부를 설립하라 조선총독부 모습. 서울시사편찬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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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2월 8일, 일본은 러시아 함대가 정박하고 있던 여순(旅順)을 기습했다. 9일에는 인천에 정박하고 있던 러시아 군함 두 척을 격침시키고, 다음날인 10일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러일전쟁(1904~1905)의 발발이다.


일본은 6월 만주군 총사령부를 설치해 본격적으로 만주를 공략할 준비를 했으며, 9월에는 요양(遼陽)을 점령했다. 1905년 1월 여순을 함락하고, 3월 봉천(奉天) 전투에서 러시아 대군을 물리침으로써 육상 전투는 거의 마무리되었다. 러시아는 전세를 만회하기 위해 유럽에 있던 발틱 함대를 불러들였다. 1905년 5월, 쓰시마 해협에서 러시아 함대와 일본 함대 간에 해전이 벌어졌고, 결국 일본이 승리했다.


예상과 달리 러일전쟁은 일본의 승리로 끝이 났다. 1905년 7월, 일본과 미국 사이에 일본의 한국 지배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서로 인정하는 가쓰라-태프트 각서가 조인되었다. 원래 영일 동맹을 맺고 있던 영국도 1905년 8월 동맹 내용을 개정해 일본이 한국을 ‘보호’ 조치하는 것을 승인했다. 이로써 일본은 한반도 내에서 청과 러시아의 세력을 완전히 배제하고 ‘독점적’ 지위를 차지했다.


당시 러시아는 발틱 함대의 패배와 국내에서 발생한 혁명으로 더 이상 전쟁을 수행할 수 없었다. 일본은 유리한 강화 조건을 이끌어내기 위해 마지막 작전으로서 러시아령 사할린을 점령했다. 결국 9월 5일 포츠머스 강화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을 통해 일본은 사할린 남부를 할양받고, 남만주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했다. 또 한반도에 대한 우월권을 공고히 함으로써 한국을 점령할 수 있는 토대를 확보했다.


이 무렵 만주의 중요성을 주목한 인물이 있었다. 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 1865~1942)는 도쿄제국대학 사학과 1기생으로 졸업 후 가쿠슈인대학과 도쿄제국대학에서 교수를 역임했다. 그는 조선사 연구를 시작으로 만주사, 몽골사, 중앙아시아사 등으로 연구 영역을 확장했다. 러일전쟁 당시에는 만주를 중립지로 설정하여 서구 열강을 배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이상훈의 한국유사] 조선총독부가 아니라 고려총독부를 설립하라 시라토리 구라키치

러일전쟁 이후 시라토리 구라키치는 만주와 조선의 관계에 주목했다. 조선을 확실히 확보하기 위해서는 만주를 장악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요동반도가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역사적 근거로서 고구려에 주목했다. 요동반도가 고구려의 ‘장벽’으로 작용해 수·당 제국의 고구려 침입을 막아냈던 사실을 상기시켰다. 즉 한반도는 요동반도를 확보해야 독립이 가능하며, 요동반도는 요하(遼河) 상류 유역을 확보해야 지배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일본이 한반도를 완전히 경영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요동반도에 일본세력을 둘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나바 이와키치(稻葉岩吉, 1876~1940)는 1900년대 초반 중국에 유학한 후 러일전쟁 당시 일본 육군 통역으로 종군했다. 러일전쟁 이후에는 남만주철도주식회사(약칭 만철)의 만선역사지리조사부에서 만선사(滿鮮史)를 연구했다. 역사조사부가 폐지된 이후에는 조선사편수회에 들어갔고, 1925년부터 조선총독부 수사관(修史官)으로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대한 서술을 담당했다.


이나바 이와키치는 역사상 몽골족이나 만주족 등의 한반도 침입과정을 보면, 압록강은 천혜의 요해지가 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압록강이나 대동강을 수비하는 것은 소극적인 보장에 지나지 않으며, 한반도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보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나바 이와키치 역시 시라토리 구라키치처럼 고구려를 주목했다. 고구려가 요동반도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반도를 보전할 수 있었다고 보았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위해서는 고구려 역사를 참조하여 요동반도를 차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나바 이와키치는 한반도를 경영하기 위한 거점으로 경성(서울)은 적합하지 않다고 보았다. 평양을 도성으로 삼았던 고구려를 참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한반도 강점이 가시화되자, 조선왕조의 수도인 경성이 아니라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을 주목했던 것이다.


[이상훈의 한국유사] 조선총독부가 아니라 고려총독부를 설립하라 남만주철도 본사(중국 대련)

당시 일제의 만주군 참모들도 만주와 한반도를 통일된 기관이 통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동 총독을 폐지하고 한국주차군 사령관의 권한을 확대해서 ‘하나의 식민지 총독’을 두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견해에 만주군 참모장 고다마 겐타로(兒玉源太郞, 1852~1906)도 동의했다. 1906년 고다마 겐타로가 갑자기 사망하자 관동도독부와 만철 등에서 이러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만철은 러일전쟁 후 일본이 러시아로부터 양도받은 철도와 부속지를 바탕으로 1906년에 설립되었다. 초대 총재로 고토 신페이(後藤新平, 1857~1929)가 부임했다. 고토 신페이는 만철 내에 여러 조사부를 설치했는데, 그 가운데 역사조사부도 설치되었다. 역사조사부 주임으로 시라토리 구라키치가 임명되었고, 연구원으로 이나바 이와키치가 활동했다. 역사조사부는 1908년 1월에 설치되어 1915년 1월까지 존재했다.


이나바 이와키치가 1939년에 만철에서 출간한 《고토 신페이와 만주역사조사부後藤平伯と滿洲歷史調査部》에는 흥미로운 대화가 남아 있다.


만철 총재였던 고토 신페이가 역사조사부에 물었다. “총독부를 설치하는 것은 역사적 관점에서 경성이 괜찮은가? 또 총독부의 명칭은 어떤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가?” 시라토리 구라키치 등은 답했다. “총독부는 반드시 평양에 설치해야 합니다. 경성은 안 됩니다. 지금 또 하나는 조선이라는 명칭은 적당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려총독부’라고 해야 합니다.”


‘만주의 영향은 곧바로 조선에 반영되고 조선의 움직임은 곧바로 만주에 반영된다’라는 만선일체(滿鮮一體) 논리였다. 경성(서울)은 남쪽으로 치우쳐져 있기 때문에 평양에 총독부를 두는 것이 좋다고 여겼다. 또 ‘조선’이라는 명칭은 이미 퇴락한 이미지로 새롭게 총독부를 창설하면서 옛 명칭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고 보았다. “조선 사람들이 예부터 만족하고 있는 고려, 세계적으로 코리아라는 명칭이 적당하다”고 주장했다.


[이상훈의 한국유사] 조선총독부가 아니라 고려총독부를 설립하라 고토 신페이

‘고려총독부’의 고려는 왕건이 건국한 고려가 아니다. 한반도와 만주를 영유했던 고구려였다. 만선사(滿鮮史)는 만주와 조선을 하나의 역사 단위로 보는 식민사관의 일종이다. 만선사관의 목적은 만주를 중국에서 역사에서 분리해 만주 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한 노림수다. 고려총독부는 러일전쟁 이후 일본이 조선과 만주를 장악해나가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정치성을 띤 채 구상되었던 것이다. 이를 주도한 것이 바로 만철의 역사조사부였다.


역사조사부의 견해를 들은 고토 신페이는 매우 기뻐하며, 일본 내각회의에 이 안을 제출했다고 한다. 하지만 ‘고려총독부’는 채용되지 못했다. 한국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1852~1919)가 이미 조선총독부를 경성에 설치하기로 정해두었기 때문이다. 고토 신페이는 후에 ‘고려총독부’가 설치되지 못한 것이 매우 유감이라고 했다고 전한다.


1931년 9월 18일, 유조호(柳條湖) 사건이 발생했다. 일본은 자신들이 관할하던 심양역 북쪽 유조호 부근 남만주철도의 선로를 스스로 폭파한 후 중국 측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빌미로 관동군을 동원해 전격적으로 만주 지역을 장악했다. 이어서 1932년 3월 1일에는 괴뢰국가인 만주국을 세웠다.


1915년 만철의 역사조사부는 폐지되었지만, 1932년 만주국이 들어서면서 ‘만선일체’라는 슬로건은 강조되었다. 특히 제7대 조선 총독 미나미 지로(南次郞, 1874~1955)는 만선일체화를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이나바 이와키치는 조선인들이 적극적으로 만주로 진출할 것을 주장했고, 조선인들의 적극적 만주 진출이 조선 민족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보았다.


만주지역에 대한 일체성은 일본을 포함하는 일체성으로 더욱 확대되었다. ‘만선일체’에 더하여 일본과 만주의 경제 블록인 ‘일만일체(日滿一體)’도 강조되었다. 비록 ‘고려총독부’가 설치되지는 않았지만, 러일전쟁 전후 대두된 만선사관은 만주국이라는 괴뢰국 건설로 그 결실을 맺었다. 이후 일제의 폭주는 중국 대륙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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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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