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 수학부 석학교수가 8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해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참 신기한 나라다. 역사도 짧고 인구도 적은 데, 전세계를 호령하는 천재들이 각 분야에서 툭툭 튀어 나온다. 그동안은 주로 문화ㆍ스포츠계 위주였다. 그런데 가장 뒤떨어진다고 여겨 왔던 과학 분야에서도 세계 최정상급 업적을 공인받은 천재가 나타났다.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 석학 교수가 지난 5일 ‘수학계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을 수상한 것이다.
서구에 수백년이나 뒤처진 과학 분야, 그것도 ’어머니‘ 격인 수학에서 한국인이 최고의 연구 업적을 세우고 인정받았다는 점은 정말 축하할 일이다. 아시아에서도 일본, 중국 등 기초 과학이 튼튼한 국가들에선 일찌감치 필즈상 수상자를 배출해왔다. 1980년대 들어서야 토대를 닦아 온 한국은 겨우 40여년 만에 든든한 기둥 하나를 얻었다.
수학은 기술 발전과 정보화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열어갈 과학 발전의 핵심 기초 분야이기도 하다. 미래를 위해서라도 허 교수를 ’어쩌다 나온 운 좋은 천재‘가 아니라 후학들이 뒤쫓을 길을 개척한 학자로 만들어야 한다.
허 교수의 필즈상 수상을 ‘성과’가 아니라 반성과 성찰의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한국 과학계가 이번 필즈상 수상에서 드러낸 민낯을 보자. 모교인 서울대는 수상 사실이 알려진 직후 보도자료를 내 "서울대와 한국시스템을 발판으로 성장한 수학자"라고 자화자찬했다. 그럴 만한 자격이 있을까? 허 교수가 서울대 석사 학위를 딴 후 해외 대학원 12곳에 지원했지만 다 떨어지고 일리노이대 한 곳에서만 받아 줬다. ‘서울대 간판’은 통하지 않았다. 허 교수가 만약 히로나카 헤이스케 일본 교토대 명예 교수를 만나지 못했다면? 휴학생에 학점 안 좋고 나이도 많아 낙오자가 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
대한수학회나 고등과학원도 허 교수의 연구 업적이 대학원 석사 과정에서 시작됐다는 이유를 들어 "우리가 키웠다"고 내세우기 급급하다. 대한수학회의 경우 국제수학올림피아드 수상 성적 등을 근거로 "곧 조만간 추가 필즈상이 나올 것"이라며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다. 독일이나 일본, 이탈리아 등이 불과 2~3명의 수상자를 냈고 그 간격도 30~40년에 이르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기초가 부실한 한국은 교육 과정부터 다시 살펴봐야 한다. 뿐만 아니라 지난 3월 필즈상 수상 사실을 먼저 안 뒤 특정 매체 몇 곳에만 사전 보도자료를 보낸 점도 빈축을 사고 있다. 시상식 현장 취재를 나간 전문 매체에는 ‘듣보잡’이라며 모욕을 줬다고도 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마찬가지다. 주요 수상 실적임에도 불구하고 사전 인지ㆍ준비하지 못한 채 사후에 움직였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의 북한 출신 천재 수학자 이학성 박사의 말을 들어 보자. "수학을 어떤 사람들이 잘하는 지 아네? 똑똑한 놈들이 제일 먼저 도망간다. 노력만 하는 놈들이 그 다음이지. 문제를 틀려도 ‘아 참 어려운 놈이네. 내일 아침에 다시 풀어 볼까?’ 하고 다시 달려 드는 놈.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용기를 가진 놈이 수학을 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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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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