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이동권' 시위 두고 논란 커져
연간 2350만명 이용하는 서울 지하철 3호선
일각선 '지나친 피해' 강조하며 강경 대응 요구
"우리 무심함 부끄러워 할 일" 일각선 반발도
전문가 "韓 사회, 그동안 장애인 배제해 왔다"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서울지하철 수백만 승객이 특정 단체의 인질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제20대 대선 이후 재개된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두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한 말이다. 이 대표는 출근 시간대에 지하철역에서 승하차 시위를 벌이는 인권단체 활동가, 장애인들에 대해 공권력도 적극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이 불거졌다.
논란은 정치권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평소 서울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 또한 집회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수백만명이 넘는 시민들의 일상을 방해한다며 강경대응을 촉구하고 나선 이들이 있는가 하면,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섣불리 억눌러선 안 된다는 반박도 나온다.
이 대표는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에서 "아무리 정당한 주장도 타인의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해 가면서 하는 경우에는 부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며 "서울경찰청, 서울지하철공사는 안전 요원을 적극 투입해야 한다. 장애인의 일상생활을 위한 이동권 투쟁이 수백만 서울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의 이같은 발언 이후 정치권에서는 비판이 쏟아졌다.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7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표가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태도의 결과치가 이 대표의 발언이 지탄을 받는 이유"라고 꼬집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 또한 "장애인들이 시위를 하는 이유는 국민의힘과 이 대표가 장애인 권리 예산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질타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반발의 목소리가 나왔다. 시각장애인인 김예지 의원은 이날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섣부른 판단, 언어 사용으로 오해와 혐오를 조장하는 것은 성숙한 반응이 아니다"라고 이 대표를 비판했다. 김 의원은 28일 서울 경복궁역 3호선 승강장에서 열린 장애인 이동권 보장 시위에 참석하기도 했다.
◆3호선 수송인원만 연간 2000만명…"처벌 당연한 거 아니냐"
장애인 이동권 시위는 시작부터 '뜨거운 감자'였다. 앞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을 포함한 활동가·장애인들은 지난해 말부터 지하철 출근길을 겨냥해 '기습 승하차 시위'를 벌여 왔다. 이 시위는 20대 대선 유세 기간에는 잠시 중단됐으나, 지난 25일부터 재개됐다.
전장연은 이른바 '선전전'의 일환으로 이 시위를 강행하고 있다. 현재 전장연 측은 정부를 향해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국비 책임 및 보조금법 시행령 개정 ▲장애인 활동보조를 위한 예산 책정 ▲장애인 평생교육시설 운영비를 국비 책임으로 규정하는 시행령 개정 등을 촉구하고 있는데, 자신들의 메시지를 더욱 강력하게 전달하기 위해 출근길 지하철을 막아선 것이다.
시위는 정치권뿐 아니라 시민 사회에서도 큰 논란이 됐다. 일부 시민들은 장애인 시위 때문에 출근길이 방해를 받는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나섰다. 지난달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전장연 지하철시위를 조치해 달라", "장애인 단체를 처벌해 달라" 등 장애인 단체에 대한 강경 대응을 촉구하는 청원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들이 문제 삼는 것은, 집회가 너무 많은 이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이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기준 서울지하철은 연간 2억1270만명의 인원을 수송했다. 시위가 자주 벌어지는 3호선으로만 한정하면 수송인원은 2350만명에 달한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도 집회가 주요 도시 내 교통을 지나치게 방해할 경우 이를 제한할 수 있는데,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도 동일한 기준이 적용돼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제 서울교통공사는 박경석 전장연 공동상임대표 등 시위 관계자 4명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경찰 또한 지난달 17일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측에 대해 집시법 위반 및 일반교통방해, 감염병예방법 위반 및 일반교통방해 혐의로 입건했다.
◆20년 넘게 이어 온 '이동권 투쟁'…"장애인 욕 100번 하면 한 번쯤은 정부 욕도"
그러나 이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다. 평소 자신의 목소리를 낼 방법이 크게 제한된 사회적 약자들을 '남들에게 피해가 된다는 이유로' 억누르는 것은 옳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하철을 이용해 출퇴근을 한다는 20대 A씨는 "나도 시위 때문에 중요한 약속에 20~30분 정도 늦은 경험이 있다. 하지만 이 시위는 그동안 이동의 자유를 누려본 적 없었던 사람들이 우리와 동일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지 않나"라며 "이렇게라도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들어주지 않는 우리 사회의 무심함을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지 장애인을 욕할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회사원 B씨(31)는 "시위 때문에 출퇴근이 늦어진다는 이유로 장애인 시위를 욕하는 글을 봤는데 기가 막히더라"라며 "시위로 인한 피해를 시민 개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사회 그 자체가 잘못됐다는 생각은 못 하나. 어떻게 모든 잘못을 사회적 약자들에게 전가할 수 있나"라고 질타했다.
이동권을 보장받기 위한 장애인들의 투쟁은 수십년에 걸쳐 진행돼 왔다. 첫 이동권 운동은 지난 1984년 고(故) 김순석 열사의 죽음으로, 당시 김 열사는 '휠체어를 가로막는 도로 턱을 없애 달라'며 서울시장에게 5장의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오이도역(2001년), 발산역(2002년) 리프트 추락 참사 이후, 이런 사고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재발방지를 요구하는 시위가 본격화됐다. 장애인 이동권 시위는 올해 기준 20년 넘게 진행되고 있지만, 지하철 역사 승강기 설치·저상버스 보편화 등 교통 약자들을 위한 인프라 보강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결국 전장연을 비롯한 장애인 인권 활동가들은 광화문 행진 집회(2020),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자택 시위(2021)를 넘어 지하철역에서 승하차 시위를 하는 '초강수'를 두기에 이르렀다. 활동가들은 시민들이 장애인 이동권 시위로 인해 이동에 불편을 겪는 만큼, 평생에 걸쳐 이동권에 제한을 받아 온 장애인들과 연대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박경석 전장연 공동대표는 지난달 3호선 충무로역에서 열린 이동권 시위에서 "(시민들께선) 당연히 화가 나시겠지만, 장애인들에게 욕 100번 하시면 한 번이라도 정부와 대통령 후보들에게도 해달라. 처벌하면 달게 받겠다"라며 "지난 21년 동안 장애인 이동권을 무시한 책임도 정부가 져야 적어도 형평성에는 맞지 않나"라고 호소했다.
전문가는 그동안 사회기반시설이 장애인을 철저하게 배제하면서 구축돼 온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장은 "장애인 이동권 시위는 수십년째 이어져 오고 있고, 그동안 한국 사회는 교통 사회 관련 시스템을 지을 때 장애인의 편의와 안전을 배제해 왔다"라며 "이 시위는 그런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강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많은 시민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시위가 진행되는 동안 시민들이 불편을 겪을 수 있겠지만, 그 원인을 장애인 단체에 돌리는 게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할 수 있는 세상을 구축하기 위해 연대하고 고민해야 할 때"라며 "장애인을 배려한 사회가 만들어질 때 그 혜택은 비장애인들에게도 돌아온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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