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미래 한때 인기 시들
알파고 대국 이후 다시 전성기
게임업계 '개발자 모시기' 전쟁 신호탄
앱·SW 개발자 몸값 '천정부지'
[아시아경제 김철현 기자, 강나훔 기자, 이준형 기자]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대형 IT기업에서 근무하는 5년차 개발자 권중연(31·가명)씨는 2009년 컴퓨터공학과(컴공과)에 입학했다. 당시 공대 컴공과와 사범대 수학교육과에 모두 합격해 전공을 선택해야 했다.
미래가 불확실한 컴공과와 직업이 보장된 수학교육과를 두고 고민을 거듭하던 권씨는 결국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하고 소프트웨어 개발의 세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당시만 해도 컴공과는 인기가 떨어질 때였다"며 "지금처럼 개발자의 위상이 높아질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고 말했다.
권씨는 최근 개발자의 달라진 위상을 체감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확산되고 모든 비즈니스가 모바일로 이동하면서 개발자를 찾는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권씨도 대졸자 평균 연봉보다 높은 대우를 받고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지금은 대졸자 평균의 두 배 수준까지 연봉이 올랐다. 주변 동료들 사이에서 "회사를 옮긴다"는 말도 자주 듣는다.
국내 유니콘 기업의 2년차 개발자인 전상현(27·가명)씨는 컴공과 ‘13학번’이다. 선택은 쉬웠다. 어릴 때부터 컴퓨터를 제일 잘했고 적성에 맞는다고 여겼다. 공대에 가면 그런대로 먹고 살겠거니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마침 공대 중에서 컴공과 커트라인이 가장 낮았다. 전씨가 대학에 입학할 쯤에는 페이스북이 한창 유행이었다.
전씨는 IT 관련 개발자 수요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다.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 이후 인공지능(AI) 개발자에 대한 관심은 부쩍 커졌다. 동료들도 그때가 개발 산업이 다시 뜬 기점이라고 말한다. 대학에 입학했던 때와 졸업할 때, 컴공과의 위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수도권 대학 전기전자공학부에서 졸업을 앞둔 대학생 조현태(25·가명)씨도 사뭇 달라진 학과 분위기를 전했다. 조씨는 "전공을 선택할 당시 동기들 사이에서 컴공의 인기가 가장 낮았는데, 지금은 반도체 전공보다 더 취업이 잘된다"며 "유수 기업들 중 어디를 선택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앱이나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내는 개발자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특히 2~3년 정도 경력을 쌓은 개발자와 경력 10년 이상의 팀장급은 경쟁사들이 눈독을 들이는 영입 1순위다. 개발자 초봉이 6000만원을 넘어선 기업들도 나타났다. 컴공과 출신 2000년대 학번의 전성시대가 열린 셈이다.
개발자 몸값 인상의 신호탄은 게임업계에서 먼저 쐈다. 넥슨, 넷마블, 컴투스 등이 연봉을 800만원 일괄 인상하자 크래프톤과 웹젠은 개발직군 연봉·성과급 등을 2000만원이나 올렸다. 개발자의 이탈을 막기 위한 응급처치였다.
쿠팡, 빅히트엔터테인먼트, 토스 등 새롭게 부상하는 기업들로 인력이 대거 이동하자 네이버와 카카오마저 역대 최대 규모의 개발자 채용에 나섰다.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개발 임원이 쿠팡으로 이동하는 등 개발자 확보를 둘러싼 ‘큰 장’이 섰다.
당분간 스카우트 전쟁은 지속될 전망이다. 게임업체에서 근무하는 11년차 개발자는 "쿠팡, 배달의민족 등 기존에 개발자를 대규모로 채용하지 않았던 비게임 분야에서도 이직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면서 "게임에서 유통, 금융 등으로 산업을 뛰어넘는 인력 확보 전쟁이 계속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중소 게임업체나 IT기업에는 비상이 걸렸다. 개발자 초봉이 2000만~3000만원대에 불과한 이들 기업에서 인력유출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개발자 커뮤니티에선 "5년차 이상인데 연봉 6000이 안 되는데, 초임 개발자가 6000만원 받는다는 얘기를 들으면 잘 못 산 것 같다”는 푸념도 올라온다. 이들의 이동이 머지 않았다는 얘기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강나훔 기자 nahum@asiae.co.kr
이준형 기자 gil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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