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MSG 생산한 日 기업 '아지노모토'
화학 노하우 발휘해 반도체 핵심소재 'ABF" 독점공급
"아미노산은 우리 기념비 사업" R&D 노력 강조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최근 전기차·가전제품·게이밍 콘솔 등을 중심으로 컴퓨터 칩 수요가 높아지면서 '반도체 품귀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반도체를 직접 위탁생산하는 파운드리부터 각종 소재와 설비를 공급하는 기업들까지 공급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품귀현상이 심해질수록 더욱 주목받는 한 기업이 있다. 바로 대표적인 조미료 '글루탐산일나트륨(MSG)'를 생산하는 일본 식품업체 '아지노모토'다.
한국에서는 미원으로 알려진 MSG 생산업체 아지노모토는 식품업계 뿐 아니라, 첨단 산업 분야인 반도체 소재에서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아지노모토는 어떻게 글로벌 가치사슬의 중심에 자리하게 됐을까.
◆ MSG 잠재력 알아본 스즈키 사장…세계 조미료 업계 선두주자로
아지노모토는 지난 1907년 스즈키 사부로스케 회장이 설립한 '스즈키 제약'에서 시작됐다. 스즈키 사장은 회사 창립 후 1년 뒤인 1908년, 도쿄대 화학교수로 근무하던 이케나 기쿠나에를 방문하게 된다.
당시 이케나 교수는 즐겨 먹던 다시마에서 새로운 맛을 내는 물질인 '글루타메이트'를 분리하는데 성공했는데, 그는 이를 이용해 음식 맛에 감칠맛을 더해주는 가루인 글루탐산나트륨, 즉 MSG를 개발한 참이었다.
MSG의 잠재력을 알아본 스즈키 사장은 이케나 교수와 협력, MSG를 '아지노모토(味の素, あじのもと·맛의 근원)'라는 상품명으로 판매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비록 스즈키 사장은 1931년 사망했지만, 회사는 이후로도 번창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1년 뒤인 1946년에는 사명 자체를 아지노모토로 변경하고, 본격적인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아지노모토가 개발한 MSG는 10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세계 조미료 업계의 선두주자로 군림하고 있다. 아지노모토는 미국·유럽 등에 공장을 세워 MSG 생산을 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미원', '미풍', '다시다' 등 다양한 조미료에 MSG가 첨가된다.
그러나 아지노모토의 수익은 단순히 MSG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아지노모토는 MSG를 만들던 화학 기술을 활용, 현대 반도체 산업에 핵심적인 '마이크로 절연 필름'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 절연 필름 'ABF' 개발…반도체 업계 '슈퍼 을' 등극
오늘날 제작되는 중앙처리장치(CPU) 등 마이크로컨트롤러는 작은 실리콘 기판 위에 머리 한 가닥보다 훨씬 미세한 회로를 배열해야 하는 복잡한 기기다.
이 때문에 회로 간 전류 흐름의 간섭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한데, 아지노모토는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ABF(Ajinomoto Build-up Film·아지노모토 빌드 업 필름)'를 생산한다.
인텔·AMD·엔비디아·ARM 등, 오늘날 생산되는 대다수 반도체 제품 회로에는 반드시 ABF가 들어간다.
특히 이 필름은 아지노모토가 개발해 독점 공급을 하고 있다보니, 지금처럼 반도체 품귀현상을 빚는 시기에 아지노모토 같은 핵심 부품 업체는 '슈퍼 을'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는 셈이다.
◆ "아미노산은 아지노모토 기념비 산업" R&D 노력 쾌거
그렇다면 조미료 제조업체인 아지노모토는 어떻게 반도체 핵심 부품인 절연 필름 개발에 성공했을까. 해답은 아지노모토의 주력 제품, MSG에 있다.
MSG는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인 글루탐산을 이용해 만들어진다. ABF에 들어가는 핵심 소재 또한 아미노산 화학을 기반으로 한 수지 복합제다. 아지노모토는 아미노산 화학에 특화된 자사 연구개발(R&D)의 강점을 십분 발휘해 식품업계를 넘어 반도체 소재까지 선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 아지노모토는 아미노산 화학 기초 연구 자체를 '기념비적 사업'으로 취급할 만큼 R&D를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식 홈페이지 설명에 따르면, 아지노모토는 아미노산에 대해 "모든 생명체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요소"라며 "이에 대한 연구는 우리 그룹의 강력한 핵심 역량"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미노산은 '생명의 근원'이며, 우리 일상 생활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다"며 "아지노모토 그룹의 아미노산 연구는 무한한 우주의 위대한 신비 중 하나를 풀고자 하는 기념비적인 사업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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