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한 이후 조선에 이를 통보하면서 조선 조정은 축하사절로 통신사를 보냈다. 명목은 축하사절이지만 실제 임무는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계획이 정말 있는지를 정탐하러 간 것이었다.
조선에서도 일본이 나고야에 대군을 집결해놓고 대마도에서 함선 수만 척을 건조 중이라는 첩보를 받아 곧 전쟁이 일어날 것이란 소문이 무성했기에 통신사의 임무는 더욱 막중했다. 국왕인 선조 역시 통신사 선발에 신중을 기했다. 당시 동인과 서인이란 붕당으로 쪼개진 조선의 현실을 감안해 같은 붕당 출신들로 통신사를 채우면 의견이 쏠릴 가능성이 있어 대표 격인 정사는 서인 출신으로, 부대표인 부사는 동인 출신으로 편성했다.
1590년 3월에 떠난 통신사는 1년 가까이 지난 이듬해 2월이 돼서야 조선으로 돌아왔다. 예상대로 붕당 출신별로 서로 다른 의견을 주장했다. 정사인 황윤길은 서인 측의 주장대로 히데요시가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했고, 부사인 김성일은 동인들의 주장대로 전쟁을 일으킬 만한 인물이 못 된다며 깎아내렸다. 선조가 히데요시의 인상을 묻자 황윤길은 "눈빛이 반짝거리며 담과 지략이 있다"고 평가했고, 김성일은 "쥐와 같을 뿐 두려워할 위인이 아니다"고 답했다.
각자 정치색에 따라 이미 정해진 답변을 한 것이라 생각됐지만, 두 사람의 인식 차이는 확연히 달랐다. 김성일은 히데요시가 조선통신사를 응접하는 자리에서 추태를 부렸다며 그가 형편없는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히데요시는 자신의 어린아이를 품에 안은 채 맨발로 나와 볼썽사나운 춤까지 췄다고 알려져 있다. 김성일은 공식 외교사절을 대면하는 자리에서조차 그런 행동을 하는 자는 전쟁을 이끌 만한 리더십이 없다고 주장했다.
똑같은 상황을 봤음에도 황윤길은 전혀 다르게 해석했다. 그는 통신사 일정 동안 일본의 인구나 병력, 경제 상황 등을 면밀히 살펴보았고 특히 조총이란 신무기에 놀라 이를 직접 가져오기도 했다. 황윤길은 이미 일본의 국력이 조선을 압도하는 상황이기에 히데요시가 일부러 조선의 사절단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듯 방자한 태도로 일관한 것이라 주장했다.
황윤길의 해석이 옳았다는 사실은 7년 전쟁의 병화를 겪고 나서야 증명됐다. 동인들은 자신들의 지지 기반인 영남 유생들이 징병령에 집단 반발한 것을 무마하기 위해 국익을 막아섰다는 사실을 뒤늦게 밝히고 후회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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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당시 조선통신사들은 히데요시의 얼굴이나마 봤고, 조선 조정은 서로 다른 정치색을 가진 두 사절의 판단을 들어볼 수나 있었다. 하지만 한반도의 운명을 쥘 미국 대통령 선거의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있는 한국의 외교관들은 당선인의 얼굴조차 보지 못한 상태다. 수십 년간 외교통으로 성장한 노정객의 인상조차 살피지 못한 사람들이 도대체 그 머릿속의 대북 정책을 어떻게 안다는 것일까.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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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경영] 히데요시의 얼굴](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20111614404113332_1605505240.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