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전8기 스타트업 24시
"회사의 성장은 내 성장과 직결…이 맛에 다니죠"
韓 스타트업도 빠른 성장세…유니콘 수 세계 5위
온정적 지원은 금물…혁신 아닌 '보신주의' 남을 수 있어
'배민' 세운 김봉진 "스타트업은 도움을 줘야 하는 존재 아닌 같이 갈 파트너"
[아시아경제 이민우 기자]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를 졸업한 박성환(29)씨는 여느 동기들과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국내외 대기업 곳곳에 진출한 동기들과 달리 스타트업을 택했다. 이유는 거창하지 않았다. '내 일'을 꾸려가며 성장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온라인 강의 플랫폼 에듀캐스트에 다니고 있다. 합류한 지 1년 반만에 이사 급인 '제품관리총괄' 직함도 받았다. 박씨의 하루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황금률로 여기는 또래와는 사뭇 다르다. 스스로의 하루를 돌아보면 '사아(社我)일체'라는 말이 꼭 들어맞는다. 매일이 고된 하루, 보장된 밝은 미래도 없지만 회사의 성장은 박씨 스스로의 성장과 같다. 혹여 실패한다 해도 또 다른 성장의 자양분이 될 것이라는 믿음에 뜻을 함께하는 동료들과의 하루는 고행이 아닌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하다.
◆출근과 함께 '스크럼'=박 씨의 하루는 지하철에서 시작한다. 출근길에 스마트폰으로 주요 이슈와 오늘 할 일을 미리 파악한다. 회사에 도착한 10시부터 곧바로 '스크럼'이 시작된다. 매일 약속된 시간에 선 채로 짧게 진행하는 업무회의다. 2000년대 초반부터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 중심으로 퍼져나간 문화다. 팀장들의 일장연설용 무대로 변질됐다는 비판도 있지만, 취지대로 활용하니 나쁘지는 않다. 잡담 없이 가벼운 웃음 속에 빠르게 각자가 한 일과 할 일을 터놓는다. 정확히 10분 뒤 깔끔히 해산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각종 통계치와 분석자료를 훑고 이용자 반응도 확인하다보면 금세 허기가 오른다. 점심시간은 12시부터지만 조금 일찍 나서도 지적하거지 않는다. 각자의 일을 스스로 찾아서 하는 문화인만큼 시간 배분도 '알아서' 하면 된다.
오후부터는 본격적인 작업과 의사 결정이 시작된다. 박 씨는 "고객 건의사항이나 기능요청을 회의를 통해 결정하는 한편 각종 미팅을 통해 업무를 분배한다"며 "품질검증(QA) 테스트도 진행하다보면 시간이 훌쩍 가 퇴근 시간을 지나칠 때도 많다"고 했다. 올해 마지막 퇴근 길을 나서며 바쁘게 달려온 한 해를 떠올리는 박 씨의 얼굴은 밝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람의 생존 능력이 결국 내 사업을 할 수 있는지 여부라고 생각했다"며 "밤낮을 쉴새 없이 달려도, 여기에 개인 프로젝트까지 진행해도 힘들지 않은 이유는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는, 회사의 부속품이 아닌 주인공"= 인슈어테크(보험+기술) 스타트업 보맵을 이끌고 있는 류준우 대표는 지난 27일 서울 강남구 드림플러스에서 전 직원들과 함께 종무식을 가졌다. 각자의 소회도 털어놓고 함께 만든 동영상도 관람하며 정신없이 달린 올해를 웃어보냈다. 새로 합류한 이들도 스스럼없이 나서 이야기를 늘어놨다. 가끔은 농담으로, 짖궂은 장난으로 화답하는 직원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올 한해 회사가 가파르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보맵은 지난 2017년 출시 후 2년 만에 누적 다운로드 150만건, 회원수 100만명을 돌파했다. 지난해 10명 남짓했던 직원수는 1년 새 3배 이상 늘었다. 올해에만 100억원 넘게 투자도 받았다.
직원들의 웃음은 그저 회사의 외형이 커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회사가 성장하는 만큼 스스로도 성장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는 류 대표의 지론이기도 하다. 그 역시 안정적인 국내 유명 보증보험사를 다녔지만 성장에 대한 갈망으로 퇴사한 뒤 7년 만에 보맵을 내놨다. 류 대표는 "상명하복의 직장생활에선 내 성과도 상사의 업적, 조직의 결과물로 묻혀가기 일쑤여서 회사의 부속품인 느낌이 많이 들었다"며 "반면 이곳에선 검색이나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매일 이용자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으며 우리가 진화하고 있고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韓경제구조, 스타트업에겐 기회=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는 지난 5년간 빠르게 성장하며 국내 경제의 새 동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의 '2019 스타트업코리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벤처 인증 법인 3만7000곳, 매출 1000억 이상 법인 572곳으로 사상 최대치를 달성했다. 유니콘 역시 9곳으로 2017년보다 3배 늘었다. 투자금 회수도 2조7000억원으로 역대 최대다. 정부의 스타트업 창원 지원 사업 규모도 큰 폭으로 늘어났다. 지난 2017년 6158억원에서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인 1조1000억원으로 늘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달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정상들과 각국 대표 스타트업들에게 "스타트업은 그 자체로 혁신이며 누구에게나 열린 기회이고 희망을 공유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기업 중심의 우리 경제구조도 스타트업들이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기회다. 류 대표는 "대기업이 스타트업처럼 재빠르게 아이디어를 실행하기에는 조직 자체가 크고 무겁다"며 "대기업 내부에서도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상생의 길로 선택하고 있다"고 했다.
인수합병(M&A)도 능사가 아니다. 기존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인수해 자체 문화로 소화시킬 경우 스타트업만의 특성과 경쟁력을 잃어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서로의 영역을 구분한 채 협력하는 상생 모델이 주효하다는 의미다. 류 대표는 "스타트업들은 대기업의 인프라와 네트워크를 지원 받고, 대기업은 스타트업들의 혁신을 통해 재빠르게 변하는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상생의 모델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타트업 자생력 키우는 지원이 중요=다만 전문가들은 무작정 스타트업을 지원을 하고 보호할 대상으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이 같은 '동정주의'가 오히려 스타트업의 보신주의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창업 실패가 패가망신이 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는 필요하지만, 마냥 지원금을 줘서 연명하도록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특히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하는 정부 지원 정책들이 '국민 혈세 낭비 금물'에 집착하면 스타트업들이 단기적이고 모험적이지 않은 성과만 좇는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배달 앱 서비스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의 김봉진 대표도 최근 한 강연에 나서 "대기업이나 금융권 등이 스타트업들에게 항상 무엇을 도와주면 된다고 묻는데 이는 스타트업을 도움을 줘야 하는 갑을 관계로 바라보는 것"이라며 "스타트업들을 동등한 파트너로 생각하고 인수를 하거나 함께 사업을 펼쳐 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관계와 태도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민우 기자 letzw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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