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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포럼] 2019년 동짓날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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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포럼] 2019년 동짓날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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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1. 친구에게 안부 전화를 했다. 동지 팥죽은 먹었는지? 목소리에 기운이 없다.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한다. 아파트 가격이 폭등해 전세로 살고 있는 집의 주인이 전화를 걸어 오른 만큼 월세로 돌려달라고 했단다. 친구는 이사를 고민하며 최근 발표된 정부의 부동산 대책 안을 읽느라 잠을 설쳤다 한다. 대출을 무리해서 받더라도 진즉에 집을 샀어야 했나. 빠듯한 월급쟁이로서 별 뾰족한 수가 없는 똑같은 고민들. 누구는 벽을 치며 후회할 것이고 누구는 막차라도 탔다고 안도할 것이다. 안도는 잠시, 집을 사느라 떠안은 빚 앞에서 눈앞이 캄캄할 것이다.


풍경 2. 전화를 끊고 공부 모임 가는 길에 서울역을 지나왔다. 때마침 홈리스 추모제가 진행 중이다. 2001년 이후 19년째 이어오는 이 추모제는 해가 가장 짧은 동지에 열린다. 집이 없어 거리와 시설, 쪽방, 고시원 등을 전전하다 숨을 거둔 이들을 추모하는 자리다. 2019년에는 166명의 홈리스들이 거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하는데 실제로는 그 숫자가 훨씬 상회할 것이다. 추모제에서 노래를 부른 가수 정태춘은 "비만과 빈곤이 공존하는 야만"의 시절을 일갈했다. 집다운 집에 살 권리, 집이 없는 이들도 존엄하게 생을 마무리할 권리, 제대로 애도할 권리. 우리는 아직 아무 것도 갖지 못했다.


풍경 3. 조촐한 세미나와 송년 모임을 하고 집으로 가는 길. 돌아가면 따뜻한 집이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새삼스러운 겨울밤이다. 스르륵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담벼락을 살핀다. 강남에 아파트를 사두었더니 몇 년 사이에 몇 억원이 올랐단 말이야. 그걸로 월세받고 쏠쏠해. 친구의 친구 이야기다. 그 상황을 알토란같이 즐기지만 그것 빼고는 세상 돌아가는 일이 다 마음에 안 든다며 핏대를 세운다고 한다. 집이 없는 이들은 시절의 파고에 자꾸만 떠밀려 거리로 내몰리고 어느 구석에서 죽어 가고, 집이 있는 이들은 집을 깔고 앉아 벼락부자가 되는 환상을 헤매다가 허덕허덕 숨이 차 죽는다. 그 생각을 하며 차에서 내려 조촐한 동네 마트에 들른다. 내일의 일용할 양식, 토마토와 달걀을 산다.


풍경 4. "이봐요 사는 게 어때요? / 나, 나 말인가요? / 달걀을 고르고 있잖아요 / 사촌은 땅을 사서 벼락부자가 되고 / 우리 집은 저녁마다 떠내려가지요" 최정례 시인의 시 '저녁의 수퍼마켓'이다. 집에 돌아와 다시 책상에 앉아 시를 영어로 옮기는 중, 잠시 숨고르기를 한다. 부동산 공화국 대한민국의 조용한 저녁 풍경. 시는 2011년의 것인데, 그간 나아졌는가. 대한민국은 안타깝게도 건강한 체질 개선을 전혀 하지 못했다. 비가 그친 거리 위에서 흐르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시절도 희망도 흘러간다. 그 사이 달걀 같은 동그란 희망을 품고 종종걸음 걷던 이들은 달걀처럼 부서져 집과 함께 떠내려간다.


풍경 5. 선생님. 선생님 계시는 학교에 꼭 가고 싶었는데 두 군데 다 붙어 고민이에요. 방학 중 어떤 책을 읽을까요, 추천 좀 해주세요. 아이의 꿈을 키우는 데는 책이 최고다. 방학 중 읽을 책을 몇 권 이야기하다 전화를 끊었다. 긴 하루였다. 야야, 그만 뛰어 다녀라. 동지인데 팥죽은 먹었나? 엄마 목소리는 청량한 소녀 같고 나는 괜히 울컥하다. 팥죽 대신 아이의 건강한 꿈과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을 함께 먹었다. 흐르는 세월과 흐르지 않는 집들 사이, 이 겨울비 그치고 나면 파란 하늘 아래, 옹기종기 동네 길에 사람들 온기가 흐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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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귀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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