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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포럼] 살아있으라, 누구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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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포럼] 살아있으라, 누구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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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생명이 떠났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듣고 막 마무리하려던 글을 다 지웠다. 혐오와 배제의 말이 난무하는 아픈 현실을 고발하는 글이 무용하게 느껴진 탓이다. "세상은 온통 크레졸 냄새로 자리 잡는다 / 누가 떠나든 죽든 / 우리는 모두 위대한 혼자였다. 살아 있으라, 누구든 살아 있으라" 기형도의 시 '비가 2 - 붉은 달'에 기대어 밤새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글을 썼다. 너무 많은 죽음, 너무 많은 혐오, 너무 많은 조롱. 너무 성급한 속단. 너무 함부로 던지는 말. 한 사람의 등에 꽂히는 너무 부당한 화살. 너무 큰 외로움. 너무 큰 자책. 너무 큰 분노. 절망. 환멸. 그 끝에 죽음, 그리고 너무 큰 슬픔.


연예인도 사생활이 있고 사랑할 권리가 있다. 모든 연애가 해피엔딩이 아님은 자명한 일. 하지만 어긋난 인연의 끝에 온 몸에 피멍이 드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헤어지는 마당에 두 사람의 내밀한 사생활을 담은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는 남자 앞에서 여자는 무릎 꿇고 빌었다. 영상을 보낸 것은 맞지만 이별을 정리하기 위함이지 협박은 아니었다고 남자는 당당하게 변명한다. 가해자 대신 피해자에게 쏟아지는 조롱과 비난들. 온갖 악플로 고통받으며 우울증을 앓은 그녀. 열심히 살겠다고 약속했지만 너무 힘들었나 보다. 약자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협박, 성폭력, 성범죄가 남기는 상처에 비해 이를 방지하는 현실의 법은 무능하고 무심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죽지 말라고 모두 말하지만, 그 가늠할 길 없는 절망이 이해가 되기에 참담하다.


하나의 생은 하나의 우주다. 하나의 죽음은 하나의 우주가 소멸되는 무게를 갖는다. 무한한 가능성을 품었던 생명이 절망 속에 스스로를 멸하고 나서야 우리는 이 폐허를 응시한다. 이 폐허 위에서 무얼 할 수 있을까 고민하지만 그도 잠시, 우리는 다음을 잊고 방관하고 아까운 죽음은 반복된다. 법과 정치로 현실을 바꿀 힘을 가진 자들은 의지가 없고 엉뚱한 권력 놀음에 몰두하기 일쑤다. 조용한 소수의 정의 대신 시끌시끌한 다수의 불의가 판치는 곳에서 완고한 편견, 배타적인 관습, 비뚤어진 잣대는 좀처럼 극복되지 못한다.


얼마 전 꽉 찬 해피엔딩으로 끝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는 위험에 처한 동백이를 구하기 위해 게장골목의 아녀자들이 뭉친다. 죽음 직전의 순간에 동백이를 구한 것은 정감을 퉁명에 실어 보낸 아녀자들의 관심 문자들이다. 또 어떤 순간에도 용기를 잃지 않은 동백이의 다부진 생의 의지가 있었다. 동백이를 구하겠다고 자처하고 나선 용감한 용식이도 "동백이를 구한 것은 바로 동백이였다"고 말하니까. 동백이와 아녀자들이 보여준 결기와 연대의 힘은 상상 이상의 복원력을 갖는다.


이 해피엔딩이 우리 현실에서 그대로 실현될 리 만무하다. 현실에서 해피엔딩을 만들려면 선의를 위해 싸우는 이들의 적극적이고 옹골찬 연대에 더해 법질서를 공고히 해야 한다. 성범죄 양형 기준을 재정비하라는 요청이 빗발치는 것은 그 이유다. 몰카가 두려워 화장실도 마음 놓고 못 가는 대한민국 여성의 현실 앞에서 누가 여성 해방을 말하는가. "돌 던진 사람은 아무 문제없이 잘 살고 아픈 사람들만 울면서 서로 상처 보듬다가 가버려요." 슬픔과 환멸을 호소한 한 학생의 메시지다. 끝내 떠난 아이, 다시는 이 기막힌 땅에 돌아오지 말고 잘 가렴. 그리고 또 당부한다. 부디 어떤 젊음도 더는 죽지 말고 살아 있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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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귀 한국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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