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문재인 친서에 눈길도 안 줘…'국제법 위반' 두 차례 언급"

이낙연 국무총리가 24일 오전 일본 도쿄 총리관저에서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이낙연 총리와 악수를 나눈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보도진이 퇴장하고 비공개 회담이 시작되자마자 태도를 바꿨다. 아베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가 든 봉투를 받고도 즉석에서 열지 않았다. 친서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강제징용' 문제부터 거론했다. 굳은 어조로 "(한국이) 국교 정상회의 기초가 된 국제조약을 일방적으로 깼다"고 운을 뗀 그는 관계 악화의 계기가 된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 한국 정부가 먼저 해결책을 강구하라고 거듭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의 수출규제,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관련 언급은 이뤄지지 않았다.

25일 도쿄신문을 비롯한 일본 언론들은 전날 도쿄 총리관저에서 약 20분간 이뤄진 아베 총리와 이 총리 간 비공개 회담 분위기를 이 같이 전했다. 일본 정부가 기존의 강경한 태도를 누그러뜨리지 않은 반면, 한국은 관계 개선을 위해 서로 다가가는 모습을 연출하고 싶어하는 등 양국간 온도차가 극명했다는 평가다.

도쿄신문은 "국제법 위반 상황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아베 총리의 현장 발언을 소개하면서 당시 총리가 친서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고 상황을 묘사했다. 마이니치신문 역시 아베 총리가 친서를 뜯지도 않은 상태에서 한국 정부에 해결책부터 촉구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오카다 나오키 관방부 부장관이 회담 후 공개한 아베 총리의 현장 발언에서도 기존 입장보다 격해진 수위가 확인된다. 그는 아베 총리가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한일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본부터 무너뜨린다. 국제조약을 일방적으로 깨고 있다"고 발언했다고 소개했다. "국가간 약속을 지키라"는 아베 총리의 기존 발언과 맥을 같이 하지만, 수위 측면에서는 한층 격해졌다.

이날 회담과 향후 양국관계를 바라보는 일본 현지언론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날 회담을 "전망없는 대화"로 평가하며 아베 총리가 두 차례에 걸쳐 국제법 위반 문제를 지적했다고 보도했다. 회담 말미에 기습적으로 다시 이 문제를 거론함으로써 일본 정부의 강경한 입장을 재확인시켰다는 설명이다. 또한 연내 한일 정상이 동시에 참석하는 국제회의가 여러차례 개최되지만 한국측으로부터 정상회담을 위한 구체적 제안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공영 NHK방송 역시 전날 회담을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는 평행선"으로 정의했다. 마이니치신문은 "관계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진보성향의 아사히신문은 일본 정부내에서도 관계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면서도 "공은 저쪽(한국)에 있다"는 일본 정부측 발언을 덧붙였다. 다만 요미우리신문은 문 대통령의 친서에 "머지않은 시기에 만나 미래지향적 양국관계를 논의하고 싶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