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도로표지판 가운데 정지표지판의 색깔은 선명한 빨간색입니다. 다른 경고표지판의 경우도 빨간색 테두리에 검정 글씨나 그림을 그리지요. 왜 경고를 나타내는 표지판에는 빨간색을 돋보이게 할까요? 축구 경기를 할 때 경고는 노란색 카드입니다. 도로표지판도 노란색으로 칠하면 도로의 분위기가 더 낫지 않을까요?
빨간색의 경고표지판을 사용하기까지 인류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자동차가 세상에 등장했을 때 세상은 아직 자동차를 맞이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마차가 다니던 도로가 존재했다는 것이 다행이었지요.
도로에는 차선도, 신호등도, 도로표지판도 없었고, 속도제한도 받지 않았고, 운전자는 면허증도 없었습니다. 자동차가 등장한 이후의 도로는 그야말로 차와 마차, 자전거와 사람이 뒤섞인 혼돈의 도가니가 아니었을까요?
그러다가 1900년부터 미국에서는 교차로에 정지표지판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1914년 디트로이터에 첫 정지표지판이 등장합니다. 이어 1915년에 클리블랜드에 전기 교통신호가 생겼고, 정지표지판도 함께 설치했다고 합니다.
처음 등장한 정지표지판은 정사각형 표지 위에 흰색 바탕에 검정색 글씨로 'STOP'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1923년에는 미시시피주 고속도로 교통국협회에서 표준 정지표지판 권고안을 발표합니다. 가장 위험한 도로인 철도건널목에는 원형 표지판을, 두 번째로 위험한 교차로에는 팔각형 표지판을, 약간 덜 위험한 곳에는 다이아몬드형 표지판을 각각 설치하도록 했습니다.
또 직사각형과 정사각형은 정보 표지판으로 사용하는 등 모양을 기준으로 위험도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훨씬 지난 1935년 전국의 도로표지판에 대한 기준이 만들어집니다. 이 때는 팔각형 표지판, 노란색 바탕에 검정색 글씨가 표준이 됩니다.
1954년 철도 및 교통 신호용으로 개발된 색상시스템에 따라 지금과 같은 빨간색 바탕에 흰색 글씨의 정지표지판이 표준이 됩니다. 그러나 당시 기술로는 요즘처럼 반사되는 빨간색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규격화되고 통일된 정지표지판을 보기 어려웠고, 크기는 엇비슷하지만 가는 곳마다 정지표지판의 모습이 조금씩 달랐다고 합니다.
1971년 미국 법률로 '붉은 바탕에 흰글씨, 팔각형 경고판'으로 못박을 때까지 미국의 교통안전시설편람(MUTCD, Manual of Uniform Traffic Control Devices)의 정지표지판은 8번 이상 모양을 바꾸게 됩니다. 그 이후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들이 이 모양을 선택하게 됩니다.
마지막에 빨간색 바탕에 흰색 글씨로 확정된 이유는 어떤 경우에도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눈은 물체가 반사하는 빛의 파동주파수를 통해 색을 인식합니다. 빛을 감지하는 망막에는 감각세포인 간상체와 추상체가 있는데 간상체는 흑과 백의 회색빛을 감지하고, 추상체는 빨간색과 녹색, 푸른색을 감지해 각 색의 파동주파수에 대한 정보를 뇌로 보내게 됩니다.
빨간색이 위험 신호로 사용하는 이유는 바로 이 파동주파수 때문입니다. 빛의 주파수를 파동이라고 하고, 파동의 두 골짜기 사이를 파장이라고 합니다. 빨간색은 빛의 파동주파수의 파장이 길고, 보라색으로 갈수록 파동주파수의 파장은 짧아 집니다.
파장이 긴 빨간색은 대기의 주성분인 질소와 산소 분자에 의해 산란되는 빛의 양이 아주 적습니다. 그래서 대기를 잘 통과합니다. 반면, 파장이 짧은 보라색은 산란되는 빛의 양이 많아 대기를 통과하기 어렵습니다. 이 말은 빨간색은 선명하게 보이지만, 보라색으로 갈수록 색깔이 불투명해진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빨간색 표지판은 안개가 끼거나 연기가 나도 색깔이 대기 입자에 의해 흩어지지 않아 잘 보이고, 산란이 적기 때문에 먼 곳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요즘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반사 페인트를 사용해 보다 선명하게 빨간색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안전을 위한 최적의 선택이 하얀색이나 노란색이 아닌 빨간색이었던 것입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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