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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연암의 호질과 신경림의 동해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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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연암의 호질과 신경림의 동해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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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내로남불'과 같은 사건이 연달아 터지고 있다. 최근 진보 언론을 대표하는 지식인과 관련한 불미스러운 보도도 그중 하나다. 각종 사회 현안에서 가을 서리처럼 차가운 비판을 내놓던 언론인이 정작 본인의 일에 대해서는 봄바람처럼 부드러운 잣대를 들이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비단 자아와 피아에 대한 이중 잣대는 현 세태에서만 보이는 일은 아닌 듯하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문학가, 소설가인 연암 박지원 선생의 청나라 여행기인 '열하일기'의 '정내관사' 편에 수록된 단편 '호질(虎叱)'이 있다. 연암은 '호질'을 통해 당대의 지식인인 양반들의 도덕적 해이와 위선의 세태를 비판했는데,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으려 하는데 마땅한 것이 없었다. 의사를 잡아 먹자니 의심이 나고 무당의 고기는 불결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호랑이는 청렴한 선비의 고기를 먹기로 했다. 한 마을에 1만5000편의 경전을 번역하고 관직을 멀리하며 대쪽같이 살아가는 '북곽선생'이라는 학자가 있었다. 하지만 북곽선생은 같은 마을의 '동리자'라는 청상과부와 정분이 있는 관계였다. 호랑이가 내려온 밤에도 북곽선생은 동리자와 밀회를 즐기고 있었다. 그녀의 성이 다른 다섯 아들이 몽둥이를 휘두르며 뛰어드니 똥통에 빠져가며 급박하게 도망 나왔지만, 아뿔싸, 호랑이와 마주쳤다.


이때 북곽선생이 호랑이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온갖 아첨을 하자 호랑이는 '선비 유(儒)가 아닌 아첨 유(諛)라고 하더니 그 말이 틀린 것이 없도다'라며 북곽선생을 꾸짖었다. 북곽선생은 목숨을 건지기 위해 호랑이가 사라진 줄도 모르고 아첨의 말을 해가 뜰 때까지 중얼거렸다. 이윽고 아침에 김매러 나온 농부가 보고 왜 그러고 있는지 묻자 북곽선생이 자신의 행동은 하늘을 공경하고 땅을 조심하는 것이라고 변명의 말을 늘어놓는 것이 이 소설의 화룡점정이다.


당대 지식인들의 이중 잣대와 곡학아세를 비판하는 소설로 출판 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오늘날 일련의 내로남불 사건들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릿발 같은 비판을 자랑이라도 하듯 사회 곳곳에 '추상'을 뿌렸지만 정작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춘풍'과 같은 태도를 보이는 작금의 지식인들은 위 작품을 거울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필자가 좋아하고 항상 경계로 삼는 시 한 편이 있다. 시인 신경림 선생의 '동해바다-후포에서'다. "친구가 원수보다 더 미워지는 날이 많다/티끌만 한 잘못이 맷방석만 하게/동산만 하게 커 보이는 때가 많다/그래서 세상이 어지러울수록/남에게는 엄격해지고 /내게는 너그러워지나 보다/돌처럼 잘아지고 굳어지나 보다//멀리 동해 바다를 내려다보며 생각한다/널따란 바다처럼 너그러워질 수는 없을까/깊고 짙푸른 바다처럼/감싸고 끌어안고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스스로는 억센 파도로 다스리면서/제 몸은 맵고 모진 매로 채찍질하면서"


사람들의 '세상을 보는 눈'이라는 게 참 묘하지 않은가? 자기가 바라보는 시점은 항상 자기중심적이다. 즉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에 따라 한없이 너그러워지기도, 냉정해지기도 하는 것이 인지상정일지도 모른다.


동해바다가 너그러운 것은 한없이 깊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 사회도 갈등보다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역지사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시의 말미처럼 남을 비판하는 자는 먼저 '제 몸은 맵고 모진 매로 채찍질하면서' 자기 관리에 무엇보다 철저해야 한다. 정약용 선생이 자신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글을 쓸 때 이 글이 번화가에 떨어져 내 원수가 읽더라도 나를 비난하지 않을까 생각하라. 또한 수백 년 뒤에 전해지더라도 조롱을 받지 않을까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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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근 서강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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