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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끝날 때까지는 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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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끝날 때까지는 끝이 아니다 정은귀 한국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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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Ain't Over 'Til It's Over."


자주 흥얼거리는 레니 크래비츠(Lenny Kravitz)의 노래 제목이고 스포츠 경기에서도 자주 하는 말이다. 야구 경기는 9회 말 2사에서 다 졌다 싶을 때 기적처럼 새로 시작되기도 한다. 인생도 그러하다. 끝날 때까지는 끝이 아니므로 우리는 매 순간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

이 말을 연말에 기쁘게 들었다. 2018년 연예대상 수상자 개그우먼 이영자씨에게서. 여성으로서는 처음인 2관왕이다. 늦게나마 영상을 찾아보니 "저를 보면서 많은 분이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며 연로하신 어머니께 "떡두꺼비 같은 딸을 낳아주셔서 먹다 먹다 대상까지 먹었네요"라며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이 처절하고 슬프기보다 의연하고 여유로운 것은 그가 지나온 삶의 고비, 그 가파름을 가늠하게 한다. 과거 다이어트 파문으로 방송 활동을 중단하기까지 했던 그다. 그래서 "떡두꺼비 같은 딸을 낳아주셔서" 고맙다는 말이 왜 그리 후련하고 통쾌한지. 우리는 대개 떡두꺼비 같은 아들, 토끼 같은 딸로 남녀의 성적 편견을 어릴 때부터 학습한다. 여성은 곱상하고 부드러워야 점수를 따고 힘들 때 눈물로 호소하면 쉽게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하고, 남자는 용감하고 씩씩해야 하고 눈물을 흘려서도 아니 된다고 가르친다. 틀렸다. 여자도 강해야 하고 남자도 눈물을 흘릴 수 있다.

말은 많은 것을 미리 규정하기에 관습적으로 하는 말은 나 아닌 것을 나다움으로 익히도록 강제한다. 떡두꺼비 같은 딸이 큰일 해낸 걸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이 흐뭇한 것은 이씨의 수상이 흔한 성공신화로 치부되기 어려운 진정성이 있어서일 것이다. 그 진정성의 이면에는 사회가 강제하는 역할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 '자기다움'으로 승부를 건 '인간' 이씨의 노력이 빛나고 있다.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시작한다. 끝과 시작의 매듭 앞에서 새 시작의 결심을 다부지게 챙기는 우리 마음은 다른 한편 끝이 나버린 사람들 앞에서 무겁고 아프다. 근면과 성실로 오롯이 무장하고 묵묵히 일만 하던 사람들을 우리는 너무 많이 잃었다. 막을 수 있는 사고로 말이다. 그 선한 눈망울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 김용균씨 외에도, CJ대한통운 물류센터에서 감전사한 아르바이트생 김아무개씨, 한화종합화학 공장에서 추락사한 비정규직 구아무개씨, 이마트 에스컬레이터에 몸이 끼여 숨진 하청 노동자 이아무개씨, 충남 예산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기계에 몸이 끼여 숨진 러시아 국적의 한인 동포 박아무개씨 모두, 끝날 때까지는 끝이 아님을 믿고 열심히 일했던 청춘들이다. 이 죽음들은 모두 우리 사회가 얼마나 참혹하고 야만적인 희생과 착취 위에 서 있는지 그 구조적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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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은 다른 시작이다. 정규직ㆍ비정규직, 남녀 할 것 없이 일터의 안전은 자본이나 이윤의 논리로 합리화할 수 없는 기본적인 인간 조건으로 보장돼야 한다. 돌아올 길 없이 끝나버린 그들의 삶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받지 못한다. 더는 다른 죽음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눈을 환히 켜야 하는 새해다. 한 번도 절벽에 서보지 못한 자들의 숫자놀음으로 노동자의 안전을 논할 것이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를 담고 사람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노동 환경부터 갖추면서 우리는 새로 시작해야 한다. 자기다움으로 어려움을 딛고 끝내 일어선 이에게 축하를 보내며 새해는 모두에게 끝과 시작을 잇는 변화의 시간이길 빌어본다.


정은귀 한국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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