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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웅의 행인일기 14]산티아고 대성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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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웅의 행인일기 14]산티아고 대성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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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는 예수의 제자 야고보 성인의 스페인식 이름입니다. 예수 사후 그는 태양이 지는 곳을 따라 이베리아 반도 서쪽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다 돌아와 순교를 하게 되지요. 44년의 일입니다. 여러 설들이 있지만 그의 묘는 스페인 해안에서 조개껍데기와 함께 발견되었다고 하며 유해의 신성한 이동에 천사들이 도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슬람이 이베리아 반도까지 세력을 뻗쳐오자 그의 묘와 전설도 사라집니다.


로마의 지배에 이어 무어인들의 억압을 받던 이베리아 반도의 사람들은 자기네들에게 예수의 복음을 전해준 야고보 성인의 신성한 부활을 800년 동안이나 기다려야 했습니다. 813년 은둔자 펠라요(Pelayo)가 들판에 밝은 별이 비추는 기적을 보고 정체 모를 석관을 발견하게 되면서 그 주인공이 야고보임이 밝혀지는 대사건이 일어나는 거죠. 갈리시아 지방에 전해오던 전설이 확인되면서 숨죽여 지내던 기독교를 부활시킬 수 있는 신성한 힘이 생긴 겁니다. 석관이 발견된 자리에 성당을 세우자 유럽 전역에서 순례자들이 모이기 시작합니다. 여기가 바로 '별이 빛나는 들판'이라는 뜻을 가진 콤포스텔라(Compostela)이고 지금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이 있는 자리입니다.

저는 이 길을 걷고 있습니다. 누구든, 자신의 종교와 상관없이 걸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 길은 종교만의 길이 아니라 자연과 역사의 길이요, 유럽에서 살다간 수많은 영혼을 만나는 길입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밀리어 솟는 인류의 간절한 소망을 생각하는 길. 듣고 보고 느끼는 체험의 길이며, 발견하고 수긍하고 질문하는 공부의 길이기도 합니다.


낮 12시 미사에 들어갑니다. 순례자와 일반 신도들이 산티아고 성당에 가득 들어 차 있습니다. 늦게 입장하는 바람에 서 있어야 합니다. 스페인어 강론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노래는 성당 공간 전체를 울리며 숭고한 느낌을 줍니다. 이어서 순례자들을 축복하는 대향로가 흔들립니다. 여러 명의 수사들이 20m도 더 되는 기다란 줄을 잡아 크게 흔듭니다. 향로는 연기를 내뿜으며 점점 더 높이 올라갑니다. 탄성이 터집니다. 여기가 하이라이트입니다. 지금이 절정입니다.

순례를 마친 이들은 벅찬 감격을 경험합니다. 딸 옆에 앉아 고개를 기대고 있는 노인의 뒷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소리 없이 눈물 흘리는 거구의 청년도 아름답습니다. 미사가 끝나면 옆 사람을 포옹하며 감사와 축복의 인사를 나눕니다. 젊은 스페인 아가씨가 저를 활짝 안아줍니다. 저도 그녀처럼 꽃이 핍니다. 다른 사람에게 축복받는 일. 가슴으로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일. 이게 행복이군요. 행복 찾아 멀리 헤맬 일이 아니네요. 오래 닫혀 있던 인류애의 문이 열리는 지금 여기! 행복은 축복과 함께 온다는 걸 문득 깨칩니다.


[윤재웅의 행인일기 14]산티아고 대성당에서

다음 날 성당 앞 광장에서 우연히 브레드 레너를 다시 만납니다. 미국 미네소타에서 온 청년. 사나흘 전부터 길에서 자주 만나 눈인사 나누는 사이. 서울에서 나흘 정도 머문 경험 있고, 순례길 마치면 독일로 가서 여행할 예정이랍니다. 그가 미사에 참여했느냐고 물어보네요. 저는 향로 흔들리는 동영상을 보여줍니다. 제가 서 있던 자리가 촬영하기 좋은 자리였으니까요. 브레드는 경탄을 하며 엄지척을 합니다. 그에겐 기회가 여의치 않았나 봅니다. 혹시 자기에게 보내줄 수 있느냐며 메일 주소를 찍어줍니다. 한 달 후쯤 보내주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가서 받았는지, 어느 하늘 밑을 떠돌며 받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브레드와 헤어진 후 아내가 말합니다. 좀 어둡지 않아. 방황하는 것 같네! 저는 청춘은 원래 그런 거라고 말합니다. 직장 다니다 사표 던지고 온 한국 청년들, 우리도 많이 만났으니까요. 이들은 낡은 자기를 내던지고 새로운 자기를 찾으러 씩씩하게 걸어갑니다. 겉으론 시시덕거리고 철없어 보여도 속으론 많이 아파하고 치열하게 생각하지요. 이들은 종교 체험을 하는 게 아닙니다. 성찰할 시간과 공간이 필요해서 과감하게 결단합니다. 자기에게 맞는 삶을 찾는 일. 2000년 전 야고보가 보여준 것처럼, 자신의 참된 가치를 찾기 위해 전 세계의 청춘들이 길을 떠납니다.


어두운 얼굴 빛과 방황하는 발걸음은 철학의 다른 이름일 테지요. 과로사회, 대량실업, 희망 없는 가난, 개인의 외로움. 지그문트 바우만(1925~2017)이 묘파한 '액체 근대'의 모습이 우리사회에 이미 도래해서 사회구조와 개인 정체성을 서서히 바꾸고 있습니다. 이 전환기의 물결 속에서 이들은 힘겹게 걸으며 심사숙고할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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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시대를 떠넘겨서 미안합니다. 밖에 나와 함께 걸으니 세계 청년들에게 다 미안합니다. 축복해주고 싶지만 제 사랑의 힘이 아직 작습니다. 젊은 사람들에 대한 믿음. 그 하나만 변치 않고 가지려 합니다. 주저앉지 않은 이들. 길 찾아 떠나는 이들. 어느 들판에서든 별빛을 발견하는 우리 아들딸들. 그들의 땅, 자기 안의 콤포스텔라!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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