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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 충북선/정용기

시계아이콘읽는 시간35초

다음 생에는
충북선 기찻길 가까운 산골짜기에
볕바른 집을 마련해야지.
3?8일에 서는 제천 장날이면
조치원 오송 충주를 지나오는 기차를 타고
터키석 반지를 낀 고운 여자랑
제천역 전시장을 가야지.
무쇠솥에서 끓여 내는 국밥을 사 먹고 돌아다니다가
또 출출해지면 수수부꾸미를 사 먹어야지.
태백산맥을 넘어온 가자미를 살까
어떤 할미의 깐 도라지를 살까 기웃거리다가
꽃봉오리 맺힌 야래향 화분 하나 사고
귀가 쫑긋한 강아지도 한 마리 사서 안고
돌아오는 기차를 타야지.
손잡고 창 너머로 지는 저녁 해를 보다가
삼탄역이나 달천역쯤에 내려서 집으로 와야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산그늘로 숨어들어야지.
소쩍새 소리 아련한 밤이면
둘이 나란히 엎드려 시집을 읽을까,
스메타나의 몰다우를 들을까.
어쨌거나 다음 생에는
충북선 가까운 곳에 살아야지.

[오후 한 詩] 충북선/정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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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새 학기, 그중에 특히 일 학기엔 정말이지 오로지 선심으로(!) 과제물 하나를 보태곤 했었다. 봄이라서 영 마음이 싱숭생숭하거들랑 수업에 들어오는 대신 기차를 타고 봄 맞으러 다녀와도 된다고, 대신 A4 용지 두 장 가득 봄을 담아 오라고. 그런데 아쉽게도 십여 년 넘게 그 과제물을 제출한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렇기도 하고 요즘은 대학생들도 학점에 상당히 민감해서 사오 년 전부터는 봄맞이 과제(?)를 아예 그만두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내가 좀 지나쳤다 싶기도 하다. 봄을 마중하러 가는 그 살뜰하고 다사로운 마음을 종이에다 옮겨 적으라고 했으니 말이다. 그래, 미안하다. 이번 봄엔 내가 솔선해서 휴강하고 기차 타러 갈까, 그럴까?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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