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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12월처럼 25일이 크리스마스 휴일이거나 25일이 주말이 아닌 이상, 대부분 회사에서 월급날은 25일로 구성된다. 공무원들처럼 월급날이 한꺼번에 오지 않게 하려고 직군별로 나눠놓거나, 주로 공사대금을 받아야 월급을 주는 하청업체들을 제외하면 많은 기업들은 25일을 월급날로 삼는다.
사실 '월급'이란 단어가 일한 대가라는 '후지급'의 의미를 가진 단어임을 감안하면, 매달 25일 지급되는 월급은 개념이 좀 복잡해진다. 25일간 일한 임금은 후지급으로 받고 남은 5일간의 임금은 선지급받는 형태가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월급날이 10일인 경우에는 대부분 익월의 월급을 후지급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난달 월급을 열흘이나 늦게받는 셈이 된다.
월급날의 이러한 기묘한 지급구조는 사실 사용자와 노동자간 수천년에 걸친 줄다리기 싸움과 협상의 결과다. 고대에는 사실 '월급'이나 '주급'이란 개념 자체가 일반 직군들에서는 희박한 편이었는데, 대부분 농작물의 몇%를 가져갈지, 생산한 수공업제품을 판 가격의 몇%를 가져갈지 결정하는 노동결과물에 대한 비율 싸움이 주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소금이 흔하지만 고대에는 사치품으로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용병들의 급료로 소금을 줬다고 한다. 월급을 뜻하는 영어단어 샐러리의 어원도 소금이다.(사진=아시아경제DB)
다만 월급으로 따져 줘야하는 조직이 하나 있었으니, 다름아닌 군대였다. 당시 군 병력이란 것은 전쟁이 발생하면 긴급히 징병했다가 해산하는 일반 징집병을 제외하고 대부분 용병(mercenary)으로 돈받고 싸워주는 직업군인들이었다. 월급의 영어 단어인 '샐러리(salary)'가 로마시대 용병들이 받던 급료인 '살라리움(salarium)'이란 라틴어에서 나온 것도 우연이 아니다. 당시 급료는 소금으로 주로 지불돼 이런 단어가 생겼다고 전해진다.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돈주는 날이다. 용병들은 하루라도 더 빨리 돈을 받고자 했지만, 용병을 고용한 왕이나 장군들 입장에서는 하루라도 더 늦게 주고 싶어했다. 급료가 밀리면 용병들은 쉽게 반란을 일으켰고, 전선을 이탈하거나 고용주의 나라를 약탈하기까지 했다. 결국 각 용병단들은 고용주와 계약을 하면서 월별로 돈 주는 날을 못박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월급날의 탄생 배경이 됐다.
중세시대로 넘어오면서 월급날은 좀더 광범위하게 퍼지게 됐는데, 이는 봉건영주와 기사 및 무사집단간의 쌍무적 계약관계에 따른 것이었다. 왕은 물론 영주들도 전쟁이 발생하면 자기 수하의 기사들을 소집해 전투에 참전케했는데, 이들은 봉건계약에 따라 40일간은 무상으로 싸웠지만 그 이후부터는 주군이 월급을 쳐서 줘야하는 계약이 있었다.
고대에도 고용주와 용병간에 월급 지급일을 둔 줄다리기는 똑같이 발생했다. 장기 전쟁이 발생하면, 아무리 승전해서 많은 전리품을 챙겨도 병사들 월급 지급에 파산할 가능성도 높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런 연유로 중세시대에는 장기간 전쟁을 쉽게 찾아볼 수 없었고, 18세기까지 주로 극도의 '제한전(Limited War)'을 펼쳤다. 형세상 적군이 유리하다 싶으면 곧바로 전투를 접고 협상에 나서는 형태였다. 장기전으로 가면 승전해도 기사들 월급주다 파산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근세 초기인 16~17세기에 들어와 유럽에서는 여기저기 용병단이 생기면서 용병 모집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 다른 용병단보다 더 빨리 월급을 주는 조건들을 내걸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월급날이 30일 안쪽으로 들어오게 된 배경이 됐다. 독일의 유명한 용병대이자 스위스용병대와 경쟁하던 란츠크네히트의 경우엔 매월 28일에 월급을 지급한다고 선전했었다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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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문화가 군사부문에서 산업부문까지 확산된 것은 19세기 산업혁명 이후부터였다. 철저한 분업화로 생산물 자체를 내놓는 노동자가 사라지면서 노동의 가격을 측정해 주는 것은 새로운 문제로 떠올랐다. 더구나 아예 생산라인에 뛰지 않고 노동자를 관리하는 것을 주 업무로 하는 '관리자' 계급이 탄생하면서 월급과 주급이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기업들의 규모가 점차 커지고, 19세기 기업들이 관리자 대부분을 퇴역군인으로 채워나가기 시작하면서 군대문화와 보수체계 등이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왔다.
이러한 장구한 역사 속에서 태어난 '25일 월급날'이 한반도까지 들어오게 된 것은 구한말이었다. 1899년 개설한 대한천일은행에서 당시 일본 은행들의 관행을 좇아 25일을 월급날로 삼게 됐고, 매 25일마다 직원 월급을 주고자 은행 지점들이 돈을 많이 확보해놓게 되자 기업들도 여기에 따라 월급날을 25일로 옮기기 시작했다. 1990년대부터 월급 봉투가 사라지면서 현금으로 받는 재미가 줄어들게 됐지만, 여전히 25일은 직장인들에게 애증의 월급날로 남게 됐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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