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윤신원 기자]1793년 오늘(10월16일) 프랑스에서는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서 참수형에 처해졌다. 루이 16세와 평탄치 못한 결혼 생활을 하다 프랑스 혁명 속에 국고를 낭비하고 반혁명을 시도한 죄로 37세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지만 프랑스의 왕비가 되기 전까지 그녀는 매우 평범한 소녀였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오스트리아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10대 시절 앙투아네트는 ‘천방지축의 제멋대로 소녀’로 평가되지만 18세기 당시 유럽 공주들의 교육 수준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역사 기록을 살펴보면 앙투아네트는 상당히 매력적인 소녀였다. 예쁜 얼굴과 상냥하고 친절한 성격을 가졌고 하프를 즐겨 연주하고 노래도 곧잘 불렀다고 한다.
앙투아네트가 매력적인 소녀였다는 것은 한 일화를 통해 알 수 있다. 내성적인 천재 음악가의 대담한 청혼 이야기다. 음악을 좋아했던 앙투아네트는 어머니인 테레지아 여왕을 따라 비엔나 궁정 음악회를 갔고 그곳에서는 6살 영재 소년이 피아노를 연주했다. 그의 영재성이 기특했던 여왕은 선물을 주고 싶다고 하니 앙투아네트를 가리키며 “공주님을 주세요. 제가 크면 공주님과 결혼하게 해주세요.” 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영재 소년은 바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다.
첫 눈에 반한 모차르트는 꽤 오랫동안 앙투아네트를 좋아했고 모차르트가 가장 사랑했던 여인으로 알려진 알로지이아를 만나고 나서야 그녀를 잊을 수 있었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모차르트도 앙투아네트가 죽기 2년 전, 1791년 12월 만성 위염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렇다면 앙투아네트가 가장 사랑했던 남자는 누굴까. 앙투아네트가 죽기 전까지 불륜 상대이자 조력자였던 스웨덴 귀족 한스 악셀 폰 페르센으로 알려져 있다. 상당히 잘생긴 외모로 인기가 많았고 마리와는 정신적 사랑을, 다른 여인들과는 육체적 사랑을 나눴다는 기록도 있다.
앙투아네트는 처형이 되기 직전 페르센에게 편지를 통해 “당신을 미친 듯이 사랑해요. 나의 사랑스러운 친구여, 당신을 사랑하지 않은 순간이 단 한 반도 없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고는 도저히 이 편지를 끝낼 수가 없네요”라고 쓴 것으로 전해진다. 페르젠 또한 자신의 누이에게 “마리 앙투아네트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였고 가슴 깊이 사랑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윤신원 기자 i_dentit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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