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승진 기자] “하...” 서울 동대문구 대학가 원룸에 거주하는 대학생 유모(26)씨는 깊은 한숨과 함께 창문을 ‘쾅’ 닫았다. 창 밖에서 흘러들어오는 담배냄새 때문이다. 1층에 거주하는 유씨의 집은 창문을 열면 곧바로 길가와 마주한다. 유씨는 “창문이 건물 입구와 가깝다 보니 담배를 피우기 위해 나온 세입자들이 창문 근처에서 담배를 피운다”며 “담배냄새 때문에 너무 고통스럽다”고 호소했다.
대학가 등 원룸촌에 거주하는 많은 이들이 간접흡연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서울의료원이 지난해 발표한 ‘간접흡연 피해실태’ 결과에 따르면 공동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비흡연 가구 중 73%가 외부에서 담배 연기가 집안으로 흘러들어오는 ‘간접흡연 침입’ 피해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원룸촌의 간접흡연 피해의 경우 실외 흡연이 실내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 세대 내 간접흡연 피해와는 또 달라 거주민은 창문을 닫는 것 외엔 대응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대학생 김모(24)씨도 간접흡연 침입 피해자다. 속칭 ‘길빵(길거리 흡연)’을 하지 않기 위해 골목길로 들어오는 흡연자들로 인해 김씨는 고통스럽다. 김씨는 “건물과 건물 사이 공간으로 많은 흡연자들이 들어온다”며 “2층에 살고 있지만 창문을 통해 담배연기가 고스란히 방으로 들어와 함부로 창문을 열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씨는 “그 분들은 나름 길거리 비흡연자들을 배려하기 위해 골목으로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다”고 토로했다.
반지하 원룸에 거주하는 이들은 담배 연기보단 담뱃재로 인한 스트레스가 크다. 흡연자들이 흡연 중 턴 담뱃재는 발 높이에 위치한 반지하 원룸 창틀에 그대로 쌓인다. 반지하 원룸에 거주하는 취업준비생 박모(27)씨는 “일주일에 최소 2~3번은 창틀을 닦아줘야 한다”며 “창틀을 자주 청소해주지 않으면 담뱃재들이 쌓여서 담배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원룸 거주민들은 간접흡연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지만 흡연자들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원룸촌의 특성상 흡연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거주하던 원룸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직장인 강모(28)씨는 “실내도 아니고 집 앞에 잠깐 나와 담배를 피우는 것도 문제가 되냐”며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대로변까지 나가 담배를 피워야 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흡연자인 대학원생 이모(29)씨는 “요즘은 길거리에서도 흡연이 불가능하고, 집 안에서 담배를 피우면 옆집 등에서 민원이 들어온다”며 “도대체 어디에서 담배를 피우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비흡연자와 흡연자 모두 난감한 상황이지만 마땅한 해법은 없는 상황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지난달 국토교통부가 공동주택 세대 내 간접흡연 피해 방지 등을 담은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을 내놨지만 실효성 없다는 지적이 많다”며 “당장은 흡연자와 비흡연자간의 배려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의료원 관계자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주택 사이의 간접흡연 침입에 대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며 ” 우리 실정에 맞는 공동주택 내 흡연의 제한과 간접흡연 노출 위험성에 대한 홍보 및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승진 기자 promoti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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