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이종길의 영화읽기]피해자에서 삶을 증언하는 시민운동가로

시계아이콘01분 49초 소요
언어변환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김현석 감독 '아이 캔 스피크'...나옥분의 인생관은 어떻게 능동적으로 바뀌었나

[이종길의 영화읽기]피해자에서 삶을 증언하는 시민운동가로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스틸 컷
AD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저는 해방되고서도 아주 긴 세월을 제 과거가 부끄러워서,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피해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용기를 내어 모든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2007년 11월 유럽의회의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이끌어낸 길원옥 할머니의 연설이다. 그녀는 수요시위에서 만났던 아이들을 떠올렸다. "제게는 큰 숙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저 아이들만큼은 내가 겪은 것을 다시 겪게 해서는 안 된다'는 간절한 소망입니다." 세상을 함께 만든다는 생각은 역사적 진실에 다가서게 한다. 편견과 독선을 버리고 서로의 아픈 곳을 보듬는 것이 시작이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은 말하기 시작했다. 추위와 병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주 수요일 12시마다 일본 대사관 앞을 찾는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수요시위. 더 이상 피해자에 머물지 않고 당당하게 나와 자신의 삶을 증언한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이러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희망을 외치는 할머니들의 꿈을 나옥분(나문희)을 통해 보여준다. 시장에서 옷을 수선하는 그녀는 '도깨비 할매'로 불린다. 부당한 처사를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구청에 민원 8000건을 넣을 만큼 적극적이다. 김현석 감독은 그녀의 태도가 왜 능동적인 인생관으로 전환했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미국 하원의회 공개 청문회에서의 증언을 준비하면서 드러나는 위안부 경험으로 짐작하게 할 뿐이다.


[이종길의 영화읽기]피해자에서 삶을 증언하는 시민운동가로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스틸 컷

역사적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위안부 할머니들은 피해자로서 그늘진 곳만을 찾아다녔다. 1991년 8월14일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은 그들을 세상에 나오게 했다. 많은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위안부 문제가 널리 알려졌다. 일제의 책임을 규명하려는 활동도 많아졌다. 그들은 어느덧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시민운동가가 됐다. 각종 국제회의에서 증언을 하고, 학교나 시민 강좌에서 강단에 오른다. 비슷한 피해를 입은 미군 기지촌의 성매매 피해자들을 찾아가 억울함을 외치라고 격려하기도 한다. 2006년 미국의 한 대학교에서 열린 증언 집회에서 이용수 할머니는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생겼느냐?"는 여대생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나는 여기 저와 함께 있는 이 여성들 때문에 이렇게 과거의 아픔을 이기고, 여러분 앞에 당당할 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증언을 경청해주는 여러분의 반응도 저를 당당하게 만들어 줍니다."


나옥분은 인권운동가로 새롭게 태어난 그들 가운데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에게는 골칫덩어리일 뿐이다. 몇몇 이들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한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온 위안부 피해자들은 그 시선이 두려웠을 것이다. 남성 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논리에서 비롯된 사회의 편견이다. 같은 피해자의 입장이지만 적잖은 이들은 그들을 '빼앗긴 여성'으로 본다. 이 말은 정절을 잃었다는 것과 동일선상에 있다. 이 가치관에서 여성은 때로는 군수 물자, 때로는 증오를 풀어야 할 대상으로 다뤄진다.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는 저서 '20년간의 수요일'에서 "일본군이 임신한 여성이나 성병에 걸려 효용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여성들을 버린 것이나, 이미 정절을 잃은 여자는 가족으로서나 아내로서 가치를 상실했다고 생각하는 것 모두가 가부장적 관점에서 비롯된 견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가해자의 비인간적이고 성차별적인 가치관에 반대해왔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방식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했다.


[이종길의 영화읽기]피해자에서 삶을 증언하는 시민운동가로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스틸 컷


나옥분의 고군분투에도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구청 종합민원과에는 여전히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건설사와 구청은 원칙을 앞세워 시장의 약자들을 압박한다. 나옥분은 서류를 파기하고 원칙을 제공한 박민재(이제훈)에게 간절한 목소리로 부탁한다. "나 마지막으로 한 번만 도와줄 수 없겠냐." 영어를 가르쳐달라는 청이 아니다. 세상의 약자들이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호소다. 그녀는 박민재의 도움으로 별 탈 없이 증언한다. 그 내용은 누군가에게 한정됐던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만들어낸다. 역사적 진실을 넘어 인권으로 써내려가는 미래의 역사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1510:17
    "눈에 띄게 달라졌다" 36억 투입해 '자동화·자원화' 확 달라진 도축장⑤
    "눈에 띄게 달라졌다" 36억 투입해 '자동화·자원화' 확 달라진 도축장⑤

    정부가 추진해 온 자유무역협정(FTA) 국내보완대책이 도축·가공 현장의 체질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부산·경남권의 핵심 거점인 부경양돈협동조합 통합부경축산물공판장과 대전·충남권의 대전충남양돈농협 산하 포크빌축산물공판장은 시설 현대화를 통해 생산성과 위생, 환경 성과를 동시에 끌어올리며 국내 축산물 경쟁력 강화의 실증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수입 축산물과의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공판장의 역할이 단순

  • 25.12.1209:58
    '똥값의 역전'…70억 투입하자 악취 나던 분뇨가 돈이 됐다 ④
    '똥값의 역전'…70억 투입하자 악취 나던 분뇨가 돈이 됐다 ④

    정부가 추진해 온 자유무역협정(FTA) 국내보완대책이 제주 축산 현장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제주 한라산바이오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가축분뇨를 재생에너지와 비료로 전환하며 지역 축산업의 환경 기반을 바꾼 시설로 꼽힌다. 제주에서는 약 55만~60만마리의 돼지가 사육되며 하루 2500t 가까운 분뇨가 발생하는데, 한라산바이오는 이를 안정적으로 처리하고 자원화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분뇨가

  • 25.12.1108:51
    멀쩡한 사과 보더니 "이건 썩은 거예요" 장담…진짜 잘라보니 '휘둥그레' 비결은?③
    멀쩡한 사과 보더니 "이건 썩은 거예요" 장담…진짜 잘라보니 '휘둥그레' 비결은?③

    "자유무역협정(FTA) 국내 보완대책을 통해 설립된 '충주 거점 산지유통센터(APC)'는 단양과 제천, 음성, 괴산 등 충북 북부권에 위치한 농가 650곳에서 생산한 사과를 세척·선별·포장·출하하는 과실 전문 APC입니다. 생산단계부터 관리하고 사과 브랜드화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또 저온저장고와 선별기 등을 통해 비용을 줄여 농가엔 더 큰 수익을, 소비자들에겐 품질 좋은 사과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습니다.

  • 25.12.1010:18
    고품질 韓 조사료 키워 사료비·수입의존도↓ ②
    고품질 韓 조사료 키워 사료비·수입의존도↓ ②

    59개 국가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축산농가의 부담을 줄이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부의 국내보완대책 가운데 하나가 '조사료생산기반확충 사업'이다. 조사료는 볏짚이나 목초 등 거친 섬유질 위주의 사료로, 이 사업을 통해 국산 조사료의 생산·유통·가공 기반을 갖춘 지역 단위 가공·유통센터가 확충되면서 국산 조사료 품질과 시장 신뢰도가 눈에 띄게 개선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북 김제에 위치한 전주김제

  • 25.12.0909:11
    "1인당 3500만원까지 받는다"…'직접 지원'한다는 FTA국내보완책①
    "1인당 3500만원까지 받는다"…'직접 지원'한다는 FTA국내보완책①

    올해 3분기 기준 한국은 22개의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통해 59개 국가와 FTA를 활용한 무역에 나서고 있다. 한국의 첫 FTA인 한-칠레 FTA가 발효된 2004년 4월 이후 약 21년 5개월 만의 성과다. 정부는 현재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85% 수준인 FTA 네트워크를 글로벌 1위인 90%까지 더 넓고 촘촘하게 확충할 방침이다. FTA 네트워크 확대에 따라 한국의 수출 시장이 넓어진 만큼 수출액도 2004년 2538억달러에서 2024년 6836

  • 25.12.0607:30
    한국인 참전자 사망 확인된 '국제의용군'…어떤 조직일까
    한국인 참전자 사망 확인된 '국제의용군'…어떤 조직일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이현우 기자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했다가 사망한 한국인의 장례식이 최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열린 가운데, 우리 정부도 해당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매체 등에서 우크라이나 측 국제의용군에 참여한 한국인이 존재하고 사망자도 발생했다는 보도가 그간 이어져 왔지만, 정부가 이를 공식적으로 확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2.0309:48
    조응천 "국힘 이해 안 가, 민주당 분화 중"
    조응천 "국힘 이해 안 가, 민주당 분화 중"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조응천 전 국회의원(12월 1일) 소종섭 : 오늘은 조응천 전 국회의원 모시고 여러 가지 이슈에 대해서 솔직 토크 진행하겠습니다. 조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조응천 : 지금 기득권 양당들이 매일매일 벌이는 저 기행들을 보면 무척 힘들어요. 지켜보는 것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