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이종길의 영화읽기]인디언 문화에서 찾은 위안과 안식

시계아이콘01분 52초 소요
언어변환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테일러 쉐리던 감독 '윈드 리버'

[이종길의 영화읽기]인디언 문화에서 찾은 위안과 안식 영화 '윈드 리버' 스틸 컷
AD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한 여인이 소복소복하게 쌓인 눈밭 위를 맨발로 달린다. 방향이 겨우 분간되는 짙은 어둠 속에서 인기척을 찾는다. 숨을 들이마시기 힘들 만큼 차가운 밤공기. 그녀는 폐가 굳어가는 아픔을 느끼면서도 걸음을 쉬지 않는다. 피가 고이고 기침이 터진다. 이내 피가 기도를 막아 호흡이 멎는다. 희미해지는 의식으로 여인은 시를 읊는다. "나의 세상에는 아름다운 초원이 있다. 나뭇가지가 춤추듯 바람에 나부끼고, 햇살이 부서져 호수에 물결이 이는. (중략) 사랑의 눈길로 날 바라보던 그대여, 진흙탕 같은 현실 속에 얼어붙어가는 날 찾아준다면 그대와 함께 했던 이곳으로 돌아와 완벽한 위안과 안식을 찾으리라."

아메리카 선주민은 시를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단어와 구절뿐 아니라 말을 할 때의 상황과 언어 속에 함축된 세상을 보는 시각이 소중한 지혜의 원천이다. 테일러 쉐리던 감독(47)의 영화 '윈드 리버'는 그들의 감흥과 사상이 담긴 운율적인 언어로 막을 연다. 나탈리 핸슨(켈시 초우)은 백인 남성들에게 성폭행을 당해 갈비뼈가 부러지고 질 벽이 손상된다. 그녀는 목숨을 걸고 도망치면서도 자신 때문에 아파할 이들을 떠올린다. 애틋한 마음은 그녀의 아버지 마틴 핸슨(길 버밍햄)은 물론 비슷하게 딸을 잃은 코리 램버트(제레미 레너)에게 위안이 된다. 백인인 램버트는 인디언 여인과 결혼해 핸슨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슬픔을 받아들여요. 견뎌요. 그것만이 나탈리와 함께 하는 방법이에요."


[이종길의 영화읽기]인디언 문화에서 찾은 위안과 안식 영화 '윈드 리버' 스틸 컷

이 영화는 지옥 같은 현실을 비판하는 드라마다. 세계평화의 전도사를 자처하는 미국은 아메리카 선주민을 살육하고 땅을 강탈했다. 선주민들은 보호구역으로 강제이주됐다. 보호구역은 미국 전역에 310곳이 있다. 토지 약탈은 1887년 보호구역 부족 토지를 사유지로 전환하는 일반할당법이 연방의회에서 제정되면서 지금도 계속된다. 이 영화의 배경인 윈드 리버 인디언 보호구역에도 정유공장이 들어섰으며, 굴착공사가 한창이다. 고삐 풀린 금융자본과 무한증식의 산업기술이 조종하는 세상에서 자유롭지 않다. 쉐리던 감독이 각본으로 참여한 '로스트 인 더스트(2016년)' 속 텍사스 주도 그랬다. 토비(크리스 파인)와 태너 하워드(벤 포스터) 형제가 가족의 유일한 재산이자 어머니의 유산인 농장의 소유권이 은행에 차압될 위기에 놓이자 은행 강도가 된다. 자연에 대한 약탈이 약자의 고통으로 돌아가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비판한다.


쉐리던 감독은 지옥 같은 세계를 구원할 방법을 선주민의 문화에서 찾은 듯하다. 땅에 기초하는 영성(靈性)이다. 땅은 그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지내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돈을 주고 무엇을 살 필요가 없었다. 필요할 때 사냥과 채집을 하며 어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 그만이었다. 백인들은 선주민들을 '바퀴도 만들어 쓸 줄 모르는 사람'이라며 얕봤다. 하지만 바퀴는 편리한 만큼 그에 상응하는 폐해를 가져왔다. 부드러운 땅에 상처를 내고, 단단한 바윗길은 역으로 바퀴에 상처를 줬다. 그뿐인가. 조립해서 만든 것은 부서지게 마련. 콘크리트와 파이프, 벽돌담으로 일리노이 강을 둘러싼 '아메리카의 베니스' 시카고는 그 담이 무너지면서 수십만 달러를 지출하고 있다.


[이종길의 영화읽기]인디언 문화에서 찾은 위안과 안식 영화 '윈드 리버' 스틸 컷


윈드 리버는 인디언과 관련이 없는 미국 연방수사국 신참 제인 밴너(엘리자베스 올슨)를 통해 이 같은 폐해를 차분하게 들여다본다. 그녀는 고초를 겪으며 인디언의 삶을 이해한다. 램버트는 그런 그녀에게 "용감하다"고 말한다. "여기는 운이란 건 없는 곳이에요. 운은 도시에나 있죠. 여기선 살아남거나 당하거나 둘 중 하나에요. 오직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곳이죠." 램버트와 다시 만나는 핸슨은 그 진리에 한층 다가가 있다.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온 아들을 보기 위해 경찰서에 갈 준비를 한다. 그는 순간에 충실해 과거와 미래의 고통에 집착하는 것을 피한다. 한 개인이 결코 참아낼 수 없을 만큼 큰 고통이 찾아오는 법은 없다. 지나간 과거의 고통과 찾아오지도 않은 미래의 고통으로 스스로를 옭아매지 않는 한 말이다. 그것이 그의 딸이 말한 완벽한 위안과 안식이 아니었을까.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209:29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병원 다니는 아빠 때문에 아이들이 맛있는 걸 못 먹어서…." 지난달 14일 한 사기 피해자 커뮤니티에 올라 온 글이다. 글 게시자는 4000만원 넘는 돈을 부업 사기로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숨어 있던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나타나 함께 울분을 토했다. "집을 부동산에 내놨어요." "삶의 여유를 위해 시도한 건데." 지난달부터 만난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아이 학원비에 보태고자, 부족한 월급을 메우고

  • 25.12.0206:30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를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부업 사기를 두고 플랫폼들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게시물에 사기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를 추가

  • 25.12.0112:44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법 허점 악용한 범죄 점점 늘어"팀 미션 사기 등 부업 사기는 투자·일반 사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업 사기도 명확히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의 한 유형이고 피해자는 구제 대상에 포함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올해 11월6일 오OO씨의 국민동의 청원 내용) 보이스피싱 방지 및 피해 복구를 위해 마련된 법이 정작 부업 사기 등 온라인 사기에는 속수무책인 상황이 반복되

  • 25.12.0112:44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나날이 진화하는 범죄, 미진한 경찰 수사에 피해자들 선택권 사라져 조모씨(33·여)는 지난 5월6일 여행사 부업 사기로 2100만원을 잃었다. 사기를 신

  • 25.12.0111:55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기자가 직접 문의해보니"안녕하세요, 부업에 관심 있나요?" 지난달 28일 본지 기자의 카카오톡으로 한 연락이 왔다.기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 25.11.1809:52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지난 7월 내란특검팀에 의해 재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동안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특검의 구인 시도에도 강하게 버티며 16차례 정도 출석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태도가 변한 것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증인으로 나온 지난달 30일 이후이다. 윤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와 직접

  • 25.11.0614:16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1월 5일) 소종섭 : 이 얘기부터 좀 해볼까요? 윤석열 전 대통령 얘기, 최근 계속해서 보도가 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 마치고 나서 장군들과 관저에서 폭탄주를 돌렸다, 그 과정에서 또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강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