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검사인데 "…보이스피싱에 1700만원 뜯긴 대학생
택시 문 열고 '슈퍼맨'처럼 나타난 경찰
돈 건네받은 조직원도 경찰 측 '스파이'
12일 오후 1시께 서울의 한 대학에 다니는 여대생 A씨는 의문의 남성에게서 전화 한통을 받았다. 전화 속 남성은 자신을 검사라고 소개했다. 그는 “학생 명의로 대포통장을 만들어 사기행각을 벌인 일당이 잡혀 수사 중”이라며 “명의를 도용당한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모르기 때문에 피해자 사실 확인을 위해 금융감독원과 협력 수사를 하는 것에 협조해 줘야 한다”는 섬뜩한 말을 했다. “비밀 수사 중이어서 전화를 절대 끊으면 안 되고 다른 사람에게 얘기를 할 경우에 금융보호법에 의해 처벌받는다”는 협박성 발언을 듣자 A씨는 혼란에 빠졌다.
구체적인 수사 공문을 인터넷으로 보내주자 전화 상대의 말을 철석 같이 믿어버렸다. A씨는 남성의 지시에 따라 곧장 은행으로 가 통장에 있던 돈 1700만원을 찾았다. 부모님이 A씨를 위해 몇 년 째 붓고 있던 소중한 적금이었다.
그리곤 금감원 직원에게 돈을 맡기기 위해 택시에 올랐다. 30분 정도 이동한 뒤 멈춰선 어느 고등학교 앞에서 금감원 직원이라는 또다른 남성을 만났다. 잠시 고민하던 A씨는 이 남성에게 돈을 모두 넘겼다.
A씨는 이때까지 자신이 보이스피싱을 당한 것인 줄 꿈에도 몰랐다. 전화 속 남성은 A씨에게 서울 지하철 서초역으로 가라고 지시했다. 그곳에서 수사팀장을 만날 수 있고 같이 기다리면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한 것이다.
반전이 시작됐다. 서초역으로 이동하던 택시에 갑자기 5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문을 벌컥 열고 앞자리에 탔다. 경찰이었다. 경찰은 A씨에게 “보이스피싱을 당하고 있다”는 내용의 메모지를 보여줬다. 그제야 A씨는 자신이 보이스피싱을 당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됐다. 남성과의 길고 길었던 전화를 끊은 뒤 서울 영등포경찰서로 향했다.
또 한 번의 반전이 일어났다. 다신 못 찾을 줄 알았던 돈이 경찰 손에 들려 있었다. 알고보니 경찰이 한 조직원과 일부러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것. A씨가 돈을 건넨 남성이 경찰의 ‘비밀 스파이’였던 셈이다. A씨는 1700만원을 고스란히 되찾았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혐의로 중국 국적 B(29)씨를 현행범으로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고 13일 밝혔다. 경찰은 B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으로 의심되는 전화가 오면 돈을 넘기지 말고 주저 없이 경찰에 신고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민영 기자 my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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