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민진 기자] 전국법관대표회의의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추가조사 요구를 거부한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항의해 현직 부장판사가 법원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직서를 제출한 당사자는 법관회의 현안조사소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한돈 인천지법 부장판사(52ㆍ사법연수원 28기)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판사직에서 물러나면서'라는 제목의 글을 법원 내부 통신망에 공개했다.
최 부장판사는 이 글에서 "관료적 사법행정체계를 이루고 있는 우리 사법부 내에서 공개되지 않고 은밀히 이루어지는 법관에 대한 동향파악은 그 어떤 이유를 내세워 변명하더라도 명백히 법관독립에 대한 침해"라며 "블랙리스트 또는 판사 뒷조사 파일 의혹을 포함하여 이번에 제기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명백히 규명되지 않으면 또 다른 8년 뒤 우리 사법부는 2009년도와 지금 겪고 있는 것과 같은 혼란을 되풀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했다.
최 부장판사는 법관회의 소위원회가 보안유지 등 법원행정처의 요구 조건에 최대한 협조하면서 블랙리스트 의혹 조사를 해나가겠다고 요청했는데도 양승태 대법원장이 추가조사를 거부한 것은 사법부의 마지막 자정의지와 노력을 꺾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최 부장판사의 사의 표명과 함께 대법원장의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추가 조사 거부와 관련해 판사들의 항의성 줄사표가 이어질 주목된다. 이와 관련해 법관회의 공보 간사인 송승용 부장판사는 "최 부장판사 외의 다른 분(판사들)의 사직의사는 아직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한편, 법관회의는 오는 24일 오전 10시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제2차 법관회의를 열어 법원 고위층의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와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등에 대한 논의를 이어 간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는 법원행정처 고위간부가 법원 내 학술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사법개혁 관련 세미나를 연기ㆍ축소시킬 목적으로 올 초 연구회 간사를 맡은 판사에게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촉발됐다.
급기야 법원행정처가 연구회 소속 판사들의 성향을 파악한 '판사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했다는 의혹으로까지 확산됐고, 일부 판사와 상당수의 법원 직원들은 대법원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서기도 했다.
김민진 기자 ent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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