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원다라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영장 청구의핵심 근거였던 '안종범 수첩'에는 삼성 청탁과 관련한 내용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부회장 재판의 스모킹건으로 안종범 수첩을 지목해왔던 특검은 혐의 입증이 더욱 어려워졌다.
4일 서울중앙지법에서 형사합의 27부(김진동 부장판사)심리로 열린 이 부회장 등에 대한 35차 공판에서는 이 재판에선 처음으로 안종범 수첩이 증거로 제시됐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도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동안 특검은 안종범 수첩 내용과 안 전 수석의 증언이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를 입증할 결정적 증거라고 주장해왔다.
◆안종범 수첩에 없는 것…'경영권 승계'= 이날 특검이 제시한 안종범 수첩 10여페이지는 '최순실·정유라·삼성 경영권 승계'라는 단어가 적혀 있지 않았다. 안 전 수석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말이 빠른 편이라 수첩에는 박 전 대통령의 지시, 발언을 그대로 적었다"며 "최순실, 정유라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고 박 전 대통령이 말한 적이 있었다면 이들의 이름을 적었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그는 "수첩에 적혀 있지 않은 삼성 경영권 승계에 대한 내용,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등 특정 기업을 도와주라는 지시를 받은 적도 없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특검은 삼성이 이 부회장의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추진해왔고 이 부회장이 청와대에 이를 도와달라는 내용의 청탁을 했다고 주장해왔다. 그 일환으로 삼성이 정유라와 최순실에게 승마 지원을 했다는 논리를 펴왔다.
◆ 안종범 수첩에 있는 것…'재단ㆍJTBC'=안종범 수첩에는 바이오, 재단, JTBC 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다. 특검은 안 전 수석에게 "삼성이 바이오로직스 등 바이오 산업을 키우고자 했기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이 바이오 산업 규제를 풀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안 전 수석은 "바이오 산업은 최근 여러 기업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항인데다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과 독대 한참 이전인 취임 초기부터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해온 사항"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특검은 그룹 총수 면담 시기였던 2015년 7월25일 '재단', 이 부회장의 3차 독대 때인 2016년 2월15일 'JTBC'라는 단어가 적힌 이유를 물었다. 안 전 수석은 "박 전 대통령이 삼성 뿐 아니라 면담에 참여한 모든 기업 총수에게 재단 설립을 위한 출연금을 내달라고 말했다"며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과 JTBC 관련 얘기를 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말하지 않았고 배석하지 않아 내용을 알 수 없다"고 답했다. 삼성 측 변호인단은 "이 부회장에 따르면 3차 독대 때 박 전 대통령이 30~40분간의 독대 시간 중 10여분 가량이나 JTBC의 정부 비판 논조에 대해 강하게 얘기했다"며 "이 부회장은 정부 비판 논조가 강한 언론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라는 압박으로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동일 증인 신문 이틀째 진행=이날 재판은 밤11시40분께 마무리됐지만 재판부는 안 전 수석을 5일 오후 다시 출석하도록 했다. 한 증인이 공판에 이틀째 출석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이틀째 이어지는 안 전 수석에 대한 증인신문에서도 특검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나오지 않을 경우 특검 논리는 힘을 잃게 될 것으로 보인다.
원다라 기자 supermo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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