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새로운 정부가 임기를 개시했다.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시간을 거쳐 시대를 열어갈 출발점이 마련된 것이다. 기대와 함께 많은 분야에서 산적한 과제에 대한 다양한 요구의 목소리도 높아질 것이다. 특히 새로운 기술발전을 사업화하는 신산업정책에 대해서는 특별한 배려가 필요하다. 특정한 사업모델을 유도하는 방식 보다는 시장에서 스스로 새로운 기술발전을 사업화하는 사업모델을 결정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4차 산업혁명 등 다양하게 표현되는 기술발전과 사업의 접목은 방향의 제시가 중요한 것이다. 확인하고 지원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 되고 사업모델은 사업가가 스스로 정하도록 맡겨두는 것이 이치에 맞다. 그러한 과정에서 규제나 제도가 새로운 사업모델을 설계하고 추구하는 데 장애가 돼서는 안 된다. 이러한 접근의 전제는 공정한 거래질서의 확립이다.
첫째, 공정한 거래질서의 확립을 위한 전제로 상거래분야에서도 합의에 기초한 거래규칙의 형성과 자기책임의 원칙에 기초한 분쟁의 해결이 강조돼야 한다. 특히 시장원리의 작동을 위한 공정한 경쟁질서를 관철하고, 부정거래의 방지를 통한 시장의 신뢰와 안전을 확인하기 위한 장치의 보완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기업과 소비자, 기업내부자와 기업외부자의 모든 관계에서 누가 누구에게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지, 그러한 책임을 이행하기 위해 어떤 수준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지를 예측가능한 방법으로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종 연기금을 포함해 다른 사람의 자산을 관리·운용하는 기관이나 개인의 경우에도 같은 출발점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이와 같이 시장참가자의 권리와 의무 그리고 책임의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는 것은 시장의 자율적 운영의 기초가 된다. 기업과 기업 사이, 기업과 소비자 사이, 기업 내부구성원 사이를 불문하고 스스로 이러한 질서를 형성할 능력이 부족한 분야는 규제의 개입이 불가피하다.
둘째, 같은 이유에서 기업지배구조는 빠질 수 없는 항목이다. 사외이사가 주도하는 이사회중심의 기업지배구조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중요사항이 빠짐없이 이사회에서 논의되고 결정되는 실체적·절차적 장치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필요한 경우 법률에서 이사회 결의사항을 매우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다소 추상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살펴볼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것이다. 같은 관점에서 각종 연기금을 포함한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가 적정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함께 챙겨볼 사항이다. 기업의 중요사항을 법률상 또는 사실상 결정하는 기업 내외부의 기관이나 개인의 의무의 수준에 대해서도 명확한 기준을 다시 한번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을 때 책임을 묻는 방식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주주대표소송이나 기관간 견제 등의 전통적인 내부적 통제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 원인을 분석하고 필요한 경우 기존 장치의 보완과 함께 기관투자자의 적극적 역할을 포함해 책임추궁장치를 외부화하는 등 작동할 수 있는 장치를 반드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 기업지배구조는 기업 자율에 맡기는 것이 타당하다는 원칙론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부분은 보완돼야 한다.
셋째, 기업 경영을 맡고 있는 임직원의 책임을 담보하기 위해 각종 법률상 제재수단의 실효성을 점검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경제분야에서 법과 원칙에 위반한 기관이나 개인에 대한 책임을 묻는 방법으로 그 기관의 영업이나 개인의 자격에 영향을 미치는 제재방식과 함께 금전적 제재를 강조하는 것도 중요한 방향이다. 과징금이나 과태료 등의 형태로 부과되는 다양한 제재수단의 금액을 현실화해 확대 적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제재의 결과로 적립된 재원의 이용방안에 대해서도 고려가 필요하다. 그러한 재원을 국가의 일반재원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대상 위반행위의 결과로 다양한 피해를 입은 피해자의 구제를 위한 특별재원으로 사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러한 형태로 위반행위에 대한 제재의 효과가 피해자에게 직접 연결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은 공정한 거래질서의 확립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될 것으로 본다.
넷째, 공정거래질서 저해행위에 대한 책임추궁수단의 현실화도 필요하다. 집단소송은 일차적으로 고려할 사항이다. 도입 이래 오랜 기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평가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의 경험은 우리나라에서 집단소송제도의 불필요성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제도개선의 필요성을 반증하는 것이다. 제도 이용자의 관점에서 집단소송의 대상을 확대하는 등 이용하기 쉬운 제도로 만들어가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정순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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