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산불에도 지자체·산림청 요청 없다고 대피문자 안보낸 국민안전처…컨트롤타워 또 마비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김민영 기자]5월 황금연휴의 끝이 화마(火魔)로 인해 잿빛으로 물들었다. 이번에도 국가 재난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국민들은 스스로 생존전략을 짜야하는 상황에 처했다.
지난 6일부터 강원 강릉ㆍ삼척, 경북 상주 등지에서 대형 산불이 잇달아 발생했지만 국가 재난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도시와 도로가 희뿌연 연기로 뒤덮이고, 민가 주변까지 불길이 번져오고 있었으나 산불이 난 인근 지역 주민들은 "대피하라"는 긴급재난문자 한 통 받지 못했다.
국가 재난 컨트롤타워인 국민안전처는 이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8일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산림청의 요구가 없어 재난문자를 발송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안전처의 한 관계자는 "범위 설정, 문자 입력과 발송 자체는 우리가 맡고 있지만 재난발생 시 현장 상황을 알 수 있는 담당 기관과 해당 지자체들의 요청이 있어야 승인을 거쳐 발송되는데 당시 문자 발송 요청이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긴급재난문자는 재난, 재해발생이 예상되거나 발생된 지역에 관련 내용을 국민에게 실시간으로 전달하고 이에 따른 대비 또는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휴대폰 긴급재난문자방송 서비스다. 태풍, 홍수, 호우, 대설, 폭풍, 해일, 한파, 폭염, 강풍, 미세먼지, 황사 등 예측하지 못한 재난이 발생했거나 발생 우려가 있을 경우 발송한다. 다만 화재, 붕괴, 폭발 등이 발생하면 주무부처가 재난문자 발송을 요청할 때 이뤄진다. 이와 관련 산림청은 6일 오후 늦게 산불 심각단계로 격상한 뒤 긴급재난문자 발송을 검토했지만 강릉시 측이 주민들을 이미 모두 대피시킨 사실을 확인한 뒤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전처는 지난 7일 밤 강릉 성산면 어흘리 산불이 재발화하자 보광리, 관음리 주민들에게 '안전한 마을회관으로 신속히 대피하라'는 긴급재난문자를 8일 오전 3시 29분쯤 발송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산불이 재발화한 시간에서 6시간여가 지난 뒤였다.
이 같은 정부의 뒷북 대처에 시민들의 불안은 가중되고 있다. 강릉에 사는 김모(38)씨는 "연기가 가득 밀려오고, 탄내도 나는데, 정부가 긴급재난 문자조차 절차를 이유로 발송하지 않았다는 것에 어이가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문제는 국가 재난 시스템의 먹통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14년 4월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재난발생 시 생존을 위해 컨트롤타워의 지시를 따라서는 안 된다'는 슬픈 교훈을 남겼다. 또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 사태 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염병의 위협에 대해 국가가 "안전하다"는 말만 반복하자 국민들은 메르스에 감염된 병원의 지도를 스스로 만들고, 감염병 예방 수칙을 공유하는 등 적극적인 대처에 나섰다.
지난해 9월12일 발생한 규모 5.8의 경주지진 소동은 컨트롤타워 마비의 결정판이었다. 지진 발생 8~9분 이상 지나고 나서야 긴급재난문자를 보내 국민들이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문모씨는 "보여주기식 메뉴얼만 만들어 놓지 말고, 재난상황에서 즉각적으로 가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며 "모레면 출범할 새 정부도 무엇보다 국민들의 안전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김민영 기자 my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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