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산업 디지털화로 점포·은행원 칼바람…그들은 왜 美生서 未生이 됐나
[아시아경제 손선희 기자] 은행의 역사는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1960년대 이후 고도 성장기를 뒷받침한 산업자본은 대부분 은행을 통해 공급됐다. 정부나 외자에 의존해야 했던 이전과 달리, 정기예금 금리를 대폭 인상한 금융개혁(1965년 9월) 이후 저축이 크게 늘면서 은행의 공급력 또한 막강해졌다. 1980년대 이후에는 정부에 의한 자본 공급률이 20% 미만으로 떨어졌다.
그렇다면 은행 금고의 '수도꼭지'를 여는 자는 누굴까. 은행원이다. 유망 산업에 대출을 내주고, 사양 산업은 반대로 조인다. 부도덕한 경영자보다는 도덕적 경영자에게, 때로는 리스크가 있어도 국가 발전을 위한 성장산업이라면 자본을 공급한다. 거대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부터 사소한 대출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의 핵심 의사결정을 은행원들이 하는 셈이다. 이 같은 '은행원의 판단'이 모여 자본의 물결이 되고, 전체 산업 흐름이 결정된다.
국내 한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주창한 '보이지 않는 손'은 알고 보면 은행원이나 마찬가지"라며 "물밑에서 은행원들이 어떻게 자원을 배분하느냐에 따라 시장이 움직여온 셈"이라고 말했다.
◆100년 전 은행원 모습=태초의 은행원은 '주주'였다. 1899년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민족자본을 기반으로 설립된 대한천일은행(우리은행 전신)의 1차 주주모집에 총 12명이 참여했는데, 이 중 10명이 은행원이었다. 당시는 은행에 몸담고 급여를 받는 '직장인'으로서의 은행원과, 투자와 배당에 관심 있는 '주주'의 개념이 거의 구분되지 않았다. 이후 3차 추가 모집을 통해 6명의 주주를 더 모았는데, 이들 중 일부도 은행 감사원과 사무원으로 재직하게 된다. 요즘으로 치면 어마어마한 '대주주'가 직접 은행에 고용돼 일한 셈이다.
100여년 전 은행원들은 대부분 대금업이나 당좌예금 등을 통한 신용대출을 했다. 1920년대부터 부동산이나 쌀을 담보로 한 대출이 시작됐다. 당시 쌀 가치를 잘못 매긴 은행원에 대해 은행 중역회의에서 징계를 내렸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현재 시중은행이 운영하는 여신협의체 혹은 감사역 제도와 비슷하다.
광복 이후 1950년대부터 은행 산업은 그야말로 꽃을 피우게 된다. 1954년 은행법의 본격 시행과 함께 조흥ㆍ상업ㆍ저축ㆍ흥업 등 '4대 은행' 체제로 재편됐다. 이후 산업은행을 비롯한 국책은행도 속속 세워졌다.
1980년대 은행산업 진입 장벽이 낮아지면서 신한ㆍ한미ㆍ동남ㆍ대동은행 등이 새로 등장했고, 같은 시기 외환은행도 일반은행으로 전환했다. 경제 부흥기를 맞아 1981년 5개에 불과했던 일반은행은 1997년 외환위기 직전 무려 26개로 크게 늘어났다. 자연스레 은행원 수도 급격히 불었고 자본의 힘을 발판삼아 사회적 지위도 상승했다.
◆위기 딛고 '神의 직업' 우뚝=1990년대 말 최악의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금융시장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15개 일반은행, 22개 투자금융, 6개 종합금융, 58개 상호금고가 거의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퇴출되거나 상호 합병됐다. 일반은행 중에서는 5개가 사라지고 나머지는 '살기 위한' 이합집산에 몸부림쳤다. 수천 명의 은행원이 명예퇴직으로 거리에 내몰렸다.
그러나 외환위기는 당시 은행들이 금융자산의 위험성을 평가하고 관리할 노하우를 전혀 축적하지 못한 탓에 벌어진 것이어서 은행원이라는 직업 자체의 필요와 영향력은 오히려 강화된 측면도 있다. 이를 증명하듯 2000년대초 8만명대였던 국내 은행 총임직원 수는 꾸준히 늘어 2008년 10만명(이하 연말 기준)을 첫 돌파했다. 이어 2014년 11만8703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은행 점포(지점ㆍ출장소) 수도 2001년 약 5000개에서 점점 늘어 2012년 7698개로 최대치를 기록했다.
덕수ㆍ선린상고 등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상고 출신 은행원 성공신화'도 펼쳐졌다. 은행원은 안정적 직업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면서 '신(神)의 직업'이라는 부러움과 '철밥통'이란 비아냥을 동시에 샀다. 외환위기라는 '값비싼 수업료'를 치렀지만 이를 발판삼아 직업적 황금기를 누린 셈이다.
◆'메기'의 등장…은행원 퇴출 위기=은행원이 '진정한 퇴출 위기'에 몰린 것은 불과 최근 몇년 새의 일이다. 국내은행 점포는 2013년부터 4년 연속으로 매해 평균 150여개(총 595개)씩 사라졌다. 은행들은 정기 희망퇴직을 단행, 매년 많게는 수천 명의 은행원이 짐을 쌌다. 은행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였던 점포와 은행원 수가 급격히 동반 감소한 것은 우리나라 금융 역사상 처음이다.
가장 큰 이유는 금융 산업의 급격한 '디지털화(化)'가 꼽힌다. 국내 첫 인터넷 전문은행 케이뱅크가 출범했고 이어 카카오뱅크도 본인가를 받아 이르면 올 상반기 영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그간 나름의 치열한 혈투를 벌여왔다지만, 역설적으로 '경쟁에 의한 균형'을 이뤘던 금융 시장에 마침내 '메기'가 등장한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일련의 변화들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아예 거대 패러다임 전환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다. 게다가 저출산에 따른 '인구 절벽'이 현실화되면서 나눠먹던 파이도 쪼그라들 판이다. 시중은행장들은 일제히 "미지(未知)의 세계가 닥쳤다"며 두려움을 드러내고 있다.
인터넷 전문은행이 과연 기존 오프라인 기반 대형 금융사의 존폐를 위협할 만큼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는 논외다. 다만 이 메기가 기존의 금융 산업에 균열을 일으켰고, 연못에서 안정적으로 헤엄치던 '살찐 청어'들에게 절박한 경계심을 줬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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