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이샤" 외침 사라진 명동거리
일각선 "비정상의 정상화" "관광 경쟁력 강화 기회" 평가도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다양한 제품, 할인행사 진행중에 있습니다. 들어오세요."
중국인들 사이에서 한국관광·쇼핑거리로 유명세를 치르던 서울 명동에 한국어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명동거리에 진입하는 순간 귀를 때리던 "칸이샤, 칸이샤(見一下, 한 번 보세요)" 외침은 자취를 감췄다. 밀려든 중국인관광객(요우커)을 맞이하기 위해 중국어로 다양한 마케팅 행사와 모객에 열을 올리던 모습과는 다른 분위기다. 이를 두고 그간 특정 국가 관광객에 지나치게 의존 하던 것이 제자리를 찾는 과정,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17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에 반발하는 중국 정부가 자국민의 한국 여행을 제한하고 나서면서 국내 유명 관광지에서 중국인들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서울 명동, 남산, 가로수길, 북촌 등 관광지는 이들이 사라지면서 상대적으로 한적해졌다.
문화재청이 지난 2일 중국 관광부처인 국가여유국이 금한령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이후 일주일(3월3일~3월9일) 간 경복궁 등의 4대궁과 종묘의 관람객수를 집계한 결과, 전체관람객수는 전년 동기대비 소폭(0.94%) 감소한 반면 중국인관광객은 27.69% 빠졌다. 특히 가장 관광객이 많이 찾는 경복궁의 감소폭은 35.98%에 달했다.
서울 명동의 한 노점상 운영자는 "중국인이 얼마나 빠졌는지는 자세히 판단하기 어렵지만, 전체적으로 명동 거리에 사람이 절반 이하로 확 줄었다"면서 "예전엔 서로 발에 치일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남산 인근의 한 돈까스집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점심을 전후로 중국인들이 몰려와서 근무하는 사람들 모두 정신없이 일했는데 이제는 이쪽(남산)에서 중국어가 잘 들리지도 않는다"면서 "예전에는 눈에 띄지도 않던 동남아시아나 중동 쪽 사람들이 가끔 보인다"고 말했다.
요우커 사이에서 '신성한 여행지'로 여겨지며 인기가 높던 제주도 역시 확연한 분위기 변화가 감지된다. 제주도관광협회에 따르면 이달 들어 지난 1~11일 제주를 찾은 중국인 등 외국인 관광객은 모두 5만1450명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32.3% 감소했다. 반면 이 기간 제주를 찾은 내국인 관광객은 31만4234명으로 오히려 15.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지금이 제주 여행 적기"라는 얘기도 나온다.
요우커 급감이 국내를 찾는 전체 관광 수요 감소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이를 관광 상품 고도화 및 건전한 시장문화 조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중국 관광객은 806만명으로 전체 방한 외국관광객 1724만명의 절반에 육박했다. 일반 노점상부터 로드샵, 유명 화장품 업체나 백화점, 면세점까지 앞다퉈 중국인 잡기에 혈안이 됐던 것도 이 '규모' 때문이다. 경쟁력있는 관광지 조성이나 이벤트 개발 보다는 중국인들의 취향에만 집중해 왔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당장 매출이나 이익이 급감할 수는 있지만 반대로 중국인들에게만 의존하는 비정상적인 구조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로도 볼 수 있다"면서 "현재 정부의 세밀하고 적확한 대응이나 정책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업계도 많은 고민을 하고있다"고 말했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거래선을 다변화 하게 된다면 그동안 중국인 인바운드 여행사에 거액의 수수료를 주며 끌려다니던 면세점들의 영업방식도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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