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여러 해 전의 일이다. 지방에서 열린 스포츠 경기를 취재하러 며칠 묵는 일정으로 출장을 갔다. 새벽에 목욕탕에 갔다가 기겁을 했다. 아무도 없는 열기욕실에 들어갔는데, 이윽고 거한(巨漢) 둘이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다. 목욕탕엔 그렇게 셋뿐. 나는 그들의 등을 울긋불긋 뒤덮은 문신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그들은 땀을 씻지 않고 냉탕에 들어가거나 바닥에 침을 뱉지 않았다. 탕 안에서 몰래 오줌을 누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들의 등을 보는 순간 얼른 목욕탕에서 나가고 싶었다. 목욕예절만 보면 틀림없이 신사인 그들을, 아니 그들의 등을 가득 메운 문신을 보고 나는 왜 그렇게 마음이 불편했을까?
몸에, 특히 등허리를 중심으로 문신을 잔뜩 한 사나이를 보면 대번에 '야쿠자'를 떠올린다. 영국의 탐사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사우스웰은 2006년에 <조폭연대기(The History of Organized Crime)>에서 야쿠자의 문신에 대해 설명한다. 지난 2008년 추미란의 번역으로 우리나라에도 출간된 책이다.
"문신은 야쿠자들에게 조직의 역사와 위업 그리고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창이다" "어떤 부분은 이력서 역할을 한다. 조직과 서열 뿐 아니라 그가 처단한 적들과 자신의 두목을 위해 해낸 행위들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경찰이 모은 증거자료보다 더 구체적으로 행적을 기록할 수 있다."
야쿠자의 등허리를 온갖 색으로 채우는 문신에도 분명 곡절은 있으리라. 통과의례일까. 사실 문신은 조폭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 역사도 유구하다. 1991년에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사이에 있는 알프스 산에서 고대의 사냥꾼이 냉동 미라로 발견됐다. 기원전 3300년쯤 죽었을 그의 몸에는 문신이 쉰여덟 개나 있다.
조현설은 <문신의 역사>에서 문신이 주술적 기능, 종족표지기능, 신분표지기능, 심미적 기능을 한다고 썼다. 그밖에 혈연을 확인하기 위해, 또는 서약의 뜻으로 문신을 한다면서, 이 가운데 서약을 위한 문신은 폭력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경계하였다. 그러나 야쿠자의 문신이 보호색 같은 것은 아닐까?
텐도 쇼코가 쓴 <야쿠자의 달(Yakuza Moon)>에도 문신 이야기가 나온다. 쇼코는 야쿠자 보스의 딸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랐다. 여섯 살 때 아버지가 감옥에 간 뒤 그의 삶은 엉망이 된다. 학교 친구들은 '야쿠자의 자식'라며 따돌렸고 선생들도 차별했다. 쇼코는 비뚤어진 아이가 되어 열다섯 살이 되자 징역을 선고받는가하면 어머니가 죽자 자살을 시도한다.
쇼코는 목에서 발끝까지 문신을 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야쿠자의 딸로 태어나 겪은 차별과 혼란과 비행의 기억으로부터 자신을 구출하고자 하는 의지와 힘을 문신에서 얻었다고 한다. 보통 야쿠자가 되기 위해 문신을 새기지만, 쇼코는 야쿠자와 관련된 모든 인연과 절연하기 위해 온몸을 바쳤다. 새 삶을 결정하던 날 밤 둥실 떠오른 밝은 달이 책의 제목이 되었다.
그녀의 등 한복판에 단도를 입에 문 에도 시대 게이샤의 얼굴이 보인다. 나는 코브라의 등을 떠올렸다. 검고 큰 눈을 부릅뜬 얼굴 같은. 코브라 등의 얼굴 무늬는 '나는 아주 강하고 무서우니 건드리지 말라'는 신호다. 속으로는 벌벌 떨고 있겠지만.
문화스포츠 부국장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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