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포지엄(symposium)은 그리스말 심포시온(symposion)을 옮긴 라틴어이다. '여럿이 모여 술을 마신다'는 심포시아(symposia)에서 왔으리라. 번역을 하면 향연(饗宴)이니 손님을 융숭하게 대접하는 잔치이다. 오늘날에는 공중토론(公衆討論)의 한 형식을 이른다. 생활이나 학술상의 중요한 문제를 공동의 장소에서 철저하게 토론하는 일이다.
플라톤이 쓴 '향연'은 심포지엄의 형식과 정신을 아울러 보여준다. 플라톤은 이 책에서 달콤하기 이를 데 없는 필치로 '에로스(Eros)', 곧 사랑에 대하여 말한다. "'사랑'은 '아름다움'에 대해 육체미를 초월한 정신미(精神美)로 향하는 심정이지만, 이윽고 이론미(理論美:眞)로 향하고, 마침내 행동미(行動美:善)를 지향한다."(두산백과)
소크라테스를 비롯해 일곱 사람이 사랑을 말한다. 가장 매력적인 대목은 아리스토파네스가 장식한다. "아주 오래 전 인간은 남녀 한몸이었다. 몸은 공 모양이고 둥근 기둥 같은 목에다 꼭 닮은 얼굴이 서로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이들이 신에게 반항하자 신은 그들을 반으로 잘라냈다. 그 후 인간은 잘려나간 자신의 반쪽을 평생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오호라, 그렇다면 사랑은 우리의 본성일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재미난 글을 읽었다. 제목은 '부부의 잠자는 모습이 알려준 사랑의 온도'이다. 아홉 가지 잠자는 모습이 그림으로 나온다. '외면형', '게 자세', '지붕 자세', '대화형', '할리우드형', '매듭형', '스푼 자세', '역 스푼 자세', '의지형'…. 이중 외면형과 의지형은 부부가 등을 진 자세다. 금세 구분하기 어렵다. 잘 보니 의지형은 등을 맞대고 있는데, 글쓴이는 이 자세를 매우 바람직하게 본다.
"등을 완전히 밀착한 상태로 수면에 빠진 부부만큼 이상적인 관계도 없다. 서로를 기댄 수면자세처럼 관계에서도 서로 많이 의지하고 있는 부부 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가장 큰 장점은 모든 면에서 적당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투고, 서운해 하고, 가끔은 상대의 잘못으로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많은 일들을 함께 겪었기에 서로에 대해 잘 알고 누구보다 이해할 수 있는 관계다."
당연한 일이다. 신이 인간을 세로로 동강내기 전의 모습과 가장 닮아 있으니. 자랄 때나 처녀 총각 시절에는 잘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어 배가 나오면 '몸은 공 모양'이었다는 말이 무슨 뜻인 줄을 알게 되리라. 그러나 먼저 알아야 할 일이 있다. 시인 정호승이 가르쳐준다. "사랑은 잃어버린 반쪽을 찾는 일뿐만이 아니라 마음이 하나가 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반쪽 사랑이 어느 날 자기 반쪽을 찾아가 문을 두드린다. "누구세요?" "나야 나!" 반쪽은 대꾸도 없고, 문은 열리지 않는다. 다음날 또 찾아가 문을 두드린다. "나야 나, 나라니까!" 이번에도 대답 없다. 반쪽 사랑은 고민한다. 며칠 뒤 다시 찾아가 문을 두드린다. "너야 너. 네가 왔어!" 마침내 문이 스르르 열린다.' … 동화작가 정채봉이 '생각하는 동화-향기자국'에 담은 이야기다.
외워 두자. 사랑은 '나'가 아니라 '너'다.
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huhba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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