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오후 한詩]추상화/장석원

시계아이콘00분 44초 소요

 
직육면체
기관차는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탈것도 아니다
그것의 본질 스스로
전진하는 직육면체의 충돌과 파편


(중략)

지하철이 나를 싣고 간다
결코 도착할 수 없는 곳이 있다
그리움이 남아 있다
나는 살아 있는 것이다
숨이 붙어 있다면
내가 사랑을 잊지 않았다면
조금 더 견뎌야 한다면
나의 사랑은 기관차일까


실패가 고통이었을까
나는 왜 묻혔는가
아픈 사람들이 나를 가르친다 잡아끈다
이루어질 것이 아직 남아 있다고 한다
사랑은 아직 실패하지 않았다
기관차는 세계를 옮기고 있다

쇠 냄새
그것은 분노의 냄새


[오후 한詩]추상화/장석원
AD

오늘은 하루 종일 눈이 내린다, 형. 내리는 눈을 바라보고 있으니까 자꾸만 그리워져, 무엇이 이렇게도 그리운지는 도무지 모르겠는데 그저 그리워만져서 내내 창밖만 바라보고 있어, 형. 형 말처럼 우리는 지금도 "결코 도착할 수 없는 곳"을 그리워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 그런데 형, 이 그리움의 정체는 대체 뭘까, 아니 그보다 우리는 정녕 실패했던 걸까, 우리는 이제 다만 고통스러워해도 되는 걸까. 그건 아닐 거야, 형. 난 믿어. "사랑은 아직 실패하지 않았다"는 형의 말을 말이야. 사랑은 "결코 도착할 수 없는 곳"처럼 다시 시작되고 또다시 시작되고 있으니까. 그래, 형 말이 맞아. 우리는 기어코 다시 시작되려는 사랑을 그리워해야 하고 마침내 가동되기 시작한 사랑을 또한 다시 배워야 해. 형이 적어 두었듯 저기 "아픈 사람들이" "세계를 옮기고 있"잖아. 저 "쇠 냄새", 저 "분노의 냄새"가 아직 이루지 못한 사랑을 작동시킬 거야, 형. 그러니까 우리는, 아직, 아직 더 구체적으로 그리워해야 해, 형.


채상우 시인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