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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詩]초두부 한 그릇/맹문재

시계아이콘00분 37초 소요

마구간의 소도 처마 밑의 개도 마루 위의 고양이도 닭장의 닭들도 한 그릇


뒤란의 장독도 지게도 벌통도 멍석도 시래기도 한 그릇

논의 올벼도 도랑물도 밭가의 복숭아나무 밤나무 호두나무도 밭고랑도 한 그릇


앞산의 그림자도 나무들도 산새들도 산짐승들도 산길도 산바람도 한 그릇

할아버지도 아버지 어머니 작은아버지도 이웃집 어른들도 아이들도 한 그릇


저녁을 맞는 초가지붕도 봉당의 신발들도 맷돌도 화롯불도 한 그릇


눈발을 바라보며 객지의 자식들을 걱정하는 할머니도 한 그릇


■햇살은 쨍하지만 코끝이 아릴 정도로 추운 겨울이면 강릉에서 먹었던 초두부 생각이 문득 나곤 한다. 고소하고 부드럽고 몽글몽글한 초두부 한 그릇씩을 훌훌 불어 가며 함께 나누어 먹던 십여 년 저편의 그 얼굴들이 여전히 생생하다. 음식은 그런 것이다. 음식은 다만 맛으로만 먹는 게 아니다. 일단 눈으로 보고 냄새도 맡고 손안 가득 그 따뜻한 온기도 느껴 보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수저 소리도 듣고 그러면서 먹는 게 음식이다. 그리고 음식은 입안 가득 서로의 웃음소리를 품고 먹는 것이다. 다정하게 찬그릇을 서로의 앞으로 옮겨 주는 손길과 가만히 곁에서 물그릇에 찬물을 따르는 마음 씀씀이가 비워 가며 채우는 음식의 길이다. 이렇게 추운 겨울이면 그런 음식이 참 그립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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