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영주 기자] 대통령 권한대행인 황교안 국무총리가 보수진영 대선주자로서 몸값이 치솟고 있다. 특히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불출마 선언 이후 사실상 보수진영에서 내세울 카드가 제한적이어서 당분간 황 권한대행에 대한 새누리당의 러브콜은 이어질 전망이다. 이를 의식한 야권은 매일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황 권한대행은 지금 단계에서 대선 출마여부를 밝히지 않은 채 국정 주도권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일 것으로 보여 당분간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연일 대권주자급 광폭행보= 황 권한대행은 연일 대권주자급 행보를 보이고 있다. 3일 오전 황 권한대행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사회적 약자 보호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최근 사회 곳곳에서 불거진 부당처우 행태에 대해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악용해 사회적·경제적 약자에 대해 부당한 행위를 하는 소위 '갑질'은 우리 경제·사회 전반에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이므로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고 말했다.
황 권한대행은 "정부는 사회적·경제적 약자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그동안 각 부처에서 추진해온 대책들을 점검하고, 범부처적으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 추진해 나가고자 한다"며 "우리 사회에 잔재해 있는 부당처우를 근절하기 위해 철저한 점검과 단속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회의를 마친 직후 국회에 출석해 정우택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청취했다. 이날 오후에는 서울청사에서 파넬로 필리핀 대통령 법무수석을 접견했다. 필리핀 법무수석은 최근 필리핀 경찰이 가담한 한국인 사업가 살해 사건에 대해 사과의 뜻을 전하기 위해 방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서울청사 접견실에서 대외직명 대사를 접견했다. 황 권한대행은 이 자리에서 5명의 대외직명 대사들이 국내 기업의 해외진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해달라고 당부했다.
지난 2일에도 5개의 일정을 소화하는 광폭행보를 보였다. 당일 오전 8시30분 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 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해 "안전조치를 소홀히 하는 등 원청이 사고 원인을 제공한 경우에는 그 책임을 확실히 물어서 엄중하게 조치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음으로 국회에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청취했고, 이날 오후에는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 제4기 위원 14명과 오찬을 했다. 경기도 안산 반월 시화 산업단지 위치한 스마트공장 사업 현장을 찾았다.
황 권한대행은 어떤 분야에서 승리하는 기업은 1등 기업 또는 가장 먼저 개척한 기업이 아니라 작지만 절실함과 열정으로 승부한 후발업체라는 '약자의 역설(The underdog advantage)'을 강조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지금은 다른 대선 주자를 뒤따라가는 상황이지만, 뒤늦게라도 대선 출마를 결심하게 된다면 언제든 치고 올라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담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황 권한대행은 그 뒤 한국을 방문한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접견한 자리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해 양국의 공조를 강화하고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한미 동맹을 발전시키는 방안을 논의했다.
총리실은 황 권한대행의 광폭행보에 대해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국회 일정과 민생행보, 외교안보 챙기기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치솟는 黃 지지율에 野 촉각= 한국갤럽이 지난 1∼2일 전국 성인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신뢰도 95%, 표본오차 ±3.1%포인트)에 따르면, 황 권한대행은 9%의 선호도로 3위를 기록했다. 한 달 전에 3%였던데 비해 6%나 올랐다. 선호도 1위는 32%를 얻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다. 2위는 안희정 충남지사(10%)였고,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은 각각 7%의 지지율을 보였다.
황 권한대행의 지지율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자, 새누리당에서는 황 권한대행에 잇따라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인명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3일 "황 권한대행도 (대선을 출마해야 할지) 모를 것"이라며 "황 권한대행은 누가 나오라는 것도, 본인이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국민이 지금 얘기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친박계 핵심 인사인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은 같은 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아직 출마 여부에 대해 말씀을 안 했음에도 불구하고 저 정도의 지지가 나온다는 것은 보수의 단일후보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국민이 암시해주고 있는 것"이라며 "황 권한대행이 출마선언만 하면 제가 보기에는 (지지율이) 최소한 두 배 이상 나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야권에서는 비판의 날을 더 세우고 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새누리당이 말한 깜짝 놀랄만한 후보가 고작 황 권한대행이라면 국민은 대단히 분노할 것"이라며 "탄핵당한 정권의 2인자 황 권한대행은 국정안정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그 자리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하며, 자중하는 게 마땅하다"고 밝혔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YTN 라디오에 나와 "정치는 자유니까 본인이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는데, 지금은 과도기적으로 나라를 책임지는 최고의 위치에 있지 않느냐"며 "대통령 후보감이라는 칭찬을 즐기면서 나라를 지탱하는 관리자 역할을 하는 게 어울린다"고 선을 그었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황 권한대행이 2월 임시국회 대정부질문에 불출석하겠다는 입장에 대해 "왜 지난달에 한 것을 이번 달엔 못 하겠다고 하는가. 진짜 대통령이 된 건가"라며 "산적한 문제를 국민 앞에 나와 설명하고 국민을 안정시키는 게 황 권한대행의 임무로, 반드시 국회에 출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승용 원내대표는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왜 나흘이나 나오느냐. 최근 전통시장도 가고 각종 행사장 다녀온 건 국민이 다 아는 사실"이라며 "대선에 출마하고 싶다면 하루 빨리 권한대행에서 물러나라"고 비판했다.
황 권한대행은 당분간 대선 출마 여부를 밝히지 않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한 측근은 "현재 맡은 위치에 최선을 다한다는 원칙적 입장 외에는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탄핵 국면이 마무리 될 때까지는 대선 출마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조영주 기자 yjcho@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