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벚꽃대선이 점쳐지고 있는 가운데 유력 대선주자들이 잇달아 세계 최장 수준인 우리나라의 근로시간을 단축시키는 내용의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관련 법안은 국회에서 8개월 이상 표류하며 외면당하고 있다.
대선주자로 꼽히는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1일 근로자들의 정시 퇴근을 보장하고 야근, 돌발노동 등을 제한하는 내용의 정책 공약을 공개했다. 앞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일자리 창출방안 가운데 하나로 근로시간 단축을 내세웠고,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 역시 주 52시간 이상 초과근로를 법으로 금지해 33만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선주자들이 관련 공약을 쏟아내는 것은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일ㆍ가정 양립문화를 정착시키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앞서 지난 25년 간 두 차례에 걸친 법정 근로시간 단축은 실제 고용 등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주 4시간 단축 및 주5일제 근무 도입을 통해 실 근로시간은 1∼4시간 줄었고, 고용은 1∼5% 증가했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최대 15만개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연간 근로시간이 2000시간이 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멕시코와 그리스뿐이라는 점에서 장시간 노동문화를 뿌리 뽑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따르면 3명 중 1명꼴인 663만명이 주5일(40시간) 근무제를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또 주 52시간을 초과해 근무하는 장시간 근로자도 345만명(17.9%)으로 집계됐다.
문제는 이 같은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국회의 논의가 더디다는 점이다. 여야 4당 원내대표는 1일 근로기준법을 포함한 노동3법에 대해 전향적으로 검토하기로 합의했으나, 갈 길은 멀다.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법정 근로시간인 주당 40시간에 더해 12시간의 연장근로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여야가 이견을 보이는 8시간의 특별연장근로 인정 여부 외에도 휴일근로수당 가산비율, 단축 폭 등 추가쟁점이 산적하다. 공약만 쏟아지고 법안은 표류 중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일각에서는 근로시간 단축이 기업의 인건비 상승부담 등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포퓰리즘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측은 "무작정 단축시키는 게 아니라 성과와 연동해 단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며 "기업이 신규채용 대신 생산시설 이전 등의 선택을 하게 되면 고용 등의 효과도 없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김유선 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노동시간 단축은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물론 여가생활 증대로 내수를 진작시키고, 저성장 시대 일자리를 늘릴 방안"이라며 "정부는 실현 가능한 정책수단을 구체화하고, 이를 강력하게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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