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쉬지 못하는 소방관, 지하철기관사, 취업준비생들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금보령 기자, 김민영 기자, 이민우 기자]백조의 우아한 자태의 비결은 수면 아래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발 때문이다. 사람들이 설 연휴를 즐길 수 있는 것은 부지런히 일을 하면서 사회시스템을 유지하는 이들 덕이다. 명절이 더 바쁜 사람들이다. 사상 최악의 취업대란을 극복하려는 취업준비생들도 명절을 즐기지 못하는 이들 중 하나다.
"소방관 일 한지 10년 째. 명절, 연휴가 따로 있다고 생각해본 적 없다."
올해로 10년차 소방관 박 모씨는 1년 내내 21일 주기의 3조 2교대 체제로 일한다. 명절은 물론 주말도 따로 없게 된 지 오래다. 박씨와 동료들에게 명절 귀성은 어쩌다 휴식 일정에 명절이 겹치는 행운을 갖게 됐을 경우에나 가능한 일이다. 박씨도 고향에 홀로 계신 어머니 때문에 아침9시에 퇴근해서 바로 내려갔다가 잠깐 뵙고 서울로 올라오는 게 고작이다.
많은 사람들이 집을 많이 비우는 명절 연휴 기간에도 소방관들은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다. 박씨는 "명절에는 사람들이 집을 비우는 경우가 많아 화재는 덜 발생하지만 건물 안에 사람이 없어서 통제가 안 되기 때문에 일단 화재가 발생하면 크게 나는 경우 많다"고 말했다. 화재가 덜하다고 해서 할 일이 주는 것은 아니다. 구급 출동은 언제나 빈번하다. 박 씨는 "연휴에는 화재보단 구급 출동이 많고, 특히 연휴 마지막 날이 많다"며 "사람들이 긴장을 풀고 마음껏 먹고 마시며 쉬다가 음주 사고 등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박씨를 비롯한 소방관들은 부족한 인력을 늘리는 것이 소원이다. 박씨는 "소방관은 지방직이다보니 서울시에 소속돼 인력 충원이 자유롭지 못하다"며 "국가직인 경찰은 인력이 한결 여유 있어 4조 3교대나 2교대 근무로 돌아가는데 무척 부럽다"고 말했다.
마냥 힘이 날 것 같은 사람들의 격려도 의외로 박씨의 어깨를 처지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박씨는 "나름 치열한 경쟁 뚫고 도전했고, 자부심을 갖고 하는 일이다"라며 "'힘든 일 한다', '너무 고생한다' 등 시민들의 말씀이 격려의 의미란 것은 알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동정의 정서를 볼 때마다 '내가 그렇게 불쌍한 일을 하는가' 싶기도 하고. 씁쓸한 면이 분명 있다"고 말했다.
서울메트로 소속으로 3호선을 운행하는 정노윤 기관사(49)에게도 명절은 남의 일이다. 설 연휴에도 시민들의 발이 되는 지하철은 평소대로 운행한다. 그 지하철을 운전하는 기관사도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날을 보낸다. 정 기관사도 이번 설 연휴 동안 근무조에 편성됐다. 1994년도에 입사한 그에게 '쉴 수 없는 명절'은 당연한 일이 됐다. 그는 "입사한 뒤로 명절에 고향을 갔던 경우보다 못 갔던 경우가 더 많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물론 그렇다고 쉬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 설 연휴에 일해야 한다는 사실을 접했을 때 정 기관사는 "솔직히 쉬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내가 일하면 동료가 고향에 내려갈 수 있으니 이를 위안 삼아 즐겁게 일하려고 한다"고 얘기했다.
정 기관사가 일하는 곳에서는 명절 때마다 휴가자를 선정하기 위해 '제비뽑기'를 실시한다. 몇 년에 한 번이라도 번갈아 가면서 명절에 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다만 직전 명절에 휴가를 다녀왔을 경우엔 무조건 근무조에 들어가야 한다.
설이나 추석 등 명절에 일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안전'이다. 지난해 서울메트로 최우수기관사로 선정된 그이지만 혹여나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까 더 조심스럽다. 정 기관사는 "명절에는 가족을 태우고 근무한다는 마음으로 일한다. 안전한 운행이 될 수 있도록 평소보다 조금 더 노력하고 있다"며 "승강장 안전문이나 출입문 끼임 사고 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 번 더 살펴보게 된다"고 설명했다.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운행을 마친 뒤 아이들과 즐겁게 걸어가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면 정 기관사의 기분도 괜히 좋아진다. 거창하진 않아도 명절에 일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경우다. 정 기관사는 "지난 명절에 대여섯 살 정도 돼 보이는 꼬마가 운전실 문을 두드리더니 초콜릿을 주고 갔다"며 "명절에 수고한다면서 고맙다고 말해주는 시민들이 가끔 계신데 그럴 때도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명절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의 대열에는 취업 준비생들도 뺄 수가 없다. 올해 대학교 4학년인 김모(24)씨는 이번 설 명절에 고향에 가지 않고 자취방에 남아 취업 준비에 매진하기로 했다. 이번 방학이 취업 스펙을 쌓는데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해서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중인 김씨는 토익부터 제2외국어인 중국어, 한국사자격증까지 해야 할 공부가 산더미다.
그는 "고향에 내려가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올해 설과 추석 때 서울에서 보내려고 한다"며 "지난주에 봤던 한국사자격증 시험에서 떨어져서 다음 시험에 다시 응시해야 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설 당일인 28일과 다음 날인 29일에 편의점에서 일하고, 대체휴무일인 오는 30일에는 스터디원들과 만나 중국어 공부를 할 예정이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금보령 기자 gold@asiae.co.kr
김민영 기자 mykim@asiae.co.kr
이민우 기자 letzwi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