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북촌방향] 당신은 밥 딜런을 모른다

시계아이콘03분 02초 소요
언어변환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포크음악의 대부? 인권·반전의 상징? 몇개 단어로 규정할 수 없는 인물

[북촌방향] 당신은 밥 딜런을 모른다 1978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공연하고 있는 밥 딜런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어)
AD


[아시아경제 임훈구 종합편집부장] 포크음악의 대부, 인권과 반전의 상징, 대중음악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이쯤 되면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란한 수사는 그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포크와 록에는 훌륭한 음악가들이 차고 넘치며, 음악으로 사회에 저항한 뮤지션들 역시 셀 수 없이 많다. 포크와 록을 결합해서 위대하다고? 물론 맞는 말이지만 기존의 장르를 뒤섞어 새로운 장르를 만든 사례는 음악을 비롯한 모든 예술에서 발견되는 현상이다.

밥 딜런. 그를 몇 개의 단어로 규정하는 것은 그를 잘 모른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의 초기 음악을 포크로 정의 내렸을 때 딜런은 록을 끌어들여 변신했다. 이후에는 컨트리 음악과 복음성가로 끊임없이 변화했다. 저항의 음유시인으로 정의하면 그는 태연하게 사랑타령을 부른다.


이렇게 그를 일정한 카테고리 안에서 정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딜런 자신도 그 어떤 무엇인가에 규정되는 것을, 그래서 그 무엇인가에 속박 당하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다. 그는 자신을 향한 세상의 모든 찬사에도 늘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불친절하게 노래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음악인을 위대하게 만들었을까. 록음악 평론가 제임스 오도넬은 “가사가 난해하여 의미를 정확히 꿰뚫기 어렵지만 딜런의 가사만큼 신의 칼날처럼 듣는 이의 마음을 관통하는 예는 일찍이 없었다”고 말했다.

딜런은 음악으로 시를 쓴다. 그는 풍부한 상징과 비유를 통해 잘 짜여진 내러티브라는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음악 속에서 끊임없이 언어를 실험했다. 저항과 서정 사이를 무심하게 오가는 그의 스타일은 탈주하듯 팬들의 예상을 깨뜨렸다. (토드 헤인스 감독의 밥 딜런 전기 영화 ‘아임 낫 데어' (I'm Not There)는 매우 현명한 제목이다.)


후배 뮤지션들은 경쟁하듯 자신은 딜런의 후예라며 기꺼이 존경을 바친다. 비틀스도 딜런을 만나기 전까지는 재능이 풍부한 아이돌에 가까웠다. 비틀스는 딜런과의 정신적 교류를 통해 놀라운 음악적 성숙을 경험했다. 음악과 문학의 경계를 허무는(또는 새로 구축하는) 그의 노랫말은 이렇게 대중음악의 수준을 높은 곳으로 끌어올렸다. 언어를 음악의 중심에 놓고 음악의 정신의 문제에 다가간 첫 번째 사례이며 이로 인해 20세기 대중음악은 정신적 혁명을 맞이했다.


가장 잘 알려진 그의 노래 중 ‘구르는 돌처럼’(Like a Rolling Stone)의 가사부터 살펴보자.


옛날 옛날에 넌 정말 멋지게 차려입었지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에 넌 부랑자들에게 10센트 동전을 던져줬어, 안 그래?
사람들은 너를 불러 말했지. “조심해 예쁜 아가씨, 그러다 큰 코 다쳐”
넌 그들 모두가 그저 농담하는 줄 알았지
넌 빈둥거리며 돌아다니는 모두를 비웃곤했지
이제 넌 그렇게 큰 소리로 떠들지 않고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지도 않네
다음 끼니를 해결하려면 구걸을 하고 다녀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야
기분이 어때
집 없이 사는 기분이?
완전히 무명인처럼
구르는 돌처럼
(후략)

이 노래에서 딜런은 한때 대저택에서 살던 신분에서 부랑자로 전락한 여성에게 노숙자로 사는 게 어떠냐고 묻는다. 부랑자가 되기 전의 상황을 언급하며 지금은 당신이 멸시하던 바로 그 상황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 노래의 주된 정서는 신랄한 조롱이다.(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말을 떠올리면 정말 곤란하다) 이 가사를 시로 읽을 때보다 노래로 들으면 조롱과 경멸을 넘어 저주로 까지 들린다.


[북촌방향] 당신은 밥 딜런을 모른다 밥 딜런이 2010년 2월 백악관에서 열린 아프리카계 미국인 민권 운동 기념식 공연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 위키피디어)


딜런의 음악이 처음부터 정치적 성향이 강했던 것은 아니다. 데뷔 앨범에서 온전히 자신의 능력으로 작곡한 곡은 2곡 밖에 되지 않는다. 음악적 스승 우디 거스리에게 헌정하는 곡을 통해 자신의 뿌리가 포크라는 사실을 알렸을 뿐 잠재력 있는 음악가의 데뷔작 정도로 보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2집‘자유로운 밥 딜런’(The Freewheelin' Bob Dylan)을 발표하면서 단숨에 대중음악의 정점에 올라섰다.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선언서와도 같은 이 앨범에는‘불어오는 바람 속에’(Blowin' in the Wind) '전쟁의 귀재들'(Masters of War) '세찬 비가 쏟아질 거예요'(A Hard Rain's A-Gonna Fall) '두번 생각하지 마, 괜찮아’(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등 명곡이 가득하다.


‘전쟁의 명수들’(Masters of War)은 평화를 파괴하는 존재에 대한 분노가 직접적으로 표출된 곡이다. 한때 연인이었으며 딜런의 노래를 가장 많이 부를 존 바에즈는 가사가 너무 끔찍하다며 공연에서 이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오라, 너희 전쟁의 귀재들이여
모든 총을 만든 너희들
모든 죽음의 비행기를 만든 너희들
모든 커다란 폭탄을 만든 너희들
벽 뒤에 숨은 너희들
(중략)
너희는 아무것도 한 게 없지
파괴의 도구를 만드는 일 말고는
마치 너희의 작은 장난감인양 내 손에 총을 쥐여줘
(중략)
젊은이들의 피가 그들 몸밖으로 흘러나와 진흙 속으로 파묻힐 때
너희는 물러서서 구경하지
사망자 수가 치솟을 때
너희는 대저택 안에 숨어 있지
(중략)
나는 너희가 죽기를 바라지
너희 관을 따라갈거야
그 창백한 오후에
너희를 지켜볼거야 그리고 그 무덤 위에 설 거야
너희가 죽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이 노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패권을 차지한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괴물처럼 변해가는 배후에 군산복합체가 존재하고 있음을 꿰뚫어보고 있다. 파괴는 정당화 되고 정치적 지배와 거대한 이윤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고 딜런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단 두 곡만으로 딜런의 세계를 전부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의 음악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입구이자 나오는 문은 음악으로 쓴 현대시,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사라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이다. 딜런의 노래를 음악으로만 듣던 국내 팬들에게 이 책 ‘밥 딜런 시가 된 노래들 1961-2012’은 큰 선물이다.


데뷔 앨범 ‘밥 딜런’(Bob Dylan)(1962)부터 ‘폭풍우’(Tempest)(2012)까지 31개 정규 앨범 288곡과 부틀렉 등 비정규 앨범 99곡을 포함해 모두 387곡의 노랫말을 꼼꼼하게 번역해 원문과 함께 실었다. 가사집이자 시집인 이 책은 밥 딜런이라는 거대한 영혼의 탑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될 것이다. (서대경·황유원의 리듬감 넘치는 번역은 큰 선물이다. 이들의 직업은 시인이다.)


외국어에 어지간히 능통하지 않고는 영미권의 음악을 듣고 그 뜻을 알아듣는 것은 매우 어렵다. 특히 딜런처럼 난해한 가사를 웅얼거리는 듯 음의 고저 없이 불친절하게 노래하면 알아듣기 더욱 힘들어 진다. 그러나 가사를 모르며 딜런의 음악을 듣는 것은 의미가 없다. 미로와도 같은 딜런의 음악에서 길을 잃을 때 이 책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북촌방향] 당신은 밥 딜런을 모른다 밥 딜런 시가 된 노래들 1961-2012 (출판사 = 문학동네)






임훈구 종합편집부장 stoo44@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607:30
    한국인 참전자 사망 확인된 '국제의용군'…어떤 조직일까
    한국인 참전자 사망 확인된 '국제의용군'…어떤 조직일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이현우 기자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했다가 사망한 한국인의 장례식이 최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열린 가운데, 우리 정부도 해당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매체 등에서 우크라이나 측 국제의용군에 참여한 한국인이 존재하고 사망자도 발생했다는 보도가 그간 이어져 왔지만, 정부가 이를 공식적으로 확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2.0309:48
    조응천 "국힘 이해 안 가, 민주당 분화 중"
    조응천 "국힘 이해 안 가, 민주당 분화 중"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조응천 전 국회의원(12월 1일) 소종섭 : 오늘은 조응천 전 국회의원 모시고 여러 가지 이슈에 대해서 솔직 토크 진행하겠습니다. 조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조응천 : 지금 기득권 양당들이 매일매일 벌이는 저 기행들을 보면 무척 힘들어요. 지켜보는 것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