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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피아노와 조율사…굴드의 연주를 완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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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피아노와 조율사…굴드의 연주를 완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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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듯 악보만을 보고 음악의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한 사람이라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전공자도 아닌 일반 청중이 음악을 통해 감동을 받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연주자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음악이 문학이나 회화와 본질적으로 다른 까닭이다. 작곡가가 창조한 음악을 재현함으로써 연주자는 작곡자에 이어 하나의 독립된 예술가로 인정받는다. 해석이라는 과정을 통한 또 하나의 창조자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마주치는 피할 수 없는 논쟁. 클래식 음악에서 아주 오래된, 아직도 끝나지 않은, 혹은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논쟁이 있다. 클래식 음악의 해석 문제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휘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아르투로 토스카니니(1867~1957)는 작곡가의 악보를 충실하게 재현하는 것을 연주의 가장 큰 미덕으로 생각했다. 연주의 주관성과 낭만성보다는 절대적 권위의 오케스트라 통제력을 바탕으로 연주 능력을 키워 악보의 한 음 한 음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높은 수준의 연주를 선보였다. 그에게 있어 주관적 해석이란 작곡가의 존엄을 해치는 일이었다.


토스카니니의 반대 지점에 또 한 명의 위대한 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1886~1954)가 있다. 그는 지휘자가 악보를 통해 느낀 작곡가의 뜻을 청중들에게 전달하여 감동을 일으킬 때 이상적인 연주가 된다고 생각했다. 조각 작품과도 같은 음의 외형도 중요하지만 작곡가가 느낀 감정을 재현하고 이를 전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어제와 같은 연주를 오늘 또 들으러 오는 청중은 없다"는 말에서 그의 연주관을 알 수 있다.

전자의 객관성이 예술의 내실을 견고하게 만들고 후자의 주관성이 예술의 외연을 확장하면서 음악의 역사를 풍요하게 만들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피아니스트인 케이티 해프너가 쓴 '굴드의 피아노'는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1932~1982)의 생애를 조명하면서 그가 왜 일반적인 형태의 연주를 거부하고 극단의 스타일까지 밀고 나갔는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굴렌 굴드는 연주 인생을 시작하면서부터 개인적인 신조를 강력하게 고수했다. 어떤 음악에 관해서 새로 할 말이 없으면 연주하지 마라. 하물며 레코딩은 말할 것도 없다. 베토벤 '황제' 협주곡의 훌륭한 레코딩이 스무 개 있다면 새로 제시할 흥미로운 해석도 없으면서 왜 구태여 스물한 번째 해석을 하려 하는가."


굴드가 천재 피아니스트라는 사실에는 누구나 동의하지만 누구나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는 아니다. 전복적 악보의 해석은 보수적인 애호가들에게는 감상이 아닌 구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연주에의 과도한 몰입과 기벽이 더욱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그는 여름에도 두꺼운 외투를 입고 목장갑을 끼고 다녔으며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난쟁이 의자에 앉아 콧노래인지 허밍인지 분간이 안 되는 소리를 내며 지휘하듯 팔을 움직이면서 가장 나쁜 자세로 연주했다).


이 책 '굴드의 피아노'는 굴드가 사랑한 스타인웨이 CD 318 그랜드피아노(C는 스타인웨이 콘서트 아티스트들을 위해 마련한 특별한 피아노라는 뜻이며, D는 스타인웨이 피아노 가운데 가장 크다는 뜻이다)와 시각장애인 조율사 베른 에드퀴스트의 삶을 다룬다. 책의 첫 장은 굴드의 일대기를, 두 번째 장에서는 에드퀴스트의 삶을 이야기하고 세 번째 장에서는 피아노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셋의 '삼각관계'가 이 책의 뼈대가 된다.


태어날 때부터 거의 앞을 보지 못했던 조율사 에드퀴스트는 눈 대신 놀라운 귀를 가지고 있었다. 추운 겨울 미루나무가 얼어서 금이 가는 소리. 썰매가 눈 밭에서 미끄러지는 소리. 멀리서 울부짖는 코요테의 울음 소리가 그의 귀를 조율했다. 그는 소리로 세상을 보았다. 너무나 괴팍하고 결벽적인 성격의 피아니스트와 그의 연인과도 같았던 피아노 그리고 그 둘을 영혼의 파트너로 중매한 조율사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이야깃거리로 널리 알려진 굴드의 기벽이 어찌 보면 필연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굴드를 이야기하면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굴드는 1955년 뉴욕의 컬럼비아 스튜디오에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처음 녹음했다. 컬럼비아사에서 제공한 많은 피아노를 모두 물리치고 캐나다 토론토에서 가져온 피아노로 30번의 녹음을 감행했다. 녹음 기사들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미묘한 차이 때문에 30번의 녹음을 모두 버리고 그는 기어이 31번째 녹음으로 미국에서 레코딩 데뷔했다. 그의 연주는 충격이었다. 이전까지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일부 스페셜리스트들 외에는 거의 연주하지 않는 곡이었으며 연주도 선율 중심의 느리고 장중한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청년 굴드는 자신만의 해석을 믿고 처음부터 끝까지 무서운 속도로 질주했다. 굴드는 장중한 선율보다 대위법의 묘미로 이 곡을 해석했다(일부 애호가들 사이에서 굴드의 연주를 들으면 바흐는 사라지고 굴드만 남는다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연주와 뚜렷하게 구별되는 '굴드 스타일'은 보편적 객관성이 예술적 주관성에 희생됐다는 비난을 기꺼이 감수하게 한다.


굴드는 공연장을 싫어했다. 대인기피증이 심한 데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오롯이 연주에 집중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스튜디오로 스스로를 유배시켰다. 세상과 격리된 공간에서 완벽한 연주를 꿈꾸며 녹음을 계속했다. 그의 연인 CD 318이 항상 함께한 것은 물론이다. 굴드는 그러나 불의의 사고로 CD 318 잃게 된다. 연주 여행을 위해 이송하던 도중 피아노를 떨어뜨리고 만 것이다. 굴드는 "애도해 마지않는 故 CD 318"이라고 부르며 광적으로 진상 규명과 치료에 매달렸으나 허사였다. 행복했던 삼각관계도 끝이 났다. 굴드는 생의 의미를 잃은 것일까. 얼마 뒤 에드퀴스트는 굴드의 부고를 듣게 된다.


책을 덮고 1981년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최후의 녹음을 다시 들어본다. '굴드'베르크 변주곡이라는 애칭이 붙을 정도로 굴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연주한다. 말년의 삶이 투영된 그의 연주는 아름답고 집요하며 내밀하다. 1955년 그의 첫 녹음 때 연주시간은 38분33초에 불과(변주가 끝나고 계속되는 반복구 일체를 생략했기 때문이다)했으나 장년의 굴드가 연주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51분19초. 첫 녹음 때 생략한 반복구를 악보 그대로 모두 살려서 연주했다.


이 책의 부제는 'A Romance on Three Legs' 다리 세 개 위의 로맨스이다. 세개의 피아노 다리는 마치 굴드와 피아노 그리고 조율사 에드퀴스트를 상징 하는 듯하다.




임훈구 기자 keygri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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