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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바꿔봐요]아날로그와 디지털, 보수와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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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외길 건설엔지니어' 이순병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의 주문


[이젠 바꿔봐요]아날로그와 디지털, 보수와 진보 이순병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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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와 디지털= 한때는 전자앰프에서 나는 소리가 진공관앰프보다 못하다느니, 디지털카메라 영상은 필름카메라 같은 맛이 없다느니 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보통 사람들의 인식수준에서는 구별이 잘 안 될 만큼 디지털기술이 발달했습니다.

가장 최근의 화두는 4차 산업혁명입니다. 저는 1차 산업혁명은 기계공학, 2차는 전기공학, 3차는 전자공학, 그리고 4차는 공학의 조합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응용수학과를,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철학과를 중퇴하였고, 알리바바의 마윈은 사범대학을 나와서 영어교사를 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공학사 학위가 없고, 기술의 조합으로 큰돈을 벌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기술은 과학을 바탕으로 생겨나서 제품화되어 경제를 발전시키고 사회적 변화를 거쳐 문화로 정착되는 단계를 밟습니다. 일반인들은 주판이 컴퓨터로 대체되고, 연필이 키보드로 바뀌는 실생활의 편리함으로부터 사회의 변화를 인식할 겁니다. 한 때는 암산(暗算) 9단의 여상 출신들이나, 글씨를 잘 쓰는 필경사(筆耕士)들이 돈을 잘 벌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지식노동자들의 수난시대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법률전문가, 의사처럼 지금은 고소득을 올리는 전문가들도 직업을 잃게 된다는 주장입니다. 미래의 일이라 조금 막연하게 들리겠지만, 암산의 고수나 필경사라는 직업이 없어졌다는 과거를 돌아보면 섬뜩하게 실감이 날 겁니다. 우리 여의도는 ‘혁명적 산업 변화’에 잘 대응하고 있나요?


‘아날로그 정치’, 지금의 정치문화를 바꿔야 할 첫번째 이유입니다.

◆SNS와 탈진실(Post-truth)= 2001년 시작된 위키피디아는 현재 300개 언어에 3600만페이지에 달하는 콘텐츠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ICT와 관련된 제품의 하드웨어 가격이, 웬만한 소득이 있으면 구매할 수 있는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SNS의 범용화는 지식의 상향적 평준화를 가져왔습니다. 퍼나르기, 댓글달기가 일상화되면서 연령, 지역, 학력에 관계없이 누구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원하는 주제에 대하여 실시간으로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고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사회현상입니다. 옛날 중국에는 왕이 누군지 모르는 정치가 좋은 정치라는 철학도 있었습니다. 2500년 전 노자는 ‘백성이 문명의 이기를 갖게 되면 나라의 혼란이 가중된다’고 설파했습니다. 그러나 국민이 국가와 지역의 대표를 선출하는 대의민주주의시대에는 필연적으로 온 국민이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대표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표를 얻기 위해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게 됩니다. 문맹(文盲)이 거의 없고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시스템을 갖고 있는 한국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국회가 당리당략에 빠져서 국민의 뜻을 제대로 수렴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 속에 대의정치에 대한 회의론마저 일고 있습니다.


탈진실(脫眞實 Post-truth)이란, 객관적 진실보다는 감정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라 합니다. 외국 언론에서는 부동산재벌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현상을, 정치인들의 SNS를 이용한 포풀리즘과 ‘거짓의 정치예술(Politics Art of Lie)’의 대표적 사례로 꼽고 있습니다. 우리 여의도는 진정한 ‘대의정치’를 하고 있나요?


‘포퓰리즘의 정치’, 지금의 정치문화를 바꿔야 할 두번째 이유입니다.

◆보수와 진보= 여의도에서는 지금 또 다시 보수와 진보의 편가르기 기싸움이 한창입니다. 보수와 진보를 정확히 가르는 기준은 애매하다고 합니다. 국가와 사회를 발전시키겠다는 목적은 같다지만, 보수와 진보의 구분은 변화를 받아들이는 방법과 속도의 차이로 여겨집니다.


‘*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실험정신이 강한, 달리 말하면 기존의 틀에 대한 부정(否定)이 강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진보적이라 부를 수 있는 이런 사람들이 사회 발전의 동력이 되어 우리 삶에 변화를 가져 온 것은 역사가 증명합니다.


공학도들과 달리 사회학과 출신들을 보면, 한 교실에서 같은 선생님에게 같은 책으로 배웠어도 사회에 나와서 전혀 반대의 길을 갑니다. 이런 행태는 타고난 성향(trait), 성장의 배경(ground), 그리고 늙어감(aging)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고 실천하던 것이 잘못이었음을 깨닫고서도 이미 쌓아놓은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끝까지 밀고 가다가 나라까지 망치는 사람들도 있는 것 역시 역사가 증명합니다.


보수진영에서 수구(守舊)라 불리는 분들이나, 진보진영 가운데 이미 망그러진 사회주의 사상을 붙잡고 있는 분들이 그런 위험을 안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제가 가슴 아파하는 것은 보수이건 진보이건 분단의 역사를 정쟁의 도구로 삼아 국민들을 선동하고 세력을 유지해 온 그들의 전술적 행태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시대적 이념의 정치’, 지금의 정치문화를 바꿔야 할 세번째 이유입니다.

◆위대한 변절자들= 1980년대는 자본주의 경제가 발전하는 반면에 공산주의 식 삶이 어려워지면서 양극체제의 균형을 잃어가고 있던 때입니다. 당시 소련의 최고 지도자 고르바초프(고르비)는 미국의 세계적 석학 앨빈 토플러를 크렘린 궁으로 초청하여 다음과 같은 뜻의 대화를 나누었다 합니다. “국민이 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고르비의 질문에 토플러는 “정보를 개방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집니다”라고 답합니다. 고르비는 정보 개방을 택했고 수구세력의 강력한 저항으로 1991년 사임합니다. 러시아가 그나마 지금의 경제력을 갖게 된 것도 그의 덕일 겁니다.


고르비는 모스크바대학 시절 공산당에 입당한 후 열렬한 공산당원이 되어 54세에 최연소 소련 지도자가 되었던 사람입니다. 앨빈 토플러는 뉴욕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후 5년간 노동자로 일했던 극렬 반체제 투사였는데, 그가 경험한 것은 반대를 위한 숨막히는 투쟁만 되풀이되는 집단 행태였습니다.


중국의 덩샤오핑은 집안이 가난한 것은 아니었으나 16세에 프랑스로 건너가 르노자동차에서 노동자로 일하면서 노동운동과 사회주의를 배우고, 귀국 후 마오쩌둥과 함께 대장정에 참여합니다.


위의 세 사람은 젊은 시절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앞장을 섰으나, 국가라는 조직이 국민 개개인의 삶을 지배한다고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님을 깨닫고 사상적 전환을 하게 됩니다. 짧고 간단한 소개지만,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것을 버리고 사상적으로 전환한다는 것은 정말 용기있는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행동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작은 비유이지만,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영종도 신공항 건설에 반대했던 정치인, 전문가, 언론인 중에 “그때는 내가 잘못 판단했다”고 공개적으로 시인한 분들이 기억에 있으신지요.


‘비양심의 정치’, 지금의 정치문화를 바꿔야 할 네번째 이유입니다.

◆이제는 박근혜 대통령을 편히 주무시게 하자= 얼마 전 박 대통령은 “사익을 취하지 않았고,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느라 밤잠을 못잤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시더군요. 이제 더 이상 대통령의 사익 여부가 문제되는 나라가 되면 안 됩니다. ‘과거 대통령들은 더 해먹었다’는 분위기로 버티면 이 나라의 정치는 영원히 발전하지 못합니다.


대통령이 법적 공방을 벌여 본인의 무죄를 입증하는 것도 법치국가에서 필요한 절차이겠지만, 대통령의 격(格)은 그보다 높은 철학이 있어야 할 겁니다. 독일의 메르켈 처럼 퇴근 길에 동네 슈퍼에 들러서 가족들의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그런 모습은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건가요? 주변 관리를 잘 못해서 이 지경이 된 것만으로도 조용히 물러날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겠습니까.


자리를 비워도 회사가 잘 돌아가게 하는 사장이 진짜 유능한 사장이라 합니다. 본인이 안 계셔도 이 나라가 잘 돌아간다면, 박대통령은 더 이상 국가와 국민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러자면 국민과 정치인, 공무원들이 어떻게 해야 할 지는 자명해집니다. 법의 테두리에서 각자 자신의 할 일을 하면 됩니다. 이 나라가 지킬만한 가치가 있고, 그걸 실천할 지도자가 있다고 국민들이 믿을 때 북한은 적화통일을 단념할 것입니다. 정치인들은 일상이 바쁜 국민들을 부추겨서 길거리로 내모는 행위를 그만 해야 합니다. ‘국가와 민족’을 입에 달고 사는 정치인치고 정말 애국하는 사람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젖을 떼기 위해 젖꼭지에 마이신을 바르는 엄마의 마음처럼, 백척간두에 선 영국 국민들에게 희생을 요구한 처칠처럼, 지금 우리 국민들을 어루만지고 손을 잡아줄 어른은 어디 계신가요.


아, 김수환 추기경님의 성탄절 미사 강론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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