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삼, 영원한 LG맨으로 남고자 은퇴
육성군 재활코치로 야구인생 2막 시작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LG의 김광삼(36)이 은퇴했다. 이병규(42)가 그랬듯 김광삼도 영원한 LG맨이기를 원했다.
김광삼은 지난 7일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1~2년 정도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변화가 있어야 했는데 LG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김광삼은 26년 전 처음 LG를 마음에 품었다. 야구를 시작한 1990년, LG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운명처럼 LG는 김광삼의 목표이자 전부가 됐다. 초등학교 때 감독 선생님이 구해다 주신 LG 트윈스 언더셔츠를 매일 입고 다니다가 교회 누나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다. 1999년 2차 우선지명으로 LG의 선택을 받았을 때는 가족 모두가 울었다.
김광삼은 가장 아쉬웠던 순간을 묻자 "LG 입단했을 때 투수가 아닌 타자를 했다면 어떤 모습으로 남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그는 "성격이나 스타일이 타자 쪽에 더 맞았던거 같다"고 했다. 김광삼은 청소년 국가대표 4번타자를 지냈다. 하지만 그는 팀을 위해 타석을 떠나 마운드에 올랐다.
신일고에 다닐 때 동기인 봉중근(36)이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팀에 투수가 부족했다. 당시 한동화 신일고 감독(별세)이 어깨가 좋다며 공을 한 번 던져보라고 했는데 142㎞가 나왔다. 김광삼은 "전문적인 투수는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 던진 이닝이 20이닝이 안 된다"고 했다.
LG에 입단할 때도 김광삼은 타자였다. 하지만 당시 LG에는 이병규, 서용빈(45), 김재현(41) 등 뛰어난 왼손타자들이 많았다. 반면 투수는 부족했다. 김광삼의 투수로서 재능은 이미 고등학교 때 확인이 된 상황. 천보성 감독(63)을 비롯한 LG 코칭스태프는 수많은 회의 끝에 김광삼을 투수로 키우기로 했다. 김광삼은 "숙소에 들어왔는데 당시 정삼흠 투수코치님(55)께서 '야수 글러브하고 방망이는 버려라. 너는 이제 투수다'라고 하셨다. 어리둥절했다"고 했다.
김광삼은 2008년에 타자로 전향했다가 2010년 다시 투수가 됐다. 이병규가 일본 주니치 드래건스에서 복귀하고 LG가 SK에서 FA로 풀린 이진영(36)을 영입했을 때다. LG에는 여전히 투수가 부족했다. 팀을 위해 너무 희생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김광삼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타자들을 이길 수 있는 무기가 없었나 보죠."
김광삼은 2006년, 2012년, 2014년 세 차례 팔꿈치 수술을 했다. 그는 "부모님께서 운동선수로서 상당히 좋은 튼튼한 몸을 물려주셨다. 다만 팔꿈치만 문제였다. 수술할 때마다 구위가 떨어지는걸 느꼈다"고 했다.
김광삼은 LG 육성군 재활코치로 새 야구인생을 시작한다. 그는 "야구를 잘 했던 것도 아니고 아파보기도 했기 때문에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든 것을 많이 느꼈다. 힘든 선수들에게 멘토가 될 수 있는 코치가 되고 싶다"고 했다.
김광삼은 가족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2015년 3월22일 결혼했고 두 살 된 아기도 있다. 결혼 후 마운드에 오를 기회가 많지 않아 아내가 아기와 함께 야구장을 한 번도 찾지 못 했다. 그래서 아내는 선수 생활을 좀더 하기를 원했다. 김광삼은 "야구선수로서 추억이 될 만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많이 미안하다"고 했다. 또 "어려운 환경에서도 야구선수로 성장할 수 있게 뒷바라지 해주신 부모님께도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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