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공감형 리더십을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끝내고 수시 면접을 준비 중인 딸이 물었다. 서로의 의견을 듣는 것, 다른 생각을 조금씩 좁혀나가도록 노력하는 것, 토론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것. 그런 시스템을 만들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리더십이라고 말해줬다. 말해주고 보니 씁쓸했다. 딸이 이어 묻는다.
"우리나라에서 공감형 리더십을 실천하는 구체적 사례가 있어?"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대통령의 무능, 관료들의 무책임, 대기업 총수들의 뻔뻔함, 최순실의 국정농단 등으로 국가 전체가 분노와 상실의 시대를 겪고 있다. 재벌은 국민연금에 까지 마수(魔手)의 손길을 뻗어 이익만을 좇았다. 대통령과 기업 총수들에게 국민은 없었다. 아마도 '개·돼지'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지금 대한민국에는 '간신(諫臣)'은 없고 '간신(奸臣)'만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불행은 여기서 시작했다. 리더가 잘못된 길로 가면 옳은 말로 지적해야 한다. 조선시대에 간신(諫臣)은 매우 중요한 직책이었다. 목숨까지 내놓으며 올곧은 말을 했다. 주저하지 않았다. 이 같은 간신(諫臣)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찾기 어렵다. '간사한 신하(奸臣)'만 가득한 곳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지난 9일 대통령이 탄핵됐다. 대통령만 탄핵 받았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박근혜정권에서 임명된 장차관도 함께 탄핵 받았다고 봐야 한다. 대기업 총수도 마찬가지이다. 권력이 요구하면 돈부터 바치는 고질적 병폐는 여전했다.
대통령과 독대하면서 돈을 건네고 돌아올 특혜만을 기대했다. 이번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기업 총수들은 그럼에도 번지르르한 얼굴로 청문회에 나타났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돈을 준 것에 대해)대가를 바라고 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여전히 뉘우침이 없다. '권력은 5년이요, 재력은 무한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음이 여실하다.
박근혜정권의 창조경제도 마찬가지이다. '창조경제'를 국정과제로 제시하자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는 물론 대기업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창조경제가 뭐지?'라는 토론과 근원적 물음은 중요하지 않았다. 박근혜정권 초기부터 '창조경제'의 모호성과 도대체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런 비판은 깡그리 무시됐다. 대기업과 1대1매칭으로 17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번갯불에 콩 구어 먹듯 만들었다.
'명령형 리더십'만 있다 보니 관료들은 받들어 충성하는 존재에 불과했다. 냉철한 '머리'가 돌아가야 하는데 생각 없는 '손발'만 비벼댔다. '5년 대통령제'와 '1인 총수 지배구조'로는 공감형 리더십이 설 자리는 없다. '박근혜 탄핵' 이후 이제 '사람'이 아닌 '시스템 개편'에 나서야 하는 이유이다. 그 누가 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시스템이 중요하다. 국민과 토론하고 소통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같은 불행은 반복될 뿐이다.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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