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아이가 이따금 능청스런 거짓말을 한다. 주로 아침에 늑장을 부리며 "열이 나고 기운이 없어 유치원을 하루 쉬어야겠다"는 식이다. 이럴 때 엄마가 진심으로 걱정하는 척 "정말 아파 보이네. 얼른 병원에 가서 큰 주사 하나 맞고 오자"하면 아이는 "이제는 좀 괜찮아진 것 같기도 하고…"라며 상황을 모면한다.
육아서적에 아이들은 4~5세 때 상상력과 공상력이 활발해져 현실과 구분 짓지 못하는 말을 하기도 하다가(이 때의 거짓말은 그다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 6세 즈음부터는 남을 속이기 위한 거짓말도 할 수 있게 된다더니 어찌 그리 딱 맞을까. 엄마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그만큼 자라버린 아이가 내심 대견스럽기도 하다.
"모든 권한을 내려놓겠다"는 대통령의 말에 국민들은 다시 한 번 허탈해 하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가 수면 위로 떠오른 이후 그간의 행적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인데도 대통령이 "단 한순간도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았다", "국가를 위한 공적 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했던 일들이었다"고 해명하는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앞서 2차 담화에서 "검찰 수사를 성실하게 받겠다"고 한 약속을 왜 지키지 않는지 미안하다는 말도 없었다. 지난달 25일 첫 대국민 사과 때 "(최순실에게서)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의 표현 등을 도움받은 적이 있다"고 한 말도 불과 하루 만에 '단순한 도움'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대통령이 이러할진대 주변인들이야 두말할 필요가 있을까.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최순실과는) 알지도 못하고 통화한 적도 없다"고 부인했는데 정작 차은택은 "최순실의 지시로 김 전 비서실장을 만났다"고 했다.
대통령이 가명으로 진료를 받았다는 한 병원의 원장은 "(대통령이) 취임 이후에는 병원을 이용한 적이 없다"면서 "의료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지만 이 또한 진료기록을 통해 '의사도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을 재확인해줬을 뿐이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고교 재학시절 출결관리 특혜와 촌지수수 혐의를 묻는 감사장에선 전·현직 교사와 학교 관리자들이 진술을 번복하고 서로 엇갈린 주장을 했는데, 다들 어찌나 단호하고 결백하던지 시의원들조차 "모두가 공범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거짓말을 덮기 위해선 다른 거짓말이 계속 생겨난다. 사사로운 인간관계에서도 거짓과 불신이 생기면 다시 회복하기 어려울진대 대통령과 국민, 정부와 국민의 깨어진 신뢰는 무엇으로 메꿀 수 있을까.
아이는 요즘 '늑대와 양치기 소년' 동화책을 읽으며 거짓말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깨우쳐가는 중이다. 양치기 소년이 두 번이나 마을 사람들을 속인 후 진짜로 늑대가 나타나 세 번째 도움을 요청했을 땐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다. 1·2차 담화와 별반 달라진 게 없는 대통령의 3차 담화에 이제 국민들은 '시민불복종'을 선언했다.
조인경 사회부 차장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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