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초동여담]朴 대통령의 마지막 애국

시계아이콘01분 50초 소요

대대 인사과에서 군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3벌식 타자기였다. 종성이 있는 글자는 받침 자판을 눌러야 해서 적응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간간이 사병들의 사고나 사건이 발생하면 조서를 꾸며야 했는데 대대 보관용, 연대·사단·헌병대 보고용으로 총 4부를 작성해야 했다. 그러려면 먹지 3장을 끼워야 해서 타자기에 말아 넣은 종이는 두툼해질 수밖에 없었다. 먹지의 성능이 좋더라도 맨 마지막 종이까지 글씨를 새겨 넣으려면 '온 우주의 기운'을 손가락에 모아 무시무시한 압력을 가해야 했던 것이다.


더욱 곤혹스러운 것은 서너 페이지에 달하는 조서를 마침표 하나로 끝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대략 이런 식이었다. '위 사병은 몇 년 몇 월 며칠 어디에서 어디로 전입해 어떤 역할로 근무하고 있는 사병으로, 언제 어디서 태어나 어떻게 자랐으며 평소 이렇게 성품으로 지내던 중 언제 누구와 무엇을 하다가 이차 저차 한 사고를 내어 이런저런 군법을 어겼기에 이에 본 조서를 상신합니다.'

일제 잔재의 하나인 과거 법원 판결문의 영향이라고 하는데 쓰는 사람도 힘든데 읽는 사람은 얼마나 힘들까 싶은 생각이 들지만 막상 마지막 마침표를 찍을 때면 묘한 쾌감이 돌기도 했다. 하여 일제시대보다 더한 작금의 '봉건시대'를 이를 흉내 내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피의자 박근혜는 2013년 2월 25일 헌법 제65조에 규정된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이라고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하고 취임한 제18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40여년 전인 1974년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비명(非命)이후 영세교 교주 최태민과 인연을 맺은 후 그의 딸 최순실과도 가깝게 지냈는데 2016년 10월 25일과 11월 4일 두 차례의 대국민 사과에 따르면 최순실과는 과거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지난 대선 때는 물론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 일부 자료들에 대해 의견을 들어왔던 바, 대통령과의 막역한 친분을 과시하던 최순실은 여러 보도를 통해 알려진 대로 청와대를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프리패스'하고 강남의 한 유사 의상실에서 청와대 행정관들을 개인비서처럼 지시하며 대통령의 옷을 제작·공급했으며, 이화여대로 하여금 그의 딸 정유라의 특례 입학과 부정한 학사관리 사주하고 삼성그룹을 통해 말 구입자금 및 승마 지원을 하는 등 갖은 비행을 저질러 오던 중, 대통령은 2015년 7월경 4대 국정기조중 하나인 문화융성의 역점 추진을 위해 재단법인 설립을 추진하되 그 재산은 전국경제인연합회 소속 회원 기업체들의 출연금으로 충당하기로 계획하면서 차관급 정무직 공무원인 안종범 경제수석비서관에 지시해 동년 동월 24~25일 대그룹 총수들과 독대하고 미르·K스포츠재단에 총 774억원을 강제 출연하게 공모하게 하였으며, 조원동 경제수석을 통해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의 퇴진을 압박하고 최의 측근 차은택을 통해 장차관은 물론 민간기업 KT 임원 인사에 개입했으며 포스코 계열의 광고회사를 강탈하려다 미수에 그치는 등 권력을 사유화한 것이 백일하에 드러났고, 이에 분노한 국민이 매주 토요일 5차에 걸쳐 총 400만명 넘게 하야를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으나 대통령은 국정 올 스톱 상황에서 대국민사과로 약속한 검찰 조사를 거부하고 오히려 "하야할만한 잘못을 하지 않았다"는 적반하장의 태도로 국정에 복귀하려 하는 등 국민 모두의 일상을 흔들고 경제 활력을 저하시킨 것은 물론 대외 신인도를 곤두박질치게 하였기에 파탄 난 국정일랑 눈발 속에서도 구국의 일념으로 전 세계가 놀라워할 만큼 평화적 집회를 이어가는 현명한 국민들이 알아서 처리할 터이니 대통령은 국회에서 탄핵이라는 법적 절차를 밟는 것과는 별개로 국민의 뜻에 따라 하루속히 하야하는 것이 마지막 애국임을 국민의 이름으로 주문한다.

김동선 사회부장 matthew@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