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초동여담]면도하는 남자

시계아이콘01분 37초 소요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플레어스커트를 입은 여자들의 기묘한 상쾌함을 남자들이 짐작하기 어렵다.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남자가 여자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칸트가 말하는 걸 대학 시절 들은 뒤, 사랑에 대한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 사랑이 완전한 이해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안 건 훨씬 뒤의 일이었다.


플레어스커트의 느낌을 고유한 '여성감'이라고 한다면, 턱밑을 오가며 털을 깎아내는 면도의 쾌감은 남성감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여성도 면도를 하는 때가 없진 않지만, 내가 말하는 건 코밑과 뺨, 그리고 턱과 목을 오가며 쓸어내리고 밀어올리며 다시 훑어가는 면도를 가리킨다.

[초동여담]면도하는 남자 면도하는 남자는 나르시스트다. <게티이미지뱅크>
AD



거품을 잔뜩 묻혀 날카로운 면도날로 목과 턱뼈 사이의 부드러운 살결 위를 갓자란 수염들을 삼제하는 것에는, 하루의 시간을 되돌리는 섬세한 리프레시가 있고, 파란 면도자국으로 엄격하고 정결한 표정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영혼의 기풍이 있다. 면도를 하는 순간의 모든 남성들은 완벽한 나르시스트다. 거울 속의 사내를 향한 질투와 연민이 있다. 대개 연민이 더 많지만, 턱을 끌어올려 길거나 짧은 목을 비쳐보며 하늘벼랑에 선 고독같은 걸 설핏 맛보기도 한다.

전기면도기는 그것대로 접촉의 질감을 선사한다. 충전된 전기의 알맞은 진동이 턱에서 뒷골 쪽으로 올라가 두뇌를 울리게 할 때, 뭐랄까 까닭 없이 생의(生意)를 돋우는 비장한 맛이 있다. 면도기 철망의 서늘한 기운이 턱과 목을 오갈 때 절삭력 좋은 날들이 숨은 0.1센티의 털들을 찾아내 가차없이 베어넘기는 소리는 덧없이 자라나는 시간을 잘라내듯 단호하고 아름답다.


저녁의 면도는 여유롭고 세심하다. 오로지 저 면도기의 절삭음을 듣기 위해 무심코 그것을 들어 턱에 갖다대는 때도 있다. 대개 면도기의 뒷쪽은 무엇인가를 움켜잡는 사내의 손바닥을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어서 그것을 쥐기만 해도 어떤 의욕이 생겨난다. 아침의 면도는 마치 신체를 깨워 시간을 기입하는 성사(聖事)처럼 단정하고 비장한 맛이 있다. 세상의 정원사는 신(神)이지만, 한 남자의 정원사는 대개 자기 자신이다. 그가 가꾸는 건 초목만이 아니라, 그 정원이 이루는 공기를 가꾸는 것이다.


면도를 하면서, 왜 하필 코밑과 뺨, 그리고 턱에만 털이 나는 것일까 생각을 해본다. 이 털들이 의식하고 있는 것은 그 한복판에 있는 입일 것이다. 눈도 중요하고 코도 중요하고 귀도 중요할텐데 조물주는 왜 하필 입을 이토록 중시한 것일까.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의 통로라 칙사대접을 한 것인가. 아니면 그곳을 통해 말이 나오고, 울음이 나오고, 음악이 나오기에 귀하게 여긴 것일까. 아니면 사랑의 입구인 키스가 거기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인가. 신이 이토록 귀하게 여긴 것을, 인간은 또 왜 이리 극성스럽게 매일 깎아대고 있는 것일까. 입이 가벼워지고 어지러워지고 간사해지면서, 털의 보호를 받을 여유도 없이 돌격하기 위해서인가.


휴가 때면 가끔 면도기를 멀리 하고, 고삐 풀린 말처럼 갈기를 날리는 자유로움을 꿈꾼다. 일주일쯤 면도를 하지 않은 자신을 보면서, 이대로 덥수룩한 자유남이나 되어볼까 하는 생각도 한다. 그렇지만 휴가 끝날 무렵쯤 마음 어디선가 영혼의 오너가 튀어나와 면도기를 들고 길어진 턱수염을 훑기 시작한다. 그때서야 면도에 대한 모든 쾌감이, 나를 세상에 길들이려는 누군가의 계략이었구나를 깨닫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세상이 원하는 말끔한 얼굴로 살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푸른 턱을 가진 남자로.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6.01.2009:48
    저렴해서 미국인도 푹 빠졌다…"오늘은 라면에 김치" 외신도 감탄한 K푸드⑤
    저렴해서 미국인도 푹 빠졌다…"오늘은 라면에 김치" 외신도 감탄한 K푸드⑤

    "전 세계에서 K푸드에 대한 수요가 식을 줄 모른다." 미국의 경제 뉴스 채널 CNBC는 지난 18일(현지시간) 한국 식품의 글로벌 확산세에 대해 이같이 조명했다. 이 방송은 특히 라면을 K푸드 성장을 견인하는 핵심 품목으로 지목했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은 K팝과 한국 드라마에서 라면이 자주 노출되면서 미국과 유럽은 물론, 중앙아시아와 중동 지역까지 수요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물가 인상과 생활비 상승도 비교

  • 26.01.2007:16
    "힙하다 힙해" 퇴근길 치맥에 한국 화장품 싹쓸이까지…일상에 스며든 'K'④
    "힙하다 힙해" 퇴근길 치맥에 한국 화장품 싹쓸이까지…일상에 스며든 'K'④

    지난 15일(현지시간) 오후 7시 미국 뉴욕 맨해튼 32번가 K타운. 한국 치킨 브랜드 BBQ 매장은 '치맥'을 즐기려는 현지인들로 북적였다. 지하 1층에 마련된 테이블은 일찌감치 만석이었고 20~30대 직장인과 대학생들은 치킨을 앞에 두고 맥주잔을 부딪치며 저녁 시간을 즐겼다. 치킨뿐 아니라 떡볶이와 김치볶음밥 등 다양한 한국 메뉴를 함께 주문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 매장을 자주 찾는다는 대학생 메디슨 씨는 "학교 근처

  • 26.01.1915:08
    "돼지갈비에 나물" 파리지앵의 저녁 식탁 오른다
    "돼지갈비에 나물" 파리지앵의 저녁 식탁 오른다

    K웨이브 글로벌 현장 점검 "형 집에 놀러 가는데 저녁 메뉴인 돼지갈비를 준비하려고 합니다" 지난해 연말 프랑스 파리 오페라 지역(Rue Sainte-Anne)에 위치한 유명 한인 슈퍼마켓 'K마트'에서 만난 맥심 카본(27살)씨는 '100% 태양초'라고 적힌 고춧가루와 송이버섯과 무, 고추장, 튀김가루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카본은 한국 신림동에서 1년 거주하면서 처음 접한 한식을 잊지 못해 귀국 후에도 파리 한식

  • 26.01.1914:08
    ③"대중문화는 화려한 분수…'일상문화' 흘러야 30년 간다"[인터뷰]
    ③"대중문화는 화려한 분수…'일상문화' 흘러야 30년 간다"[인터뷰]

    "대중문화는 '화려한 분수'처럼 금방 꺼질 수 있습니다. 지하수처럼 '일상 문화'가 계속 흐르도록 해야 K 브랜드와 산업의 생명력을 30년 이상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일열 전 파리문화원장은 최근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K브랜드의 글로벌 지속가능성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등 K콘텐츠는 강력한 진입로가 될 수 있지만, 휘발성이 크다"며 "어느 순간 거품이 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은 '썸

  • 26.01.1914:08
    돼지갈비 요리하는 파리지앵…자기 전엔 韓스킨케어 톡톡[K웨이브3.0]②
    돼지갈비 요리하는 파리지앵…자기 전엔 韓스킨케어 톡톡[K웨이브3.0]②

    "형 집에 놀러 가는데 저녁 메뉴인 돼지갈비를 준비하려고 합니다" 지난해 연말 프랑스 파리 오페라 지역(Rue Sainte-Anne)에 위치한 유명 한인 슈퍼마켓 'K마트'에서 만난 맥심 카본(27살)씨는 '100% 태양초'라고 적힌 고춧가루와 송이버섯과 무, 고추장, 튀김가루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카본은 한국 신림동에서 1년 거주하면서 처음 접한 한식을 잊지 못해 귀국 후에도 파리 한식당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현지 한식당 대부분이 중

  • 26.01.1609:11
    윤희석 "한동훈 제명돼도 당 위한 활동 계속"
    윤희석 "한동훈 제명돼도 당 위한 활동 계속"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월 15일)※ 기사 내용을 인용할 때는 반드시 '소종섭의 시사쇼'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종섭 : 전화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윤희석 : 감사합니다. 소종섭 : 국민의힘 윤리위원회가 제명 처분을 할 것이라고 예상을 했나요? 윤희석 : 어느 정도는 예상했었죠

  • 26.01.1416:21
    이준석 "한동훈, 고수라면 창당이나 서울시장 무소속 출마 선언할 것"
    이준석 "한동훈, 고수라면 창당이나 서울시장 무소속 출마 선언할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출연 :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1월 14일) ※ 기사 내용을 인용할 때는 반드시 '소종섭의 시사쇼'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종섭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소종섭의 시사쇼 시작하겠습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함께 여러 가지 이슈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잘 지내셨죠? 이준석 : 예, 그렇습니다. 소종

  • 26.01.1008:01
    "아내는 연상…원더우먼 같았다" 유산·가난 속에서 함께 버틴 박홍근 의원 '인생 최고의 반석' [배우자 열전]②
    "아내는 연상…원더우먼 같았다" 유산·가난 속에서 함께 버틴 박홍근 의원 '인생 최고의 반석' [배우자 열전]②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편집자주6·3 지방선거의 해가 열렸다. 여야 후보자들의 출마가 이어지고 있다. 후보자들이 누구인지, 어떤 정책을 내세우는지와 함께 배우자는 어떤 인물인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소종섭의 시사쇼'는 출마(또는 출마 예상) 후보자 배우자에 대해 알아보는 '배우자 열전'을 시작한다. ①문혜정(정원오

  • 26.01.0808:49
    동갑내기 캠퍼스 커플…"예뻐보이더라" 정원오, 배우자 문혜정 첫 인상[배우자 열전]①
    동갑내기 캠퍼스 커플…"예뻐보이더라" 정원오, 배우자 문혜정 첫 인상[배우자 열전]①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편집자주6·3 지방선거의 해가 열렸다. 여야 후보자들의 출마가 이어지고 있다. 후보자들이 누구인지, 어떤 정책을 내세우는지와 함께 배우자는 어떤 인물인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소종섭의 시사쇼'는 출마(또는 출마 예상) 후보자 배우자에 대해 알아보는 '배우자 열전'을 시작한다. ①문혜정(정원오

  • 26.01.0710:25
    장성철 "장동혁, 한동훈 제명 아니면 탈당 권고할 듯"
    장성철 "장동혁, 한동훈 제명 아니면 탈당 권고할 듯"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1월 5일) 소종섭 : 어서 오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장성철 :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소종섭 : 이 얘기부터 해보죠.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와 관련해서 폭언했다, 보좌진에게 갑질했다, 남편이 부동산 투기를 했다는 등 의혹이 쏟아집니다. 그런데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